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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호 Jan 15. 2021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적이 있나요

진짜로 목이 맥힙니다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을 꼽아보라면 몇몇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로 대학 입학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들었을 때를 꼽고는 하는데 너무 기쁜 일이 생기면 하늘에서 질투를 할지 모르니 조용히 기뻐하라는 옛이야기처럼 정말로 너무도 기뻐 신이 난 모습에 심통이 났는지

교통사고를 선물 받았다. 


전치 14주. 사고가 남과 동시에 기절을 해버려서 어쩌다 사고가 났는지, 어떻게 부딪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진 않지만 팔뚝 손가락 무릎 정강이 등 몸뚱이의 딱 오른쪽 절반 부분이 부러진 것으로 보아 오른쪽을 차에 치었거나 차에 치인 뒤 오른쪽으로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자 휠체어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병원에서는 작업치료와 물리치료 말고는 더 이상 상태를 호전시켜 줄 특별한 조치를 취해줄 것이 없다고 했다. 하여 작업치료를 잘한다는 곳을 수소문하여 병원을 옮겨 그곳에서 5개월 정도 병원생활을 했다.


드래곤볼의 손오공처럼 선두를 한 알 먹고 금세 뼈가 붙고 회복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부러진 뼈는 완전히 회복되는데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뼈가 아니었다. 사고 당시 오른쪽 팔뚝을 아스팔트에 쓸리면서 신경이 손상되었는지 오른손 팔꿈치 아랫부분이 나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바깥쪽으로 움직이려 하면 안쪽으로 꺾여버리는 식이었다. 기생수의 주인공이 애타게 오른손이를 불렀듯 나 역시도 나의 오른손이 되돌아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시 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하여 한학기도 마치지 못했던 때라 친구들이 병문안을 많이도 왔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은 병문안을 올 때 주로 통닭과 통닭과 통닭을 사 왔는데 닭을 하도 먹어서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이젠 눈을 가리고 먹어도 치킨 브랜드를 맞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치킨의 힘으로 무료한 병원생활을 버텨나가던 도중 한 대학 동기가 가지고 온 달콤한 도넛에 영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크리스피 도넛이라는 당시 내가 살던 고장엔 매장이 없던 생소한 빵이었는데 서울에서 그 빵을 사들고 병문안을 와준 동기의 마음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넛이라곤 던킨 도넛밖에 모르던 시골 촌놈에게 완전히 새로운 달콤함과 포근함은 그야말로 단맛의 혁명과도 같았다.


이게 문제의 시발점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한번 맛을 본 그 마성의 도넛은 사탕을 달라고 때를 쓰는 아이의 마음처럼 내 안에 달콤함에 대한 강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한데 어쩌겠는가 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도 아니건만 크리스피 매장을 찾아볼 수 없는터라 병문안 오려는 친구에게 부탁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병원 근처에 던킨도넛이 떠올랐다.

병원밥이 맛이 없어서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 몸 안에 세포들이 른손을  일깨우기 위해 당분이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그날따라 왜 그렇게 그 단맛이 도는 도넛이 먹고 싶었던지 혼자서 휠체어를 밀면서 걸어가면 5분 정도 걸릴 거리를 30분 정도 걸려 던킨도넛 매장에 결국 도착하고야 말았다!! 기쁜 마음에 계산을 하고 도넛 봉지를 무릎에 올린 채 병원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올 때는 내리막이었던 길이 되돌아갈 때에는 오르막이 되어 휠체어를 굴리는 두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중간 즈음 왔을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 불쌍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빵이 젖을까 싶어 빵 봉투를 비에 젖지 않게 하기 위해 가슴에 품고 애를 쓰며 휠체어를 밀었던 기억이 난다.

 

흠뻑 젖은 채 병실에 도착하여 빵을 한입 베어 물자 갑자기 눈물이 고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의 감정이 무슨 감정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내가 고작 이 빵을 먹으려고 이 개고생을 했나 싶은 마음, 고생고생해가며 어렵게 입에 넣었지만 내가 생각했던 그 맛이 아니기에 치밀어 올랐던 허탈함, 비에 쫄딱 젖어 빵을 먹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에 느껴진 처량함 등이 뒤섞인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명확히 기억에 남는 것은 울면서 빵을 먹으니까 정말로 목이 메이더라는 것이다. 참.. 그때는 목이 많이도 메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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