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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dy Feb 06. 2021

옷쟁이들은 무슨 책을 읽을까?- 1편

아메카지부터 클래식 웨어까지. 활자로 넘겨 보는 패션 이야기.

Get Out Of Your Own Way -U2-

본문을 쓸 때 듣던 트랙을 공유합니다.

이입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당신이 옷을 좋아한다면 독서는 꽤 멋진 취미가 되어줍니다.

신중히 옷을 골라왔다면, 서점 한 켠의 훌륭한 책을 골라내는 안목 역시 당신의 것일 테니까요.


1. 다양한 취향 속에서 자신의 것을 찾아간다.

2. 디자인(북커버)에 매력을 느끼고 세세한 디테일(줄거리)에 또 한번 감동합니다.

3. 어떠한 브랜드(작가)에 대한 선호가 자신의 취향을 대변한다.


제가 생각해본  옷과 책의 공통점입니다.

고리타분한 글이 옷쟁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이는 비단 정보에 관한 것을 넘어 스타일링과도 결부됩니다. 가령 2가지 장르를 믹스 매치할 때, 각 장르의 뿌리를 알고 하는 것과 단순히 섞어 입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가 복장에 영향을 주었는지 여부를 떠나 옷을 더욱 오래 즐길 동력이 되어줄테니까요.


저 역시 발품 팔며 옷을 배운 사람입니다.

겁도 없이 샵에 고개를 내밀었고 직원분들과 친해지고 싶었습니다. 허나 눈이 높아지고 머리가 크며 그런 행동들은 전보다 어려워졌고 간단히 옷을 입는 것만으로 채울 수 없는 지식의 공백을 절감했습니다. 또 그것이 바로 '애매한' 고수와 '절대' 고수를 가르는 비기랄까요.


책을 읽는 것은 참 따분한 일입니다. 누군가에겐 조용한 공간도 필요할 것이고 충분한 시간도 들여야 하니까요. 허나 힘들게 쌓아온 지식은 내 안에 오래 남아 줍니다.


제 안에 오래 남은 그래서 소개하고 싶은 몇 권의 책들입니다.


*편의상 장르를 구분합니다. 절대적 기준이 아닙니다.




<옷쟁이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1편


패션 에디터 시절의 나. 조금은 말랐고 눈매는 날카로웠다.


1편  아메카지, 아메리칸 캐주얼



1. <레플리카> 저자: 박세진

박세진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작년쯤의 일입니다. 우연히 그의 포스팅을 접했고 밀도 있는 글솜씨와 옷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인상 깊었습니다. 매거진 <GQ>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기고 활동, 현재 한국일보에 '박세진의 입기, 읽기'라는 패션 칼럼을 연재합니다. 제가 늘 꿈꾸던 행보를 만난 반가움과 더불어 '아,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하는구나.' 하는 씁쓸함이 교차했달까요.


책은 캐주얼 의복의 역사와 흐름, 그리고 문화적 의의 등을 생산자와 제작자의 시점에서 들여다봅니다. "구찌와 발렌시아가 같은 럭셔리 브랜드가 왜 굳이 일본산 데님을 사용했다는 문구를 꼭 기입하는가, 데님의 본고장 미국이나 유수의 데님을 선보이는 이탈리아나 프랑스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와 결국 "'Made in Japan' 데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렇게 사소하지만 시장을 좌우지하는 물음표들은 일반인의 구글링으로 해결하기엔 벅찰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의 등장을 이해키 위해서는 변화하는 소비 패턴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합니다.


옷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 등장하고 마니악한(열성적인) 소비자들은 작은 단추의 모양, 주머니 천의 재질, 사용된 실의 색생과 굵기 등을 비교하며 제품을 비교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를 자극하며 제품의 퀄리티를 올려가는 거죠. 당연히 그러한 절차에는 '가격 인상'이 뒤따르고 대중은 점점 옷과의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가격 인상의 과정을 모르는(모를 수밖에 없는) 대중이 천정부지로 형성된 가격을 단번에 수긍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자연스럽게 위화감이 조성되고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패션의 맹점이 생겨나는 순간입니다.



스누피가 그려진 이 스웨트 셔츠(맨투맨)는 얼마일까요? 얼마 정도면 소비자는 납득을 하고 구매로 이어갈까요? 3만 5000원? 4만 원?


대략 16만 원입니다. 어마어마합니다. 누군가에겐 상하의를 전부 사도 돈이 남을 가격일 테니까요.


스누피는 오래전부터 미국의 국민 애니메이션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즐기는 귀여운 캐릭터였죠.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국의 젊은이들 역시 스누피에 대한 애착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라이터와 패치 등 각종 소지품에 스누피를 새겨 넣기 시작하고 스누피는 밀리터리 의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일종의 휴식이자 놀이, 소년 시절을 그리워하던 청년들의 향수가 담긴 하나의 문화가 된 것이죠.


어떠신가요? 저 주황색 물 빠진 스웨트 셔츠가 조금은 달라 보이시나요? 목 부분 사소한 V 모양 스티치와 봉제 방식, 그 위엔 당시 청년들의 문화가 담긴 스누피 프린팅까지. 한 벌의 옷이지만 그 안에 문화와 시대를 향한 동경이 담겨있습니다. 이제 16만 원은 누군가에겐 문화에 대한 비용이 됩니다.


비단 패션이라는 작은 바운더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비용 지불에 대한 선택지는 다양해진 만큼 우리 역시 그에 걸맞는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진 않을까요? 작가 박세진은 다양한 브랜드와 문화를 소개하며 일반인과 마니아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동시에 하나의 마니악한 창작물을 내놓음으로써 계층의 명맥을 유지합니다.




2. <헤비듀티> 저자: 고바야시 야스히코


헤비듀티. 누군가에겐 익숙하지만 또 누구에겐 참으로 낯선 단어입니다. 요약하면 "튼튼하고 실용적인"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계절 별로 어떤 것을 어떻게 조합하는 것이 "진짜"다운지, 또 어떻게 "진짜"를 구별하는지.


트렌드가 쏟아지고 아이템은 범람합니다. 우리는 정보 안에서 혼동하며 때론 방향감각마저 잃습니다. 이는 우리가 마주하는 첫 번째 장벽이며 어지러운 워드롭을 구축하는 가장 빠른 길일테죠.


이 책은 강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의식을 느낀 모든 이들의 조력자로 나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특히 아웃도어 굵직한 브랜드, 예컨대 엘 엘빈, 파타고니아, 노스페이스와 레드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흔한 브랜드 히스토리와는 꽤 다릅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정도로 디테일해도 되는가?'라는 의문마저 들지만, "진짜"를 정의하는 책이라면 역시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뒤표지의 여우 한 마리. 분명 의도적인 디자인일 텐데, 도통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르면 구글링 하라. 글을 쓰며 가진 신념입니다.




오버롤즈 님(이하 "")과 <헤비듀티>의 편집자 민구홍(이하 "") 님의 인터뷰를 윤문한 내용입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오버롤즈


오: 의외로 <헤비듀티>의 여우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민: 기본적으로 '실용'에 관해 탐구하는 만큼 책의 디자인도 실용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기준에서) 보기 좋으면서, 작업 과정도 간편하도록이요. 앞표지는 책의 제목을 큼지막하게, 뒤표지에는 책의 내용을 재현하거나 함축하지 않는, 그저 귀엽기만 한 동물 사진을 넣자는 큰 원칙을 세웠죠. 어떤 동물이 좋을지는 작업을 하며 (되도록 내용과 무관해 보이는 쪽으로) 그때그때 결정했습니다. 그러니 동물의 의미보단 다음엔 어떤 귀여운 동물이 뒤표지를 장식할지 기대해주신다면 좋겠네요.


표지마저 실용성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실용성은 "만들기 편함""보기 좋음"이네요.

의도성을 갖추지 않는 것이 의도라니.. 심오합니다.


1977년 출간된 일본판 <헤비듀티>




3. <아메토라: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 저자: W. 데이비드 막스

따끈따끈한 신작. 출간 한 달 만에 베스트셀러를 달아버린 <아메토라>입니다. 일본 문화 전반을 다룬 그의 글은 매거진 <뽀빠이>, <브루투스>등에 소개되곤 했습니다. 재밌는 이력이라면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 '베이프(a bating ape)'를 다룬 논문으로 수상까지 했다는 점이네요. 번역은 앞서 소개한 <레플리카>의 저자 박세진 님이 힘써주셨네요.



우선 아메토라는 줄임말입니다.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줄임말이죠. '아메리칸 캐주얼'이 일본 구어체에 따라 '아메카지'가 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저도 아직 접해보지 않은 도서라 한 자 한 자 조심스럽습니다. 우선 부제목 '일본은 어떻게 아메리칸 스타일을 구원했는가'에 눈이 가네요. 일본이 외부 문화를 흡수해 자신들의 것과 녹여내는 실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는 단순히 모방의 단계를 넘어 하나의 독자적 스타일로 재분류시키는 과정입니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단연코 패션이고요. 이전 포스팅에 언급했듯 일본 내 미국 의류의 유입은 전쟁과 패전을 기점으로 이루어집니다. 갑작스러운 경제 호황과 넘치는 물량을 통해 독보적인 트렌드가 마련됩니다. 문화 자체가 의류를 통해 함께 이동한 것이죠.



1980년대 초반 일본의 시부야 등에서는 지역의 고등학생, 대학생을 중심으로 아메리칸 캐주얼 복장이 유행합니다. 시작은 지극히 평범한 즉 댄디한 옥스퍼드 셔츠, 페니 로퍼 등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스타일이 구축합니다. 깔끔한 브룩스 브라더스의 금장 블레이저 아래 하얗게 에이징 된 부츠컷 청바지를 입는 거죠. 신발 역시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웨스턴 부츠를 택했습니다. 2021년 구글의 알고리즘은 이를 '시부카지'로 명명합니다. 파생되고 재편성된 문화의 극명한 사례가 된 거죠.


오타쿠라는 단어가 곡해됐음을 새삼 느낍니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에 비롯된 장점은 다양한 장르에 파급력을 선사합니다. 마니악한 패션부터 록 음악과 피규어, 애니메이션 등 하위문화(서브 컬처)에 대한 수요가 결코 작지 않으며 소비층도 명확합니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고 마니악한 시장이 유지되는 동력과 결부합니다. 일본 내 아메카지는 광범위한 장르를 망라합니다. (정작 일본 내에서 아메카지라는 용어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밀리터리, 워크, 웨스턴, 아이비, 프레피, 서프, 히피, 로커빌리, 핫 로드 등 미국에 근간을 둔 수많은 정서를 수용하고 이내 자신들의 색으로 동화시킵니다. 이렇게 입어도 아메카지고 저렇게 입어도 아메카지인 거죠.


국내에 '아메카지'가 소개된 것은 비단 몇 해 전의 일입니다. 그마저 온전히 이해될 새도 없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소비되었죠. 그 탓에 각자 알고 있는 아메카지가 하나의 아메카지가 아니고 대부분 아메카지의 극히 일부만을 이해하게 됩니다. 가끔 유튜버들이 소개하는 아메카지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다양한 개념을 하나의 단어에 욱여넣으려니 조명받지 못한 부분이 생깁니다. 불판 가장자리 고기는 구워지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앞으로 한국에 찾아올 다양한 패션 트렌드와 동향. 우리 모두가 오타쿠일 필요는 없습니다. 옷과 문화를 그저 지폐나 소속감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조금 더 세심한 시선으로 대한다면 수십 년 뒤 '서울카지', '부산카지'를 검색하는 후세대를 맞이할 수 있을까요.




<옷쟁이는 무슨 옷을 입을까?> 2편에서는 빈티지 워크웨어와 밀리터리 웨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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