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하는 이유
우리는 때때로 어떤 위기의식을 갖게 된다. 기후변화 때문에, 정책의 변동성 때문에,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멀리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죽을 때까지는 괜찮겠지"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 때문에 인간은 멀리 바라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인 시야에 매몰된다. 그것은 때로 죄책감을 잊게 하고 책임감을 면책시킨다.
예를 들어 기후변화로 인해 200년쯤 뒤에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어느 과학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열변을 토해도 "그때 나는 죽고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튀어나오는 순간, 그 과학자의 주장은 내 인식에 깊숙이 들어오지 못하고 공허한 메아리로 스쳐 지나간다. 온 국민의 관심사이자 걱정거리인 집 값 역시 마찬가지다. "집 값 오르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며 경제 구조에 관심을 끊는 것은 50년 뒤 집값과 내 인생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자녀가 있는 사람의 인식은 조금 더 멀리 닿을 수밖에 없다. 내 자식의 삶이 걱정되기 때문이다. 나는 50년 후에 죽고 사라지겠지만 내 자식은 나랑 같은 나이에 수명이 다한다고 할지라도 나보다 30년은, 의료기술의 발달로 기대수명이 늘어난다면 어쩌면 50년은 더 살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자식을 생각하면 온갖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과 우려와 인식이 조금 더 확장될 수밖에 없다. 아직 손자손녀를 만날 나이가 되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흘러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아마도 인식의 지평이 더 확장될지도 모르겠다.
애를 낳아야 성숙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련의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결혼이나 아이의 유무와 인간적 성숙도는 큰 비례관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는 일은 한 인간에게 분명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살피게 되고 조금이라도 더 선한 것을 지향하게 된다. 그것은 곧 미래를 그리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는 연인이 생기거나 자식이 생기면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아무리 무계획적인 사람이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기쁨에만 충실하려는 사람이더라도, 무의식 중에 사랑하는 이들과의 미래를 떠올리곤 한다. 사랑은 인간의 존재 이유이자, 존재 유지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할 때만 우리 인식의 지평은 더 멀리, 더 깊이 확장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