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여정
우연히 예전에 살던 집 근처를 지날 때면 상념에 잠기게 된다.
사람에겐 뿌리라는 것이 있다.
유년시절, 5~7세로 기억되는 나의 인생의 최초의 기억들 가운데에 나의 첫 번째 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사를 와서 옆집에 처음 인사를 갔던 순간, 유치원이 끝난 후 공터에 모여 매일같이 해가 지기 직전까지 뛰어놀던 기억, 친구의 자전거를 빌려 넘어지고 깨져가며 자전거 연습을 하던 순간, 무더위에 잠 못 들던 자식들을 자동차 에어컨 바람을 쐬어 재워가던 부모님의 모습, 동네 구석진 곳에 혼자 살던 꼽추를 무서워했던 기억, 동네 뒤편에 있던 운전면허 연습장에서 흙먼지를 먹어가며 비탈길을 놀이터 삼아 놀았던 순간들, 동네 초입에 있던 고물상에 숨어 들어가 숨바꼭질을 하다가 무서운 고물상 주인아저씨를 피해 다녔던 일, 연탄을 땠고 화장실이 집 밖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생 첫 번째 이사는 초등학교 입학 즈음이었다.
대로변의 고지대에 위치한 주택으로 대문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꽤 가파른 각도의 계단을 올라야 했던 기억이 난다. 높고 가파른 계단으로 인해 정강이에는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새로운 상처가 덧씌워졌다. 집 마당은 나무가 무성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당에서 강아지를 키웠었다. 집 옆엔 동네에서 가장 큰 교회가 있었고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따라 교회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간식을 먹으러 들락거렸던 기억이 난다. 학교 앞에서 만화책을 늘어놓고 팔던 할아버지에게 드래곤볼 34편을 샀던 것이 인생 최초의 만화책 구매였고 그로 인해 만화책방을 드나드는 생애 최초의 취미가 생겼다. 2번의 도둑이 들었고, 친구가 우리 집 근처에서 교통사고 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도시개발지구 가운데 한 곳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0년을 살았던 아파트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등 떠밀리듯 이사를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분주하다는 말을
기어코 실현시키기라도 하려는 듯,
급하게 이사를 오고 다시 급하게 이사를 나갔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독서실은 주거요건에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 좋아 보이는 집주인을 선택의 우선순위로 놓았던 모양이다.
주인과 같이 살지 않는 넓은 집.
이번 이사 갈 집의 콘셉트였다.
그리하여 다음 선택지는
신축 빌라로 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빌라에서 살았던 3~4년의 시간은 평온했다. 벌레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큰 행복이었고,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물을 끓여 샤워하는 수고스러움을 덜어낼 수 있어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추위와 더위는 차라리 즐겁기까지 했으며 저녁 늦게 귀가를 할 때 으슥한 골목을 걸어 들어가며 느끼게 되는 경계심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곳에 살며 지금의 배우자를 만나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나의 오랜 유목생활은 끝났다. 은행의 힘을 빌려 집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