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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Mar 05. 2024

안전벨트가 내 삶에 들어오다

가족

어쩌면, 삶의 유일한 연료는 과거의 추억이 아닐까. 하기 싫은 일도 하고 힘든 사회로 뛰어나가 좌충우돌 부딪치고 있는 것은 통장 잔고와 삶의 불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삶의 여러 페이지 중 살짝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 즐겨보는 여행의 즐거운 기억, 어깨에 짊어진 십자가를 잠시 내려놓고 다정한 나의 사람들과 커피 한 잔 기울이는 소중한 시간, 그때 나누었던 긍정의 기운들, 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것에서 오는 희열, 충만한 기억들로 인해 현재를 잘 살아내고 미래를 맞이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잠들기 전,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몸을 누이며 꼬깃꼬깃 접어놓은 추억을 떠올리거나, '그때 그랬었지' 이야기보따리 꺼내 놓으며 술 한잔, 두 잔 기울이는 우리는  키득키득 웃음소리를 흘리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스물여섯 살, 사회 초년생으로 출근을 시작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출퇴근하는 동료분의 차를 얻어 타고 가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거리는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추적추적 거리를 적시고 있었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디제이의 경쾌한 목소리를 들으며 조수석 창문의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휴지로 힘주어 닦고 있었다. 출근하는 도로의 차들은 주차장처럼 길게 늘어서 꼼짝도 못 하고 있던 그 찰나, 유리 창문을 닦던 내 시야는 온통 하얀 세상으로 바뀌어 버렸다. 2-3초 동안 주위는 적막으로 가득했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아무 불빛도 느껴지지 않는 무의 상태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운전석 쪽 창문 유리가 깨져있었고 운전을 하던 동료분의 왼쪽 이마에  흘러내린 핏자국이 보였다. 반대편 차선에는 차선을 벗어나서 한바뀌 빙그르르 돌아가 있는 승용차 한대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제멋대로 돌아가있었다.   와이퍼 소리와 추적 추적 빗소리만 고요히 들렸다.


반대편에서 달리던 승용차가 빗길에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중앙선을 침범하며  우리 차로 돌진 한 것이다. 다행히 우리 모두는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평상시 안전벨트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나였는데 그날따라 안전벨트에 손이 갔었다. 안전벨트를 안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 사고 이후, 안전벨트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게 되었지만 그리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벨트가 가슴을 가로질러 내려가면서 상반신을 쪼이는 느낌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들들이 태어나고, 자라나면서부터 어느 자리에서든 앉자마자 안전벨트를 매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랜 기간  다정함과 온기를 나누고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을 소중히 하기 위해 어떤 순간에도 안전벨트부터 맨다. 인간이란 자신만 생각하고  이기적인 것이 생존 본능이라 생각하지만 '사랑' 앞에서만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을 가능하게 만든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일궈 나가고 꼬깃꼬깃 접어 놓은 추억들을 어쩌다 펼쳐볼 수 있다면  과거와 현재를 지나 미래를 잘 살아갈 수 있다.


결혼이란 내 삶의 확장판 중 가장 우아하고 잘한 일이며 아름다운 작업이다. 가족은 내게 따뜻한 원동력을  주고,  내 삶의 안전벨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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