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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종호 Oct 15. 2023

유酉선생의 인문학

- 속담의 의미

인류의 세기가 수렵 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전환되면서 닭은 인간의 중요한 먹이가 되었다. 함께 가축이 된 소나 돼지나 개에 비해서 키우기가 상대적으로 쉬었고, 음식으로 소비하는데도 훨씬 부담이 적었고 용이했다. 야생 날짐승 중에서 사육에 함께 성공한 오리나 거위에 비해서도 훨씬 생산적이었다.   

   

닭은 고기뿐만 아니라 알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알은 자체로도 귀한 단백질원이 되기도 했지만, 알은 고맙게도 20여 일만에 부화하고, 병아리가 반년 정도 자라면 “오뉴월 병아리 하룻볕 쬐기가 무섭다”라는 말처럼 순식간에 자라서 어른 닭이 되어 또 알을 낳음으로써 개체 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쉽게 잡아먹어도 곧 수가 회복되는 것이었다. 닭은 제대로 된 고기 단백질을 제공함으로써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일등공신이 되었다     


닭을 유심히 살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친구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고맙게도 너무너무 부지런해서 사람이 주는 먹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여기저기를 뒤져서 먹이를 찾는다. 식물이든 곤충이나 벌레도 가리지 않는 잡식성이다. 심지어 뱀도 잡아 쪼아 먹기도 한다. 배고프면 별 것 다한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오뉴월 닭이 여북해서 지붕을 허비랴”하고 감탄했겠는가?      


닭은 집에서 풀어 키워도 멀리 가지 않는다. 누가 잡아가지만 않는다면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산 둘레길이나 절 옆이나 산 아래서 제들끼리 돌아다니는 닭들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집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먹이 활동을 하다가 귀소본능이 있어서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와 횃대에 올라간다. “베 돌던 닭도 때가 되면 홰 안에 찾아든다.” 수탉이 있다면 수탉의 지휘 아래, 수탉이 없어도 연장자의 통솔 아래 닭장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닭들이 고분고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존심도 강하고 고집도 세어 여간해서는 사람 말도 잘 듣지 않고 우습게 여긴다. 그래서 “산 닭 길들이기는 사람보다 어렵다”라는 말이 생겼다. 심지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라는 말이 있듯이 때로는 빠른 개를 놀릴 만큼 가볍게 날아 지붕까지 도망치기도 한다. “장닭 못된 것은 아무개 집의 닭이요, 사람 못된 것은 누구 집 아들이다”라는 말이 있던 것처럼 고집 센 수탉의 결기는 알아줄 만한 것이었다.      


닭에게 어둠은 치명적이다. 아무리 사나운 닭도 어둠 속에 갇히면 꼼짝을 하지 못한다. 잡을 때 사납게 푸드덕거리는 닭도 어두운 상자 속에 집어넣고 뚜껑을 닫으면 언제 그랬는가 싶을  정도로 조용해진다. 밤눈이 어두운 닭에게 밤눈이 밝은 쥐는 치명적인 적수다. 땅을 파고 닭장에 들어온 쥐가 닭 똥구멍을 다 파먹어도 밤에는 닭이 저항하지 못한다. 닭이 땅에서 자지 않고 밤에 횃대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인데 허술한 닭장에서는 가끔 쥐의 공격을 받는 참사가 일어난다. “닭 길러 족제비 좋은 일 시킨다.”거나 “솔개 병아리 채 가듯”이라는 말처럼 족제비나 삵, 매, 솔개 같은 맹금류는 닭의 천적이다.  

   

지금까지 말하면서 닭과 관련된 여러 속담을 들었다. 우리 속담에 닭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없다. 사실 닭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친구 역할을 했다. 사람의 눈에 가장 많이 띄는 동물이다 보니 사람의 일들을 닭과 관련해서 비교 또는 비유를 많이 한 것이 아니겠는가? 속담이란 무엇인가? 속담이란 오랜 세월을 거쳐 삶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나 어떠한 가치에 대한 견해를 간결하고도 형상적인 언어 형식으로 표현한 관용적이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일을 사람 눈에 가장 잘 띄는 대상을 들어 비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하는 일을 자주 경험하고 살지 않았는가? 애써 노력한 일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다 된 것 같은 일이 망해 버려 맥 빠져 씁쓸해하던 경험이며, 온 힘을 다해 키운 자식들이 보이는 행태나, 학업이나 사업 또는 주식이나 힘써 도모한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 망연해한 적이 어찌 한두 번이었겠는가? “알 품은 닭이 삵을 친다”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어리석게 벌이고 속을 끓인 적은 또 얼마나 자주였던가? “조막손이 달걀 만지듯” 살아야 할 일이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믿고 견디고 버티고 저항하던 시절이 있었다.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말도 있지만 달걀로 바위 치기라도 하면서 이 어둡고 어려운 시대를 건너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주 옛날에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德)’을 교훈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鷄有五德(계유오덕)     

文德 頭載冠者文也(문덕 머리에 관을 쓴 것은 문이요)

武德 足搏距者武也(무덕 발에 갈퀴를 가진 것은 무요)

勇德 敵在前敢鬪者勇也(용덕 적에 맞서서 용감하게 싸우는 것은 용이요)

信德 守夜不失時者信也(신덕 밤을 지켜 때를 잊지 않고 알리는 것은 신이요)

仁德 見食相呼者仁也(인덕 먹을 것을 보고 서로 부르는 것은 인덕이라) 

   

중국 전한(前漢) 시절에 전요(田饒)가 노(魯) 나라의 애공에게 간언한 내용이라고 한다.

이런 시도 있다. 물론 내가 쓴 시다.


달걀을 까면서 

              

달걀을 까면서

유미* 아빠 황상기를 생각한다

모두가 달걀로 바위 치기라고 했지

그건 달걀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노른자의 중심을 잡아 주는 알끈

안팎의 경계를 구분하기 위하여

힘없이 흐물거리나

끊어질 듯 조이는 내면의 긴장을 아는가

위태로운 껍질 안에

또 한 번 얇은 막膜을 치고,

마음을 다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약하디약한 것의 대명사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칼날에 목을 걸어야 한다는 것

깨어져 터져서 외쳐야 한다는 것을

달걀은 알고 있다

딸을 위한 싸움에서 마침내 

바위를 깨친 달걀 

당신이야말로 진정 이 땅의 아비다

달걀을 까며

속껍질을 떼어 내면서

손은 더디고 눈은 자꾸 흐릿해진다    

      

* 황유미, 삼성전자 근무 중 백혈병을 얻어 숨진 노동자 

        

- 시집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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