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빈 케이크
페북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내가 친구 신청한 분이 양선규 교수였다. 나를 페북 세계에 입문한 김 교수가 양 교수님 찐팬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양 교수님의 페북 글쓰기는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놀라움이었다. 하루 몇 차례. 그것도 신변잡기의 글이 아니라, 맨 끝에 ‘오래 전 작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글쓰기와 영화, 심리학 등의 학술적인 장문長文은 할 수 없을 때만 겨우 글을 쓰는 나같이 게으른 사람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경지라고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즐겨찾기로 등록해 놓고 올라오는 글들을 모두 읽었다. 내용의 수준도, 글의 길이도 충분히 시간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나중에는 따라가기 벅차서 속도 조절했지만.
그의 글들을 크게 보면 융 심리학, 글쓰기의 방법, 소설비평, 동방불패 같은 중국무협영화, 검도 이야기, 자신의 성장 스토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그가 썼던 <장졸우교> 같은 인문학 수프 시리즈도 살펴보았다.
자전적 소설이랄까, 소설적 자서전이라고 할까, 그의 성장 스토리를 엮은 <레드빈 케이크>는 토성에서 시작해서 토성으로 끝난다. 어린 양선규가 토성에서 아버지의 가게 선술집에서 바라 본 세상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양선규로 자라면서 결핍 속에서 그가 보고 경험한 가족과 세상의 이야기를 벌려 나가다가, 교수로 퇴직한 어른 양선규가 즐겨 가는 곰탕집이 있는 토성을 한 바퀴 돌면서 자신의 인생을 크게 한 번 돌아보는 이야기로 마감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글쓰기에 입문하는 과정에 있어서의 양 교수의 광주체험, 즉 장교훈련 과정 중에 경상도 말씨 쓰는 군인이 광주 대중목욕탕에서 느꼈던 알 수 없는 뻘쭘함과 살의, 그리고 그 이후에 반영된 글쓰기의 경험을 주목했다. 광주항쟁이 나고도 1년이나 지난 81년, 항쟁이나 광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던 대구 사나이의 식은 땀 나는 과정을 생각해 봤다. 나는 그때 어디에 있었지? 80년부터 82년 초까지 나는 대구 앞산 아래 군인이었다. 군인이었지만 카투사였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언론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광주의 일들을 미군들의 성조지(Stars and Stripes)를 통해서 알았다. 광주항쟁이 진압되고 모든 군인들에게, 심지어 카투사들에게까지 ‘국난극복기장’이라는 걸 달아준 줄 어떻게 알았겠는가?
그러고 보니 양 교수와 함께 대략 2년 정도 같은 대구의 하늘을 이고 산 것 같다. 우리 아버지도 삼팔 따라지여서 양 교수 아버지의 무능한 세월을 나는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나도 찌질하고 무능한 우리 아버지의 무력한 삶을 시로 몇 편 썼다.
아버지,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느리게 가는 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당신을 찾아 나섰습니다
세상은 빨리 변하고
죄송하게도 우리는 당신을 너무나 쉽게 잊었습니다
산천은 다시 어린 연둣빛 바다로 출렁이고
더러더러 분홍꽃 노랑꽃 모여서 꽃천지가 되었습니다만,
꽃비 내리는 시절 어린것들을 두고 홀로 가실 때
당신의 마음은 어떤 빛으로 물들었을까
문득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릴없이 매일 강가에서 그물을 던지는 무능한 노동보다
철 따라 흐드러지게 피고 지는 꽃을 지켜보는 일이
아득한 세월 견디기 쉽잖은 일이었음을
이제 생전의 당신만큼 나이가 들어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
그리도 그리던 고향 사리원 복사꽃밭보다야 못하겠지만
따뜻한 남녘 대둔산 산그늘 벚꽃 대궐에 누워
곧 보게 될 가을 꽃단풍을 기다리면서
여기서는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_시집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지상의 지번 하나
- 임진강 5
죽어서야 겨우 지상에 지번地番 하나 얻었다
내 곤고하고 비루한 이승의 삶은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 많은 장돌뱅이처럼
아니 때로는 진짜 장돌뱅이로 떠도는 일이었다
젊은 시절 무턱대고 강의 상류를 떠난 뒤
어디 중간에서 한 번도 나루에 닿지 못하고
분단의 강을 정처 없이 헤매며
아는 이 하나 없는 막장의 하류로 흘러왔구나
북쪽에서 임진강을 건너 남쪽으로
남쪽에서도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충청도로
머리 둘 곳 없어 철새처럼 이곳저곳 떠돌아
남의집살이 처가살이 안 해 본 것 없이
유랑流浪이 인생의 유일한 경력이 되었다
죽어서도 하늘로 승천도 역류도 할 수 없어
평생 이바지하며 살던 처가 묘지 옆에 묻혀
겨울 지나면 봄마다 무덤은 시퍼런 서릿발로 들떠
한줌 잔디는 뿌리박지 못하고 이끼가 천지인데
험한 세상에 깜냥 없이 나가 사는 어린 새끼들은
이리저리 들리고 이 이 저 이에게 휩쓸리지 않고
지상에 작은 자리 하나 얻어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내 걸어온 길옆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모두
세상의 번듯한 사람들을 위한 헌사였을 뿐
그 흔한 꽃 한 송이도 내 것이 되지 못했으나
뿌리 뽑혀 떠도는 삶의 연대기를 끝내고
내 아이들의 길에도 꽃 한 송이 피어날 수 있을까
모두가 들뜬 봄밤에 죽어서도 나 혼자서 잠 못 들고 있네
-시집 <임진강>
이 책의 내용 중 페북에서 읽은 글들이 여러 편이 있어 생소하지는 않았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쓴 글들이라 내용도 조금씩 중복된 것들도 있지만, 50년대 생들, 전후 세대들이 겪어내 한 세월을 읽기로는 충분한 책이 아닐까 한다. 책 말미에 언급한 서머싯 모옴의, 늦게서야 성공한 <인간의 굴레에서>와 같지 않게, 일찌감치 성공한 책 <레드빈 케이크>가 되기를 바란다. 서머싯 모옴의 표현을 패러디한다면, 6펜스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살았지만 결코 달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낸 양 교수님의 삶, 그리고 여타 모든 50년대 생들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