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학이 목격한 아메리칸 캐주얼
Before you walk out of my life -Monica-
본문을 쓸 때 듣던 트랙을 공유합니다.
이입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하루키'라는 단어는 다양한 의미를 망라하는 듯합니다. 낯선 이에게 "저는 하루키를 읽습니다."라고 말하기 까지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한때 그는 <원죄>에 가까운 작가였으며 극단적 지지와 멸시, 그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독자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루키스트'임을 밝히면 어떠한 시선에 갇혔고, 읽지 않는다고 해도 그러했습니다. 이름 석 자의 상징이 지나치게 단단했던 탓일까요. 평론가들은 늘 어떠한 이유로 (때론 이유를 만들어가며)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몇 일본인은 그가 '일본인' 문학가임을 부정하기에 이릅니다. 파장을 일으킨 문장과 발언은 늘 양극화된 반응을 낳았지만 그의 펜을 멈춘 적이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키가 부정당한, 바로 그 시절의 하루키에서 그의 상징은 무게를 더합니다.
<상실의 시대>를 통해 하루키는 그의 이름 세 글자를 한국 독자의 머릿속에 확실히 각인시켰습니다. (참고로 <상실의 시대>는 하루키의 보기 드문 논픽션 작품이며, 정작 일본 내에서는 좋은 반응을 이끌지 못 했다) 29살까지 재즈바를 운영한, 마라톤과 간간이 맥주를 즐기는 일본 아저씨의 파급력은 꽤나 매서웠습니다. 그런 일이 가능하기까지엔 그의 '습관적 관찰'이 바탕되었습니다. 신주쿠 번화가 한복판과 지하철 심지어 공중 화장실에서도 그의 <관찰>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노트와 펜만 있다면 어디서든 본 것을 메모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취할까?' 나름의 통계가 쌓이고 작은 물음표들은 그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갈 겨쓴 메모가 쌓여가고 그에게 투영된 세상이 소설 속에 소리없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하루키의 작품은 '서구적'입니다. 비단 문체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교사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일찍이 접한 서양 고전 문학과 재즈바 오너의 경험 덕일까요. 소설의 주제와 제목은 대게 서양 고전 음악에서 착안되었으며 추구하는 (패션)스타일은 미국 실용주의를 바탕으로 전개된 <아메리칸 캐주얼>에 근간을 둡니다. 클래식과 아메리칸 캐주얼을 넘나드는 그의 스타일링은 인물의 성격과 소설의 분위기를 조용히 그리고 주도면밀히 이끌어나갑니다. 옷은 말 없는 대변인일테니까요. 니트 타이, 폴로 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 하루키스트라면 이것들을 입어본 적은 없어도 읽어본 적은 있을 테죠.
<옷에 관한 5 문장>
1. 나는 스누피가 서핑 보드를 안고 있는 그림이 찍힌 티셔츠에, 하얗게 될 정도로 빨아댄 낡은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흙투성이 테니스화를 신고 있었다. -양을 쫒는 모험 中-
꽤나 인상 깊은 조합입니다.
낡고 코가 찌그러진 신발이 예뻐보이는 건 저 뿐일까요? 물 빠진 리바이스 진과 지저분한 스니커즈의 멋을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죠. 노벨 문학상에 거론되는 작가 중에서라면 더욱이 말이죠. 자칫 투박할 수 있는 조합에 스누피 프린팅을 넣어 (그런지와 모던 사이의) 밸런스를 잡은 것도 무척 좋습니다.
2. 핑크색 티셔츠에 짧은 데님 바지를 입고, 녹색 데이팩을 짊어지고, 무릎 위에 모자를 얹어 놓고 있었다.
-버스데이 걸 中-
녹색 데이팩 때문이었을까요? 하루키는 <헤비듀티>에 대한 센스까지 겸비했다고 느껴집니다. 투박한 상하의에 데이팩까지 매치했다면 분명 우연은 아닙니다. 색감 좋은 티셔츠에 (직접 자른 듯한) 밑단이 너덜너덜한 컷팅 진 하나 입어주면 그게 바로 헤비듀티니까요. '헤비듀티'는 실용적이고 튼튼한, 기능적이고 오래 가는 그 모든 의류를 망라합니다. 한때 '양복 후진국'이던 일본을 아이비 룩, 아메카지를 거쳐 패션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장본인, 헤비듀티. 이는 추후 포스팅에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3. 그녀는 감색 폴로 셔츠 위에 같은 색 면 스웨터를 입고 장식이 없는 은색의 가느다란 머리핀을 뽑고 있었다. 바지는 흰색 진이었다. 테이블 구석에는 화려한 파란색 선글라스가 놓여있다.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 中-
종종 특정 브랜드도 언급합니다. 폴로, 리바이스 등이 그러한데, 대게 아메리칸 캐주얼를 표방하는 상징직인 브랜드입니다. (중에서도 폴로가 단연 압도적입니다) 네이비&화이트, 블루&화이트는 늘 성공적인 궁합을 보입니다. 버튼 다운 셔츠와 치노 팬츠의 조합은 진취적이며 프로페셔널한 (한 손에는 테이크 아웃한 커피를 든) 패션지 에디터를 연상시킵니다. 같은 컬러의 셔츠와 스웨터를 입힌 점도 인상적입니다.
4. 붉은 터틀넥 스웨터에, 블루진을 입은 차림에, 신발은 보통 데저트 부츠를 신고 있었다. 화장기는 거의 없었고, 머리는 포니테일 모양이었다.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中-
레드 & 블루는 쉽사리 손이 가는 배색은 아닙니다만 마음 먹고 멋 부리는 날이라면 괜찮은 조합입니다. 대비감이 있는 색들이지만 톤만 잘 맞춘다면 좋은 짝꿍이 돼버리죠. 해변가라면 역시 맨발이었겠지만 하루키의 선택은 데저트 부츠였습니다. 로퍼도 아니고, 플랫 슈즈도 아닌 데저트 부츠라뇨. 이렇듯 (일상적이지만) 구체적인 코디네이션 안에 인물의 성향을 관철시킵니다. 덧붙이자면, 하루키의 소설 속에서는 포니테일 머리의 여성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5. 가느다란 핀 스트라이프 무늬 하얀 셔츠에 갈색 니트 타이, 셔츠 소매는 팔꿈치 언저리까지 접어 올렸다. 바지는 크림색 치노 팬츠였고, 신발은 부드러운 갈색 가죽 로퍼, 양말은 신지 않았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中-
아쉽게도 사진에선 가죽 로퍼도 아니고 양말까지 신었네요. 책에선 "양말은 신지 않았다."라고 하루키가 굳이 강조해주었습니다. 치노 팬츠에 가죽 로퍼라면 맨발이 최고라는 것을 알았던 거죠. 글을 쓰기 위해 세상을 탐색했던 하루키의 레이더 망에 수 많은 멋쟁이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세기 초 미국 산업은 전례없는 경제적 번성을 이룹니다. 노동자들의 옷은 쉽게 닳고 해어졌으며 육체 활동에도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인류는 튼튼하고 실용적인 (대량 생산 또한 가능한) 의복, <아메리칸 캐주얼>으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당시 유럽 패션계가 선보인 오뜨꾸뛰르, 프레타포르테와는 상반된 스타일이다)
오늘날 확고한 취향과 개성은 없다면 서글픈 하나의 '덕목'으로 자리 잡습니다. "나는 남들과 달라."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드러낼 수단은 역시 패션일테니 말이죠. 누군가는 1세대 지쟌의 신치백으로 또 누군가는 눈에 띄는 로고나 못생긴 신발로 '나'라는 브랜드를 차별화합니다. 서로 다른 것을 입은 듯하나 우리 모두 아메리칸 캐주얼을 즐깁니다. 당신이 어제 입은 구찌의 (칼라에 벌 자수가 있는) 드레스 셔츠와 지금 입고 있는 나이키 윈드브레이커 재킷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집어든 보세 면 바지까지. 이 모든 기성복에 아메리칸 헤리티지가 묻어납니다. 눈을 돌리면 시공간을 초월한 수 세기 전 의복을 마주합니다. 인류 근대화의 집약인 '아메리칸 캐주얼'은 여전히 누군가의 옷장에 또 누군가의 글 속에 그렇게 자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