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dy Feb 09. 2021

Weight in Gold

비범한 노력, 고귀한 인내

Nocturne -Frederic Chopin-

본문을 쓸 때 듣던 트랙을 공유합니다.

이입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지소울을 알게 된 건 2017년 여름의 일이다. 나는 풋내기 고시생이었다. 서늘한 저녁이 되면 고시원 옥상에 올랐다.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기 위해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쥐처럼 말이다. 3000원짜리 맥주를 마셨고 9000원짜리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남들에 비해 초라한 스무 살 여름이었지만 그것이면 충분했다. 옥상에서는 한 곡의 노래만 들었다. 지소울의 weight in gold. 붐비는 올림픽 대로와 내 얼굴이 함께 붉어질 때면 나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태양이 한강으로 지고 백야가 63 빌딩에 걸릴 때쯤의 일이다.



당시 지소울은 15년간의 긴 연습생 시절을 마치고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입대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는 무명이었고 사람들은 그의 음악 스타일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4년 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보여준 weight in gold보다 간절한 무대는 본 적이 없다. 노래 제목처럼 'weight in gold'하는 이의 긴장과 두려움, 타는 듯한 목마름을 피부로 느꼈다. 화려한 기교와 밴드 세션은 중요치 않았다. 눈을 감고 들을 때 상충하는 감정과 감정 사이의 떨림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지소울의 워너뮤직, 굿프로젝트와의 공동 계약 소식을 접했다. 딩고 프리스타일에 출연하고 보이스 코리아에서 주목을 받았더랬다. 이제 그는 유명해지고 그의 노래를 듣는 이도 많은 듯하다. 하지만 "15년 연습생, 못 뜨고 입대한 가수"라는 공포와 그 일련의 과정, 그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보컬 천재.", "음색이 타고났네.", "완전 외국 감성인데?"



누군가의 짙은 노력은 천재, 타고난 사람이라는 수식으로 짧게 정의된다. 무대 뒤에선 연습, 연습, 연습. 노력, 노력, 노력. 누군가는 새벽까지 녹음을 하고, 춤을 추고, 나는 글을 쓴다. 오랜만에 SNS에서 마주한 그의 표정은 여전히 담담하고 비장해 보였다. 긴 무명 시절을 청산하기에 독기는 충분하다는 듯. 허나 대문짝만하게 걸린 그의 수식, “보컬 천재의 등장".



우리는 소위 '천재'들의 노력을 간과한다. 내가 해내지 못하고 부족한 것을 변호하기에 용이한 수단이다. '나랑은 잘 안 맞아서 못 한 거야.' 노력 역시 재능이자 적성이다. 천재는 비범한 이가 아니다. 무언가 끈질기게 도전하고 결국 이루어내는 사람, 그 사람의 노력이 곧 재능이 되는 순간이다. 관객은 무대 앞만 볼 수 있다. 아름답게 꾸며지고 준비된, 완성된 퍼포먼스 말이다. 무대 뒤의 아수라장, 피범벅과 절망 따위에는 털끝도 닿지 못한다. 퍼포먼스가 끝나면 사람들은 말한다. "저 사람 정말 타고났어."



종종 누군가의 글을 수정, 퇴고해준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글에 소질이 있다고. 내 글이 잘 읽힌다고. 나는 나의 글이 부끄러운 수준임을 알고, 설령 나쁘지 않다고 한들 그것이 나의 노력에 기인했음을 알고 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동네 벤치에 앉아 새벽 5시, 6시까지 글을 썼다. 나의 오랜 루틴이다. 만족스러운 글이 나오기 전까지 집에 들어가는 법은 없다. 추운 날에는 패딩을 두 개씩 껴입었다. 글이 완성되면 비로소 졸음이 밀려들고 나는 깊은 잠을 청했다.



글을 잘 쓰는 재능은 없어도 잘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나의 재능이던 것이다. 아직도 지소울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케이지비의 달콤씁쓸함이 입안에 감돈다. 이제 말할 수 있다. 그건 'weight in gold'하는 이들만의 달콤함이었다고.

작가의 이전글 옷쟁이들은 무슨 책을 읽을까?- 1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