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도 함께할 수 없는

미니 피자의 기억

by 와이

초등학교 5학년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전학을 갔다. 집이 이사를 하면서 동네가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에서 ‘전학생의 첫 날’에 대한 묘사로 하필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은 소설인 게 문제라면 문제였겠지만. 전학 가기 이전에도 그다지 폭넓은 교우관계를 가진 편은 아니었기에, 일면식도 없는 또래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처음으로 내보이는 것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그래도 첫날의 아찔함에 비해서는 그럭저럭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에 적응해나갔던 것 같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교육열이 뜨거운 동네이기 때문이었을까. 학교 수업 시간 중 나는 종종 당황스러운 상황에 놓이곤 했다. 특히 수학과 영어 시간이 그랬다. 수학익힘책 제일 마지막에는 항상 ‘약간 어려운’ 문제가 있었는데, 아직 학교에서 원주율을 배운 적이 없으니 나는 모눈종이에 예쁘게 그려진 로봇의 둥근 머리 면적을 계산할 도리가 없었다. 포마드로 머리를 멋들어지게 넘긴 통통한 남자애는 당연하다는 듯이 3.14라는 근본 없는 숫자를 곱해서 면적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난 3.14라는 게 어디서 튀어나오는 숫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영어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하루는 영어 시간에 선생님이 직접 준비한-교과서에는 없는-‘재밌는 공부’로 영어 끝말잇기 프린트를 나눠주었다. 그리고 앞사람과 짝을 지어 작성을 하라고 했다. ‘-e’로 끝나는 무수한 단어들이 이어지는데, 나는 몇 단어 적고 나니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내도 더 이상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만 그랬다. 다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영어 단어를 막힘없이 이어나갔다. 그것은 너무도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세상에서 나만 바보가 된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나는 집으로 돌아가 엄마한테 영어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생애 첫 학업을 위한 학원(피아노 학원은 제외하자)을 다니게 되었다.


그 학원은 강남에서 유명한 대형학원의 분점이었고, 시장 골목 사이의 낡은 상가 건물에 위치하고 있었다. 샛노란 학원 셔틀을 타면 집에서 15분 정도 걸려 왕복할 수 있는 그런 거리였다. 학원반의 담임 선생님은 만화 캐릭터 같은 인상의 특이한 사람이었는데, 수업도 유쾌하게 진행하는 편이었고 덕분에 뜻밖의 계기로 시작하게 된 학원 생활이었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다만 숙제는 정말 하기 싫었는지, 매번 집으로 돌아오는 흔들리는 학원 셔틀 안에서 후딱 끝내곤 했다.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나니 시력이 크게 나빠져서 안경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건 참 어리석은 일이었지만.




그 학원을 다니면서 친구 H를 만났다. 그녀는 나와 같은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를 다녔지만 그때까지 딱히 같은 반이었던 적이 없어 학원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우리 둘을 친구로 묶은 건 만화에 대한 열정이었다. 덕력(?) 넘치는 우리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며 친해질 수 있었다. H는 예체능에 재능이 많은 친구라 일러스트도 곧잘 그려내곤 했다. 반면 그림에는 영 재주가 없던 나는 좋아하는 걸 창작까지 해내는 그녀의 재능이 너무도 좋았다.


그렇다. 나는 그 친구가 너무도 좋았다. 학교 밖에서 죽이 잘 맞는 새로운 친구를 사귄 것도 좋았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도, 나는 할 줄 모르는 것을 H가 잘하는 것도 너무 좋았다. 그래서 문제였다.


말했듯이 학원은 오래된 시장 골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아이들을 혹하게 할 만한 온갖 간식들이 달콤하거나 짭짤한 유혹을 쉼 없이 건네는 곳이라는 의미다. 떡볶이나 꽈배기 같은 전통 강호도 있었지만, 그 시절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단연코 '미니 피자'였다. 그 당시만 해도 피자는 좀 더 손에 닿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프랜차이즈 피자라면 요새는 당연히 배달 음식의 일종이지만, 그때 피자는 지금보다 고급품이었다. 그런데 그 골목에서는 '미니 피자'라는 것을 팔았다. 머핀 틀 같은 동그란 작은 구멍마다 진짜 피자와 비슷한 구성으로 까만 올리브와 초록 피망, 핑크색 햄, 빨간 토마토 그리고 노란 치즈가 올라가 있었다. 진짜 피자와 똑같은 맛은 아니었지만, 좁은 골목으로 노릇하게 퍼지는 갓 구운 치즈의 냄새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정말이지 충분해서, 학원 쉬는 시간마다 천원(거금이다)을 들고 그 앞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쉬는 시간은 십여 분 남짓이었으므로 말 그대로 '달려가야' 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곧 예상치 못한 불행으로 이어졌다. 나는 친구와 함께 그 황홀함을 같이 즐기고 싶었지만 친구는 매번 거절했다. 내가 집요하게 꼬드겨도 매번 H는 단호한 태도였다. 서운했다. 그리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너는 왜 같이 안 해줘?

놀랍게도 유치하지만, 이것 때문에 결국 우리는 크게 싸웠다. 어떤 싸움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뒤로 H와 나는 어색해졌다. 그래서 우리는 한 마디도 안 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중학교 내내 H와의 에피소드는 목에 걸린 생선뼈마냥 때때로 나를 괴롭게 하는 아픈 기억이 되었다.


그러던 중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운동장 저 편에 H가 부모님과 있는 것을 보았다. 퍼뜩, 지금이 아니면 다시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인데, 그런 바보 같은 싸움 때문에 이대로 영영 말 안 하는 사이가 되는 건 너무 아쉬웠다. 백번 정도의 내적 갈등을 거친 뒤, 용기를 내 H에게 다가가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그때 그 친구 얼굴에 떠오른 복잡한 표정은 아마 내 얼굴 표정만큼 여러 감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 뒤로 우리는 계속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H는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날 나의 용기를 칭찬한다. 뒤늦게라도 괜한 자존심 세우지 않고 H를 불러 세웠던 16살의 나에게 정말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왜 그랬을까?


나의 미숙함이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을 나도 모르는 새 강요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이었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이여도, 서로 하고 싶은 것은 다를 수 있고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그때는 잘 몰랐다. 어쩌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매번 이런 갈등의 교차로를 마주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점에 끌리지만 결국에는 나와 같아지기를 갈망하는 마음. 처음 누군가를 좋아했던 시작점을 지키고 싶으면서도, 닮아가고 더 많은 스스로를 나누고 싶은 마음. 그 마음 사이에는 균형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이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뒤늦게 그 친구가 얘기해준 마음도 있었다. 자기도 간식을 먹고 싶지만, 그때 용돈이 넉넉하지 않아 내가 자꾸 같이 간식 먹자고 조르는 게 부담스러웠단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친구가 자기중심적인 데가 있어서 그랬을 거라고 긴 시간 동안 생각해왔었는데, 이 얘길 들으니 철없던 내가 더욱 미안했다. 그래도 졸업식 날 내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줘서 무척 고마웠다고도 했다. 그녀도 내가 아쉬웠다면서. 이제는 이미 아물어 흉터조차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그녀가 말해주니 마음이 참 따뜻했다.


지금도 내 책상에는 그리운 그 시절 H가 손수 그려준 일러스트가 세 장 꽂혀 있다.

볼펜의 빨간색, 파란색으로 쓱쓱 공책 한편에 그려내 잘 잘라낸 그림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림을 볼 때마다 H와 미니 피자와 어설펐던 우리의 시간들을 다시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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