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음 훔치기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선 _ 김달님
25p
‘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아 할머니 말에 대꾸하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문득 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옆이라는 말보다 더욱 파고드는 느낌의 곁 ‘
오후 5시에서 6시 넘어가는 시간
해의 그림자가 뉘엿뉘엿 우리들의 얼굴을 지우고 달의 무리가 스물스물 올라와 나머지 얼굴까지 지워버리는 그 시간
엄마는 그 시간이 싫다고 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자꾸 떠올라서 가슴이 시큰하다고 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약 한 달간 아픈 할머니의 병간호를 우리 집에서 엄마가 했었다.
우리 외할머니는 췌장암으로 꽤나 고생을 하고 돌아가셨다.
암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는 암이었다.
할머니는 자주 소리도 지르고 엄마에게 험한 욕도 하고 쥐어뜯기도 했었다.
어느 날은 어린아이 달래듯 모든 부분을 잘 다독여주는가 하면 또 어떤 지쳐있는 날에는 엄마도 사람인지라 할머니한테 소리도 질렀다.
“엄마 도대체 왜 그래”
“밥은 먹어야지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날 서게 말했던 그 말들은 다시 되돌아와 엄마의 마음을 생채기 냈을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엄마 남은 인생에서 혀 끝에 남은 그 모졌던 말들이 엄마를 종종 자주 아리게 할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할머니를 지켰다.
매트리스에 꼼짝없이 갇혀 누워있는 할머니의 그 좁고 작은 공간을 언제나 한 뼘 뒤에서 곁을 지켰다.
엄마는 할머니의 그 작은 회색 공간이 어떻게 하면 색깔로 물들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다.
요리조리 위치도 바꿔보고 할머니 옆에 초록색 식물도 여러 개를 들여놓기도 하고 나름대로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듬뿍 묻어있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의 색깔로 할머니의 공간이 다채롭게 물들어가는 것과는 별개로 할머니의 병은 차도가 없었고 결국 할머니도 요양병원에 가시게 됐다.
할머니가 떠난 그 공간과 시간에 여전히 엄마가 있다
지금도 여전히 엄마는 그 시간을 지키고 있고 엄마는 할머니의 곁에 있다.
저물어가는 해와 또 그와 같이 저물어가는 본인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작고 약해진 할머니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코가 새빨개진 엄마의 얼굴과 뒷모습을 또 내가 바라본다.
나도 우리 엄마가 힘없이 저물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어떤 마음으로 엄마의 곁을 지켜야 할까.
한 공간에 있는 우리들이 너무 씁쓸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마음 훔치기 _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