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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Feb 20. 2021

가난이 추억이 되려면..

가난이 추억이 되려면..
지금은 가난하지 않아야 된다.


문득 가난에 대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가난이란 단어를 보기만 해도 울컥해질 때가 있었는데..

이렇게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노래가 나 대신 울어주는 느낌..

노래가 나 대신 앓아주는 느낌이라서..

울고 싶을 때 슬픈 영화를 보는 마음으로, 그 노래를 듣곤 한다. 가사 중에 유독 마음을 후벼 파는 구절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라는 가사다. 정말이지..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사랑도.. 가난도..


다섯의 추억은 다 다르다.  


"저는 형제가 다섯이에요."라고 말하면...

"한 배에서 난 자식이 맞냐?"라는 질문이 돌아올 것이다.

아들이 귀한 집이라.. 양자를 드리겠다는 할머니 협박에 못 이겨 정말로 엄마는 한 배로 우리 다섯을 다 낳으셨다.


3명의 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

한 때는 잘 살았다는데, 그 한때를 3명의 언니들은 정확히 기억하고 나와 남동생은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아빠가 돌아가신 중 1 때부터..

나는 내리막을 급경사로 경험했다.


셋째 언니는 피아노를 전공했다. 아빠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에서 언니는 매일 12시까지 입시곡을 연습했다. 100평도 넘는 3층을, 남에게 세를 주지 않고 셋째 언니를 위해 비워두셨다. 그곳에서 언니는 그랜드 피아노로 입시곡을 연습했다. 매일 12시까지 연습했는데.. 돌아오는 밤길이 무섭다는 언니에게 부모님은 호신용으로 초등학생인 나를 얹어주셨다. 매일 읽지도 않는 소공녀 책을 들고 언니를 따라다녔다. 책은 주로 베개 대신 사용했다.


입시생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는 것은 사실 죽을 맛이다. 시끄러워 죽겠어서 잠이 잘 안 온다. 틀린데 또 틀리고.. 겁나 못 치게 들려서.. 성장기 어린이의 까칠함을 자극한다. 언니 덕분에 클래식 피아노 곡을 좀 아는 체할 수 있는 덕망이 쌓였지만..  초저녁에 따뜻한 집에서 잠을 청했다면 내 키가 몇 센티는 더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것이 내가 기억하는 한 때 정도다. 그 후로 경험한 다른 한 때가 사실 더 많이 기억난다.


양복 입은 남자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우리 집에 들이닥친 일, 쉬지 않고 울려대는 전화벨 때문에 전화기 코드를 뽑아놓고 한참을 지낸 일, 당장 돈을 내놓지 않으면 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며 거실 한가운데 앉아있던 밍크 입은 아줌마, 아빠가 타던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엄마를 협박했던 외삼촌..  나는 주로 이런 일들이 기억난다.


우리 집에 에어컨과 TV를 사주고 간 고마운 삼촌이 실은 순진한 엄마를 등쳐먹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과 엄마를 꼬드겨 어마어마한 대출을 받게 한 지인이 농협 지점장이 되려고 엄마를 이용해 먹은 사실은 철이 든 다음에야 알았다. 인생에서 만약은 없다지만.. 그들이 아니었다면 완만하게 내리막이었을까? 꺾어지듯 내리꽂는 하강의 느낌을 고3 때까지 알뜰하게 참 많이도 경험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날은, 살던 집까지 다 처분하고 고만고만한 2층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낯선 동네로 이사 온 날이다. 이전까지 그냥 어린애인 줄 알았는데, 남동생이 장롱이며 살림살이를 척척 옮겨줘서 그렇게 듬직할 수가 없었다. 그 2층 집에서 셋째 언니와 나는 시집을 갔고, 남동생은 군대를 다녀왔으며, 엄마는 돌아가셨다.


엄마의 장례식 날, 우리는 2층 집에 있는 엄마의 짐을 다 정리했다. 엄마의 옷장에는 아빠가 살아계실 때 선물한 외투가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세상에.. 아직까지 가지고 계셨다니.. 초등학교 때 엄마가 그 옷을 입고 학교에 온 일이 생각났다. 아마.. 그 외투가 버릴 수 없는 '엄마의 한 때'였나 보다. 그날 엄마의 냉장고에서는 마늘장아찌가 자그마치 다섯 통이나 나왔다. 남동생 증언에 따르면 시집간 딸들에게 주려고 손수 까서 담으신 장아찌다. 내가 그 장아찌를 어떤 마음으로 다 먹었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가 나의 추억이고...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시집가서는 자기도 힘들었다는 큰 언니, 이런저런 이유로 엄마를 용서하기 힘들다는 둘째 언니, 그냥 엄마가 안쓰럽다는 셋째 언니,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는 남동생... 우리 다섯 형제의 추억은 각자의 마음에 이렇게나 다르게 적혀있다.


내 인생의 달동네를 나는 추억한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아득한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을 좋아한다.

풍경 안의 작은 나무 한 그루, 개미 한 마리, 풀벌레들은 오늘도 치열한 하루겠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겐 한 폭의 풍경이다.


잔디밭이 깔린 고즈넉한 한옥 찻집에서 통창 너머의 초록색을 마음에 넣듯.. 나도 이제 내 인생의 달동네를 추억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안에서 치열했던 순간들을 멀찌감치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이제는 생겼다. 마흔하고도 둘의 나이에.


바닥까지 내려가 본 사람만이 바닥을 안다.

나의 지금은, 분명.. 바닥은 아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추억할 수 있다.


나의 가난이 자랑이 되는 날까지.


'마음이 흐르는 대로'의 저자, 지나영 교수의 세바시 강연을 들었다. 그녀는 3개 국어를 구사한다. 한국어, 영어 그리고 대구 사투리.. 존스 홉킨스 대학의 교수지만 억수로 구수한 대구 사투리를 구사하고.. 그녀는 그것을 자랑한다. 자랑하면 더 이상 약점이 아니기에...


나는 이렇게 자랑하고 싶다. '저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가난을 이겨내는 생활력!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아요. 이것이 엄마가 저에게 물려주신 유산입니다.'




한 동안 글을 발행하지 못했습니다.

개인 사정이 꽤나 있었던 2월이었어요.

컴퓨터를  대 날려먹었고ㅠ..  하드는 복구가 안됐으며.. 저는 조금 방황했고..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전자책 원고 마감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따뜻한 2월의 토요일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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