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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두리e Feb 27. 2024

선생님, 얼마 벌어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법

" 선생님 얼마 벌어요? "


모두 정수리를 보이면서 고개를 숙이고 책상 앞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데 재원이는 뜬금없이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아이들은 모두 문제에서 눈을 떼며 재원이와 나를 쳐다본다


"우리 아빠 오십 한 살인데 선생님 나이는 어떻게 돼요?

"너네 아빠랑 나이가 같아"

"으잉??? 진짜요? 정말이요? 와 ~선생님 스트레스 엄청 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그렇게 젊어 보이죠?"


​칭찬인 것 인가. 어쨌든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는 말에 입꼬리가 올라가다 멈칫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호기심은 많지만 깊은 생각은 없는 재원이가 보기에도 내가 스트레스 '만랩'으로 보이는 것일까. 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내가 가르친 개념을 제대로 복습해 오지 않을 때마다 학생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다그치니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겠다.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면서 내 안에 이렇게 많은 '화'가 있음에 깜짝 놀랐다. 숙제를 안 해온다거나 개념을 암기하지 않고 문제 풀이로 직진하는  행위에 대해 아무리  숨을 고르고 진정하려고 해도 마음 깊숙한 곳에서 퍼져 나오는 숨은 빡침이 올라온다. 당근과 채찍의 조화, 당근만 쓰기에는 너무 기운이 빠지고  채찍만 쓰기에는 아이들이 모두 학원을 끊을 것 같다. 때로는 채찍을 휘두를 때라고 생각하며 짐짓 더 크게 화를 내려고도 했다.


삼십 대 후반과 사십 대 초반에는 과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태도가 성질 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소리를 질러가며 화를 내었다. 그 시절에는 혈기왕성해서 과제를 매번 안 해 오는 아이의  문제집을 째 버리기도 했다. 의자 들고 무릎 꿇고 있는 벌은 그 보다 역사가 더 길다. 과제 성실도가 낮으면 공부에 진척이 없고 학원을 다니는 이유에 맞지 않고 또한 아무리 다녀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으며 가방 들고 왔다 갔다 하는 형상이다. 아이의 공부 시간을 아무리 분 단위로 잘라봐도 시간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고, 아이들의 게으름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가 사정상 못해올 수도 있지만 내 화의 대상은 매번 성실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나름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학생에게 몇 번 정도 기다림의 과정을 주고, 선생님은 충분히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는 메시지를 주고 난 뒤 야단을 치고 잔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성적을 올려주고 싶다는 욕구도 많았고 카리스마 짱짱한 이미지도 가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노의 상황에서 생겨난 화는 마음을 편하게 하지못했. 다음에도 과제가 불성실하면 더 크게 야단을 쳐야 하나? 화를 냈지만 이해받고 싶기도 했다. 나는 그럴 수밖에 없잖아.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은 없고 '화내는 선생님'만 기억에 남겨둘 것 같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분노의 감정은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잦아질수록 점점 더 커졌다. 가족들에게 조차 과한 표현의 화를 방출하기도 했다. 이러다 내가 스트레스로 병까지 얻을 것만 같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화를 다른 식으로 표현할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제성실도가 낮거나 올바른 방법으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페널티를 주어야겠지만, 그 방법을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중 화가 나려고 할 때마다 이를 두 번, 세 번 되새겨보았다. 시간을 멈춘 채로 일련의 과정을 되새겨본다. 화가 나는 상황인가? 이 관계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 인가? 이 상황을 어떻게 이어나가고 싶은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취할 것 인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아이에게 적절한 페널티를 준 경험이 늘어날수록 내 마음도 긍정적이 되는 묘한 경험이 쌓여 갔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대견했다. 화를  적절하게 선택할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화를 잠재우거나 환기시킬 수 있는 조절 능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지금도 학생들은 수시로, 잊을 만하면, 어쩌다 칭찬만 했다 하면, 나를 스트레스 속에 가둔다. 힘들게 가르쳐 놓으면 개념은 안드로메다로 가 있고 무슨 집중력으로 공부했는지 과제 퀄리티는 아주 낮은 상태로 수업에 오지만 나는 다시 수많은 질문과 고민을 한다. 화를 내는 것은 많은 스트레스를 주지만, 외면하고 싶지 않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답을 찾을 때까지 골몰하며 궁리한다. 내 밑으로 온 너희들소중하니깐.  


선생님은 큰 소리로 화를 내지 않고 너희들을 괴롭힐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늘 공부 중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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