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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프 Mar 14. 2023

학부모님께 멍든 우리반 학생사진을 받았다


어제는 퇴근길에 운전대를 잡으며 라디오를 틀었다.

워킹맘이라 자기계발에 1분 1초도 다 쏟아붓고 싶은 나는,,

요즘 운전할 때 영어회화 문장을 암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고플 때 음식을 찾는 것 처럼,,

퇴근길 라디오가 몹시 간절해졌다.


마음에 음악 한꼬집이 솔솔 뿌려지길 바라며 우리 집 지하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음악도 들었다가 웃긴 사연도 들었다가 했다.



그러다 문득 특수교사가 가장 속상할 때가 언제일까 생각해 봤다.

내가 오늘 몹시 속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부주의한 행동을 많이 한다.

교실 뒷쪽 한켠에 있는 장에 두 줄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교과서를 급하게 빼러 갈때, 가위나 풀을 가지러 갈 때,,,

맨날 맨날 책상에 부딪힌다.


그래서 샤워할 때면 무릎이나 허벅지 옆라인에 멍든 자국을 많이 보인다. 그럴 때면, 깜짝 놀라곤 하는데 사실 언제 어떻게 부딪힌지 모를 때가 많다.

주로 '이 멍자국은 도대체 언제쯤 다빠질까' 생각하며 멍하게 멍을 쳐다보곤 한다.

특히 여름에는 무릎이나 정강이쪽 멍이 빨리 빠지길 바라며 괜시리 멍을 꾹꾹 눌러보기도 한다.


한번은 교실문에서 뒤로 돌다 열려진 교실문에 얼굴을 부딛혀 입술에 피멍이 들기도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스피드 ㅜㅜ

아픔을 피함이 이기는 순간,,,


그럴 땐,,

몹시도 부주의한 내가,,,

아주 많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내몸뚱아리는 내껏이니 괜찮다.

문제는 내가 맡은 학생이 다친 상처를 사진으로 마주하면,,

자괴감은 백만배가 된다;;;




지난 주에, 학생의 몸에 멍이 든 사진을 받았다.


내가 봐도 너무 큰 멍인데,,, 문제는 담임인 내가 기억이 없다. 머릿속 CCTV를 돌리고 하루를 차근차근 곱씹어봐도 학생이 어디에도 부딪힌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오늘은.. 아니란 말이지..

그렇다면 전날을 점검해 봐야지!!'


아차차... 그제서야 엇그제 급식실에 다녀오며 계단을 오를 때 마지막 계단에서 넘어진게 생각났다.


'아.. 그때였나보다..'


크게 넘어진 것도 아니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있는

TOP 엘리트 똑똑한 학생이였기 때문에

외상이 없다고 멍든 곳은 없는지 확인하지 않고 지나가버렸다!! 앗불사!


오늘은, 학생 손가락이 화상을 입은 것 같이 부었다는 사진과 카톡을 받은 후

잠시 멍해졌다..


수업시간에 촛불을 불며 '우' 입모양 만들기'를 했던 것!

하지만,, 촛불은 1개였고, 교탁에 있었고, 학생이 불에 손을 댄 적은 없다


그래도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맨 격이니..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왜 손은 화상을 입은 것처럼 부었을까?


"혹시 베이킹 수업을 하셨나요? 내일 물집이 잡히면 화상인지 아닌지 알게 되겠죠"


점심에 펄펄 끓는 뚝배기가 나온 것도 아니고, 오븐을 사용하는 베이킹 수업을 한 것도 아니지만,,,

내 마음은 바로 지옥행이 되었다;;


내가 다치게 한 것이 아니라는 당당한 변명꺼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학생이 도대체 왜! 어디서!! 다쳤는지 이유를 찾지 못해 속상해 죽을 지경이 되었다.


담임인 내가 혹시 모르는 일이 있는지

오늘 수업이 있었던 전담선생님들께 다 전화를 돌리고, 특기적성 담당 강사에게 전화를 하고 그리고 어머니께 전화를 3번 드렸다..


그리고 마지막 전화 후

학부모님은 사진 한장을 보내오셨다


"화상이 아니라 손가락이 멍이 든 것 같네요 어디에 끼인 것 같아요."

ㅠㅠ사건은 다시 원점;;

이제 손에 멍든 것을 초점으로 다시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ㅜㅜ;;


마음이 녹초가 되서야..

그제서야..

오늘 아침,,, 학생이 등교하자마자 몸상태를 확인하지 않은 것이 몹시 후회가 되었다.


부모님께 학생 사진을 받은 3시부터

퇴근 후 집에서 6시쯤..

마지막 전화를 마칠 때까지 나는 지옥에 있었다.



가끔, 특수교사인 나는

다쳐도 아프다고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아침마다 학생들의 몸에 멍이 든 곳은 없나

다친 상처는 없나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

어머니께 보낼 때가 있다.


아마 나는 내일부터 어제 전화온 학생의 몸에

멍이 든 곳은 없나 다친 상처는 없나 확인하고

매일 사진을 찍고

어머니께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맞는 일이지만

뭔가 속상함이 있다.


괜시리 촛불이 미워지고

괜시리 하지도 않는 베이킹 수업이 싫어지고

괜시리 전화했던 전담쌤께 미안해지고

괜시리 특기적성 강사쌤한테 미안해지고

나는,, 기운이 빠진다.


특수교사로 일할 때

좋은 일도 많지만

속상할 때도 있다.


그래도, 어제 학부모님께 전화할 때

내 목소리를 듣고 "우우"했던 OO이가

혹시 담임인 나를 알아봐서 내 목소리에 반응한 건 아닌지 내심 기뻤다.


참..평범하지 그지 없는 특수교사다.

옆반 담임도,, 그 옆반 담임도 학생 얘기를 할 때 눈이 빛나는 이유는 아마 섬광같이 스처가는 보람의 순간을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풍선에 달려 내려와 내 손에 잡혀있는 가느다란 실처럼 섬광의 끝에 매달린 기쁨의 순간을 꼭 잡고 있다. 기억해보면 풍선만한 좋은 순간이 분명히 있음을 기억하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직업으로서의 '특수교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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