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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Mar 11. 2021

1학년 담임이 되고, 홈트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새 학기 담임을 발표하는 날! 하마터면 교감선생님을 붙잡고 멜로 눈깔로 눈물을 쏟을 뻔했다.


'2년째... 1학년 담임이 되다니.. 참 야박하고 좋네요.. 평생 이런 극진한 대접은 처음이라... '

태어나서 처음으로 운동과 친해보고 싶어졌다.

불현듯..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겼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체육 성적은 항상 '미'(도레미의 '미'가 아니고 수우미양가의 '미'다), 초등학교 때부터 달리기를 했다 하면 꼴등이다. 4명이 달리기를 하면 4등.. 8명이 달리기를 하면 8등..  엄마한테 꼴등이란 말 대신 '8등'이라 말했더니.. 우리 집 박옥순 여사는 내가 전교에서 달리기로 8등인 줄 알고 크게 기뻐하셨다. 물론 나는.. 엄마의 조작된 오류와 그로인한 믿음을.. 굳이 정정하려 애쓰지 않았지만.. 운동회날 나를 보시고 진실을 금방 알게 되셨다.


나름 트라우마도 있다. 장애물 달리기를 하다 그만 그물에 걸려 허우적 댔는데.. 전교생에게 아주 큰 웃음을 선사했다. 초등학생 4학년 땐 두발이 줄넘기에 걸려서 두개골의 단단함을 확인해보았고, 중학교 땐 '멀리뛰기'가 그 명칭과 다르게 '매우 가까운 거리'에 착지할 수 있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고등학교 땐 햇볕 알레르기라도 걸려서 운동장에 한 발짝도 안 나가고 싶었는데.. 그 욕구가 생긴 정확한 시점을 기억한다. 고 1 때 공부로 전교 1등인 짝꿍을.. 달리기로라도 이겨보겠다고, 눈감고 100미터 달리기를 하다가 플라타너스 나무에 부딪힐 뻔한 뒤부터였다.


나는 철들고 평생 ing중인 다이어트도 운동은 쏙 빼고 '식단 조절'만 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홈트를 시작했다. 전부. 모조리. 진짜. 정말! ㅠ 1학년 담임이 되어서다.




나는 특수교사다. 특수학교에서 일한다. 작년에 1학년 담임이 된 후 대상포진에 걸렸고  달에 한 번은 링거를 꽂았다. 도대체 8살의 힘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귀요미의 괴력으로 교실에 있는 이동식 칠판이 3번쯤 나자빠졌고, TV 수납장 문짝이 순식간에 뜯겨 나갔다. 교실에선 거울이 사라졌다. 이후.. 깨질 위험이 있는 모든 물건이 사라졌다. 1초만에 교실 창문을 월담해 탈출하는 두 귀요미들 덕분에, 교실부터 운동장까지 세 번쯤 질주했고 생전 처음 달리기로 누군가를 이겨봤다. 그 후로 두 학생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됐다.


그런데... 올해.. 또 1학년 담임이 된 것이다.ㅠㅠ 


사실 학년말 모든 교사는 희망업무와 반을 제출하는데... 나의 무지개빛 희망과는 다르게 학년을 배정한 주최 측의 극진한 대접에 당황둥절할 뿐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지역에선, 올해부터 특수교사도 1학년과 6학년 담임에게 이동 점수(학교를 이동할 때 주는 가산점)를 준다. 두 학년이 기피 학년이라 일종의 당근인 셈이다. 하지만 가산점..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이동점수에도 불구하고.. 1학년과 6학년을 희망하는 교사는 손으로 꼽는다. 교육청과 학교가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해당 학년의 교사에게 이동 점수를 줄게 아니라) 학급당 배정되는 학생수를 낮춰야 된다.


사실 특수학교에서는 모든 학년, 모든 반이 힘들다. 딱히 내가 1학년을 맡았다고 너어어어무 힘들다고 어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세상의 중심에 '1학년 담임! 연임의 부당함!'을 외치느니... 차라리 나는 홈트를 선택했다. 이도 저도 외로운 싸움이라면, 나 홀로 홈트를 하며 내 자신과 싸우는 게 더 효율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일개 담임이라 몸 키우는 것 말고는 딱히 어필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내가 요즘 애청하는 홈트는 유튜브 채널 '여리나 핏'이다. '딱 5분!'을 외치면 시작되는 가뿐한 영상~ 5분짜리 동영상을 3~5개쯤 따라하면 다음날 몸이 뻐근하고 좋다. 딱 좋을 만큼의 찌뿌둥이라 몸도 풀 겸 다음날 또 영상을 보며 따라하게 된다. 아직 '운동'이라고 부르기엔 민망한 수준이지만, 홈트를 시작하고 활력이 생겼다. TV 앞에서 두 딸들과 나란히 운동하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며 우리 집 남똘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작년 6월에는 몸살이 났었다. 코로나로 5월 말에 대면 수업을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딱 한 달 만에 1학년 담임 신고식을 치른 것이다. 덕분에 열이 치솟아 코로나 검사도 해봤다. 올해는 몸살 없이 1년을 완주하는 것이 내 목표다. 병가 없이 1년을 지내는 것! 2021년 버킷리스트 중 하나다. 홈트여~ 내 몸을 가뿐하게 만들지어다!~


우리나라 속담엔 '새옹지마'

미국 속담엔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인도 속담에 '잘못탄 기차가 때론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라는 말이 있다.

나라마다 비슷한 속담이 존재한다는 건 .. 이건 필시.. 여러 인생들로 증명된 가치 있는 명언이리라.. 그래서 믿기로 했다.   


1학년 담임! 그것도 2년 연임! 이 기차가 좀 못되 보여도 홈트를 알게 해 줬으니 이제 목적지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 약골로 인해 불어닥친 내적 갈등과 위기의식.. 거기서 날 구원해줄 홈트.. 이것을 만나려고 1학년 담임이 또 된 것이리라.. 나는! 이것을...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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