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80년생이 온다

by 와이
“마치 책 속에서 손이 나와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 - 연극 <히스토리 보이즈>


#1

지난날의 추억 속에는 항상 실패의 기억이 있다.

지나간 시간들은 대개 따뜻함으로 기억된다. 힘들었던 기억은 어쩐지 흐릿해지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만 남는다. 그래서 그립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질긴 생명력으로 마음을 잡아끄는 씁쓸한 기억들도 있다. 그것들은 그 순간조차도 ‘힘들지만 즐거웠던’ 기억들이 아니다. 그저, 부끄럽고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우며 눈물이 가득한 그런 순간이었다. 이 기억들은 아련한 맛으로 남아 수시로 생각의 발목을 잡아 끈다. 돌아보기 싫으면서도 자꾸만 돌아보게 되는 그런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성공의 기억보다도 그런 실패의 기억들이 나를 만들어왔다. 이런 패배감과 절망감이 이 세상을 마주하는 나라는 존재를 주조해왔다.

그래서 약간의 따뜻함과 많은 쓰라림으로 나의 초상화이자 지도인 그 기억을 써보고자 한다.


#2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90년생’은 마치 예전의 ‘X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그랬듯, 새롭고도 독특한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기성세대가 공을 들여 그 문법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그런 개념 말이다. 그 덕에 나는 약간 애매한 입장이 되고 말았는데, 엄밀하게는 내 주민번호가 9로 시작하지 않으니, 이 흥미로운 사회현상의 일원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또 90년으로부터 한 뼘 차이밖에 안나는 그런 나이인지라 정서와 문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사회에서 누군가 ‘90년생’에 대해 논하면 이쪽도 저쪽도 되지 못한 느낌을 받곤 하는 것이다. 입사 1, 2년 차 직원의 답답함도 이해가 되고 상사의 인사 고민도 이해가 된다. 파란 화면의 전화 연결음이 시끄럽던 유니텔도 기억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우리에게 안긴 스마트폰의 세계도 익숙하다. 개인적 삶도 중요하지만 사회의 질서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상황이겠지마는 주변을 둘러봐도 내 친구들은 어디 있나 모르겠다. 대학 시절만 해도 또래 친구들이 있었는데,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다들 각자의 길로 소리 없이 사라졌다. 주변에는 나보다 대여섯 살 앞선 사람들과 네다섯 살 뒷선 사람들뿐이다. 그래서 그중 누구와 얘기를 나눠도, 다 통하지만 다 통하지만은 않는다.

내 친구들은 어디에 있을까? 찾을 수 없는 그들을 불러본다. 그래서 같은 시공간에서 길러진 우리의 기억을 적어본다.


#3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이 글을 쓴다. 약간의 성공 그리고 많은 실패의 기억들이 나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쓰고 같은 시공간 속에서 자라난 얼굴 없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