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지붕 #2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지하 1층에는 공중전화기가 1대 있었다.
자주, 종종 2교시가 끝나고 집에 전화를 걸곤 했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수는 12개의 3개 층. 습기를 가득 머금은 곰팡이 냄새.
1개, 2개.. 12개 , 전화기 앞에 마주한 실내화를 신은 9살의 작은 아이.
*23#- 수신자 부담 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신호음이 걸리면서 나는 두려웠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을까 봐, 아니 엄마가 전화를 받지 못할까 봐
나는 엄마가 우리를 두고 죽어버릴까 두려웠다.
지옥 같은 긴긴밤을 지새우고 그다음 날 유쾌하고 밝은 엄마처럼
아침 해가 떠오르면 그렇게 엄마처럼 햇살처럼 , 가버릴까 봐 자주, 종종 무서웠고 그래서 전화를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때부터 아니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더 어린 유년시절부터 하루의 끝, 삶의 유한함, 죽음의 가능성을 늘 품고 살아왔던 것 같다.
이렇게 퀘퀘묵은 회의적인 마음은 지금의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내일 당장 내가 삶을 마감하더라도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희망적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좋은 면도 있긴 하다.
오늘을 마지막처럼 살기 위해 '노력'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나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나와의 마지막 연락을
나의 유언이 될 수 있는 마지막 나의 맺음을
기억해 줄 수 있는
마지막 사람이 될 수 있기에
내가 기록에 많은 공을 들이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일기 쓰기, 영상기록,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보라색지붕의 단편들 등등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참 많이도 애썼던 게 지금까지도 버릇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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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삶에 미련이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내일 죽어도 그만, 아니 지금 2시간 뒤에 떠나도 그만이란 생각이었다.
이만하면 잘 살았고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줏대 있게 , 적당히 잘 놀고 간다 라는 생각으로
남편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이기적 이게도 정말 그런 마음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가 하늘이자, 땅이고 전부이고 , 마음 가득가득 온통 나로만 가득 차있는,
내가 본인의 전부인 세계인 이 아이의 깊고 맑은 눈을 본 순간
나는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은
그 아이의 하늘인 내가 무너지면 안 되고
그 아이의 온 전부인 내가 헝클어지면 안 되고
그 아이의 온 마음인 내가 그 아이를 저버리면 안 된다.
내가 그 아이에게 새 숨결을 불어넣어 줬다지만
오히려 나는 이 아이가 뱉어낸 숨을 마시고 다시 거친 숨을 토해낼 수 있었다.
매연처럼 지저분하고 연기 가득한 꽉 막힌 숨을
턱 하고 내뱉을 수 있었다.
나를 구해준 내 아이
꾸역꾸역 어떻게든 살아온 내 삶의 이유는
너를 만나기 위해서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회의적이었던 나를 다시금 살게 하게 하는 나의 작은 보물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