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시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 기록들
오늘로부터 일 년 전인 2022년 3월 6일 베를린에 다시 도착했다. 2020년 봄, 울면서 떠나온 뒤로 이 년 만이었다.
나는 베를린을 정말 좋아하고 동시에 미워한다. 가끔은 이 도시를 왜 이렇게 생각하고 좋아하는지 괜히 억울하고, 베를린을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건지 진짜 좋아하는 건지도 헷갈린다. 그 도시에 반년을 머무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는데 가끔은 내가 그 많은 감정들과 생각들을 소화하지도 못하는 것 같아 버겁게 느껴졌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도 어쩐지 그때를 다시 돌아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돌아보고 정리하게 되면 정말 과거의 흔적으로 머무르게만 될까 봐, 한때의 기억으로만 그칠까 주저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여전히 베를린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다시 가고 싶다. 왜 좋냐고 물으면 간편한 답은 베를린은 모두에게 평등한(척하는) 도시여서 좋았다고 말한다. 소수자성이 약자로만 부각되는 것이 아닌 도시 전체가 거대한 소수자성의 집합체 같은 느낌. 물론 그건 베를린이 힙한 척하고 싶어서 지향하는 거고 속내는 시꺼멓다고 해도, 그래도 좋았다.
베를린이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다문화 도시이고, 그런 도시가 만들어내는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추구에 대한 이야기는 베를린으로의 교환학생을 결심한 이유였다. 그리고 실제로 느꼈던 베를린은 기대보다도 더 아름답고, 삭막하고, 재밌고, 더럽고, 이상한 곳이었다. 그래서 정말 마음 놓고 행복할 수 있었다.
국제 여성의 날이 휴일인 베를린에서 들뜬 분위기 속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거리를 행진하기도 했고, 과거와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유대인 박물관과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보며 독일인 친구와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한국에서 베를린으로 놀러 온 친구와 우연히 만난 그의 또 다른 친구와 다 함께 친구 먹고 야외 상영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귀국 전날 폭우를 맞우며 한국 문화원에서 한국어로 쓰인 책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유명한 베를린 테크노 클럽에서 모두가 각자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춤추던 순간, 게으른 몸을 이끌고 마트에 가 장을 봐와 저녁을 만들어 플랫 메이트와 나누어 먹던 순간, 베를린과 함부르크의 퀴어 퍼레이드를 익숙한 친구들과 또 처음 보는 친구들과 함께 하던 순간, 기숙사에서 빨래를 돌리려는데 돈이 모자라서 당황하던 순간, 학교를 같이 가는 친구가 매번 늦어서 로비에서 조금 짜증 난 채로 기다리다가 급하게 에스반을 타러 가는 순간. 그런 모든 순간들이 앞으로도 오래오래 생각날 거다.
온 마음 다해 좋아했던 베를린과 다시 어떠한 형태로든 만나길 바라며 지나온 기억들을 다시 떠올려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