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거래사歸去來辭
퇴직했다. 37년 6개월. 짧다고 결코 할 수 없는 세월이다. 파직이나 사직이 아니라 정년임에도 불구하고 염치도 없이 내내 도연명을 생각했다. 부당하고 무례한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노래하던 귀거래사의 심정을 상상했다. “돌아가자!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 간다. 지나는 길손에게 고향 가는 길을 물을 때 새벽녘 희미한 빛마저 한스럽구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을 돌아나가고, 날다 지친 저 새는 둥지로 돌아온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는데, 나는 외로운 소나무 부여잡고 서성이노라. 날씨가 좋으면 혼자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 세워 두고 김매고 북돋우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 앉아 시를 짓는다.”(중간중간 생략)
귀거래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고향이야 있지만, 돌아갈 생각도 없는 내가 귀거래사를 생각한 것은 가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같이 큰 나라도 아니고 전국이 다 고향이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귀거래를 읊지 못할 까닭도 없겠다 싶었다. 수명이야 내 알 수 없는 일이니 한 곳에서 이삼 년씩 다섯 군데서 살면 결국 돌아갈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산 있는 곳을 좋아하고 아내는 바다 있는 곳을 좋아하니 절충해서 정한 곳이 제주, 통영, 속초, 구례, 무주였다. 확실히 갈 곳 한 곳을 정하기 전에 정년의 날이 왔다. 8월 31일 자로 정년을 하고 일단 9월 1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왔다. 비행기 안에서 귀거래의 귀歸는 장소의 귀歸만이 아니라 시간의 귀歸라는 의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8세 처음 교직에 들어가기 전의 청년으로 돌아가는 것, 그 청년 시절의 꿈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귀歸의 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그럼 그때 나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선생이 되는 것, 맞다. 그해 결혼했으니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 나의 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였을까? 사느라, 결혼하고 애 낳고 먹고 사느라 가슴 속 시詩의 꿈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끄적거리기는 했지만 거의 쓰지 못하고 살았다. 몇 년이 지나고 장마가 심했던 어느 여름날 여주 섬강 다리에서 강원 여객 버스가 추락했을 때 물에 빠진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찾아놓고 함께 가겠노라 뒤따라 갔던 장재인의 죽음 앞에서 망연히 시를 읽은 것이 그 시절의 시 한 편이 아니었을까?
하루 중의 저녁, 한 해의 겨울, 한 생의 퇴직 이후가 인생 삼여三餘라는데, 이제 이 삼여三餘를 누릴 시간이 온 것이다. 아무튼 돌아갈 곳 목록의 하나였던 제주에 왔다. 처음 교사가 되었던 28세 젊은이가 가꾸지 못했던 미완의 꿈으로 돌아왔다. 도연명처럼 농사를 짓든 시를 쓰든 돌아온 곳에서 인생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귀거래에서 시작하는 인생을 다시 살고 있다. 벌써 2년 전 일이다.
떨어지는 꽃들 무심한 활강滑降처럼
날아오르는 새들 영민한 편승便昇처럼
출처진퇴出處進退가 미덕인 시절이 있었고
나가고 물러남에 있어 뜻이 중요하고
다스리는 이의 심기를 받들 수 없다면
죽음은 한낱 지푸라기 같아
뜻을 꺾지 않던 시대가 한때 있었으나
다만 나이가 진퇴의 기준이 된 세상에서
강직한 뜻 따위가 무슨 대수겠냐마는
구차한 밥 한 끼를 위해 가끔 뜻을 접고
힘센 바람 앞에 풀 죽어 꽃잎을 떨구며
속도에 휩쓸려 정신줄 놓았던
지난날 숨긴 부끄러움을
조금은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피고 지는 때를 아는 꽃들의 시계와
떠나는 날 때를 아는 철새의 촉수처럼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의 아름다움이란
뒤돌아서서 굽은 등을 보이거나
굳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는 것
남루에도 당당하게 붉은 시간을 메고
저녁노을 속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 <졸시, 귀거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