오랜만에 만난 A와 B 그리고 문제의 '그' 이들 셋은 절친한 친구사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A와 B는 '그'와 대화를 하고 나면 이전과 같은 즐거움과 충만함 대신 짜증과 피로감만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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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오랜만이야 잘들 살았어?
B: 다들 바쁘니까 이럴 때나 돼야 얼굴이나 보는구나.
그: 그러게 경조사 때 아니면 이제 얼굴 보기도 힘들어지는 거지 뭐.
A: 그래 이렇게라도 얼굴 보는 게 어디야 다들 사는 게 바빠서 그렇지 뭐. 무소식이 희소식 아니냐
그: 그래 B 너 결혼한다고 이렇게 오랜만에 모인 거 아니야. 축하한다. 결혼 준비는 잘 돼가?
B: 어 이제 결혼식이 한 달밖에 안 남아서 정신이 없다. 오늘도 가전제품 고르다가 왔어. 피곤해 죽겠어.
A: 잘 골랐어?
B: LG가 삼성보다 다 조금씩 비싸던데? 그래도 가전은 LG라고 해서 다 LG로 맞췄어.
A: 그래 잘했어 다 거기서 거긴데 뭐 가격차이 크지 않으면 맘에 드는 걸로 해야지
그: 그래? 다 해서 얼마나 들었어? 한 이삼천 그냥 깨지지 않아?
B: 그 정돈 아니고 천만 원 조금 넘었던 것 같아. 그래도 이것저것 할인을 많이 받아서 합리적으로 잘한 것 같아
그: 다 LG에서 할 거면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 우리 외삼촌이 LG지점장이잖아. 미리 말했으면 내가 임직원가로 할인받을 수 있게 도와줬을 텐데
B: 너는 내가 결혼하는 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그 말을 이제야 하냐 가전은 어차피 삼성 아니면 엘지 아니야.
그: 아니 결혼 날자가 이렇게 가까운 줄 몰랐지 안 그래도 내가 연락할까 하고 있었는데
B: 아니야 괜찮아. 이미 다 계약하고 왔으니까 다음에 혹시 뭐 다른 거 살 거 있을 때 부탁할게.
그: 그래 미리 꼭 말하라고 그럼 내가 잘 말해서 세이브할 수 있잖아. 아까운 돈을 왜 버리냐
A: TV, 침대, 냉장고만 해도 조금 좋아 보인다 싶은 걸로 고르면 천만 원 금방 넘어가더라고, 요즘 가구 가전이 너무 비싸. 뭐 안 비싼 게 있겠냐만.
B: 야 안 그래도 TV를 55인치로 할까 65인치로 할까 고민 고민하다가 55인치로 했는데 이게 조금 커질 때마다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더라.
그: 야 TV는 무조건 거거 익선이야. 우리 집도 75인치야 좀 더 큰 걸로 하지 그랬어. 난 이것도 작아서 후회 중인데. 나중에 분명히 후회한다 너.
A: 적당히 자기 기준에서 사면되는 거지 뭐. 어차피 처음에만 고민하고 나중에 살다 보면 다 그게 그거야. 잘 보이지도 않아. 나는 우리 집 TV가 몇 인치였는지 기억도 안나.
B: 그래 아무튼 결혼이 힘든 게 아니라 결혼 준비가 진짜 피곤하다. 두 번은 못하겠어.
A: 그렇지? 단기간에 결정할게 너무 많다 보니까 스트레스받을 거야. 다투지 말고 둘이 잘 조율하면서 차근차근 결정해. 참 저번에 웨딩촬영 사진 예쁘던데 둘 다 사진 잘 나왔더라
B: 그래? 고맙다. 근데 진짜 아침부터 밤 8시까지 찍었어. 무슨 사진을 그렇게 오래 찍는지 원, 힘들어 죽을 뻔했다.
A: 웨딩 촬영하면 다들 그렇게 하루 종일 찍더라고 자꾸 웃으라고 해서 나중에는 얼굴에 경련이 일더라니까
그: 어디서 찍었는데?
B: 아 OOO업체에서 했어 거기 스튜디오가 예쁘고 괜찮던데?
그: 얘 나는 웨딩촬영 제주도까지 가서 했잖아. 진짜 개고생 했다니까. 새벽 비행기 타고 가서 밤늦게 돌아왔어. 하루 종일 비도 오고 차 타고 계속 이동하면서 찍어서 아주 피곤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
A: 그래도 제주도까지 가서 사진은 예쁘게 잘 나왔겠네
그: 사진이라도 이쁘게 나와야지 고생한 거 생각하면 진짜 야... 제주도까지 가서 내가 어휴..
A: 그래 고생했네, 근데 B야 거기 사진은 어때? 마음에 들게 잘 나왔어? 남편 될 분도 마음에 든다고 해?
B: 어 거기 원장님이 사진 잘 찍는 걸로 유명한데 겨우겨우 원장님 시간에 맞출 수 있었어. 남편도 사진 잘 나왔다고 좋아하더라고
그: 맞아 거기 원장님 사진 잘 찍어. 우리 아기 100일 사진, 돌 사진도 다 그 원장님한테 찍었어. 원장님이 우리 집에 와서 다 찍어주고 갔거든.
B: 아 그래~
A: B 너 요즘도 운동해? 웨딩 촬영한다고 살이 많이 빠졌는데?
B: 그냥 헬스랑 이것저것. 결혼하면 남편이랑 같이 이것저것 배워볼까 해.
그: 그러지 말고 너네도 골프 배워라. 내가 요즘 골프에 빠졌잖아.
A: 아 그래? 재밌어? 안 그래도 조금 더 나이 들면 배워볼까 생각 중이긴 해
그: 야 진짜 재밌어 필드 나가는 것만 아니면 돈도 얼마 안 들어. 내가 지금 레슨 받는 프로가 진짜 잘 가르치는데 배운다고 하면 소개해줄게.
A: 그래 나중에 혹시 배우게 되면 물어볼게
그: 그래서 집은 어디에 구했어?
B: OO동에 OO아파트로 구했어. 요즘 집값이 하락 추세라 매매하기가 선뜻 겁이 나더라고 청약 통장도 아깝고. 조금 더 지켜보려고
A: 그래 잘했어. 집이 결혼 준비에 9할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 고민 많았겠다.
그: 근데 그 동네 길도 좁고 상권도 얼마 없고 좀 별로지 않아? 신혼부부는 차라리 @@동이 더 나을 것 같은데
B: 응 그래도 가격도 괜찮고 리모델링도 잘 돼있어서 신혼에 둘이 살기에는 괜찮을 것 같아.
그: 얼마에 계약했어?
A: O억 정도 줬어
그: 야~ 싸게 했네. 내가 요즘 부동산 공부를 시작했잖아. 돈 내고 특강도 듣고 다니고 하는데. 부동산에서 제일 중요한 게 입지라고 입지. 입지는 변하지 않는다더라. 내가 요즘 공부를 좀 해보니까 말이야..
A: B야 뭐 필요한 건 없어? 결혼 선물로 내가 하나 해줄게
B: 아니야 됐어. 식기세척기를 꼭 하고 싶었는데 전셋집이라 못해서 그게 좀 아쉽네.
A: 맞아 전셋집은 나갈 때 다 원상복구 해놓고 나가야 하니까 그런 게 좀 그렇지. 잘 살고 나중에 집 사서 나갈 때 꼭 설치해. 나도 식기세척기 한번 써보고 싶다. 엄청 편하다던데
그: 야 나는 자간데도 식기세척기 안 했어. 우리 집이 풀 리모델링을 해가지고 바닥이 대리석인데 식기세척기 설치하려면 바닥이 깨진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식기세척기 설치를 못했다니까. 그냥 내가 설거지해야지 뭐
B: 아 그래. 너희 집은 자가라 식기세척기 설치하면 편할 텐데 좀 더 알아보고 설치하지 그래
그: 아니야 우리 집 원장님이 설치하지 말래. 괜히 타일 깨지고 그러면 더 복잡하다고.
A: 아니 너는 남편을 원장님이라고 불러?
그: 내가? 그랬나? 뭐 병원 원장님이 틀린 말은 아니니까.
A: 아 그래 ^^;
그: 너도 혹시 부모님이나 주변에 누가 이 안 좋아서 임플란트 할 일 있으면 말해 내가 원장님한테 말해서 좀 싸게 해달라고 말해둘게. 친구 좋다는 게 뭐야. 살아보니까 인맥이 전부더라.
A: 그래 고맙다.
B: A야 너는 요새도 글 꾸준히 쓰고 있어? 대단하다. 한 2~3년 됐지?
A: 응 책을 한 번 내고 싶어서 출판사 수십 곳에 한 달 전쯤 출간 계획서도 쫙 돌려봤는데 연락 오는 곳이 한 군데도 없네. 책을 내기엔 아직 많이 모자란가 봐.
B: 그래도 그렇게 꾸준히 쓰는 걸 보니 대단하다. 그렇게 좋아서 뭘 꾸준히 하는 것만도 대단한 거야
그: 대단하네. 근데 책 내면 얼마나 벌어?
A: 책을 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일단은 그냥 좋아서 쓰고 있어. 나중에 혹시 잘돼서 책 쓰게 되면 그때 알려줄게. 너는 골프 말고 요즘 뭐 하고 있는 건 없어?
그: 나? 나는 그냥 친구들 만나서 술이나 먹고, 술 먹는 게 제일 좋지.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리고 아직도 재밌다.
B: 청춘이네. 젊다. 그런데 이제 그렇게 먹으면 피곤하지 않아? 다음날 출근도 해야 되는데.
그: 나 휴직 중이잖아. 그래서 편하게 먹을 수 있지. 야 다음날 출근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냐? 이제 휴직한 지 오래돼서 잘 생각도 안 난다.
A: 너 휴직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
그: 이제 한 육 개월 됐나? 근데 왜 이렇게 오래된 것 같지. 아무튼 쉬니까 좋아. 복직할 것 생각하면 앞이 캄캄해.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는 것 같아 이제. 참 B야 너희 남편이 건설회사 다닌다고 했지?
B: 응. 왜?
그: 아니 우리 시아버님이 기술사 자격증이 있어서 무슨 감리? 일을 하신다고 그러시더라고. 공사하고 시공에 문제가 있나 없니 점검하는 그런 일이라고 하던데. 남편이 건설사라니까 혹시 도움 줄 수 있을까 해서 물어봤지. 일하다가 도움 필요하거나 부탁할 일 있으면 말해 내가 시아버님한테 이야기해볼게.
B: 야 요즘이 어떤 시댄데 그런 말을 해. 그리고 그냥 말단 직원이라 그런 큰 결정 하는데 아무 결정권도 없어.
그: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사는 게 다 인맥이더라니까. 알아둬서 나쁠 건 없잖아. 아무튼 우리 시아버님이 그런 일을 하신다고 하시더라고.
A: 알았다. 야 오늘 B 결혼 축하 때문에 모인 자린데 B 얘기도 좀 듣자. 니 이야기 좀 그만하고. B얘긴 얼마 듣지도 못했네.
그: 내가? 내가 무슨. 알았어 얘기해 얘기해. 얘 그나저나 너는 나중에 장학사 시험 볼 계획은 없어? 우리 이모가 OO교육청 교육장으로 있는데 내가 잘 말해둘게. 혹시 장학사 시험 보게 되면 알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