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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기아빠 Apr 22. 2020

[부모]의 시작

쉽지는 않았지만... 왠지 잘해보고 싶었다.

1. 부모되기 준비


  몇 해 전부터 「부모교육」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조금씩 하고 있다.  많이는 한 달에 10번 정도의 강의를 나가기도 한다. 많다면 많은 숫자이고 적다면 적은 수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게 나의 최대 능력치인 것을 어쩌겠나...?!^^  

  조금 세부적으로는 부모의 양육태도, 아이의 사회성 발달, 아빠교육, 취학 전 아이들 정서 준비 등등 부모님들이 조금씩 성장하기 위한 내용이다. 이런 주제는 불과 10년 전에는 내 일상에서 큰 관심이 없던 분야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주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살짝 미친 듯이 강의시간에 침을 난사하며 열을 내고 가끔은 처음 보는 사이이지만 야단치듯이(아빠교육에서는) 부모들과 소통하고 있다. 원래 이런 나의 모습을 꿈꿔왔던 것이 아니니 가끔씩은 강의가 끝이 나면 공허함이 밀려온다.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잘 키워보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건... 내가 감래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감사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 부부는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그즈음 아주 운이 좋게 원하는 지역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

  '올해를 넘기면 결혼이 힘들어지겠는데.... '

  '그래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얼마 후 회사 사무실에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에게 업무시간에 핸드폰으로 연락 오는 사람이라고는 업무 말고는 집사람이 전부였다.

  "어...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집에 언제 오나 해서..."

  "마치고 바로 갈 것 같은데... 왜?"

  "나 임신한 것 같아..."

  "그래.... 잘 되었네"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은 복잡했다.

  '내가 아빠가 될 준비가 되었나?'

  '아직 아이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는데... 이런 전화가 오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하나?'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날 저녁 퇴근길에 유아용품점에서 신생아 신발을 하나 샀다. 왠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고, 그냥 그 신발이 예뻐 보였다. (나중에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다. 신생아 신발은 큰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렇게 아빠가 되어야 할 사람은 앞으로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모른 체 허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시절이 3달 정도 흘렀을 때, 사무실로 또 전화가 왔다. 그날은 집사람이 산부인과에 정기검진이 예약이 되어있던 날이었다.  

  

 "나 병원인데... 지금 와 줄 수 있어?"

 "왜? 무슨 일 있어?"

 "남편이 와야 한다고 해"

 "그래, 바로 갈게"


  그 날은 우리 부부의 첫 번째 유산 경험이었다.  누구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저 뱃속의 아이에게 미안할 따름이었다. 그날은 입 밖으로 나오는 말보다는 머릿속에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나의 잘못이었다.'

 '아이가 우리에게 왔을 때 마음껏 기뻐해주지 못한 아빠...'

 '아이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왜 미리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 이후로 몇 번의 유산과 다시 임신 준비기간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치고 같은 말과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해야만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


  그러면서도... 계속 내가 아빠가 될 준비가 덜 되어서 이런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은 무거운 생각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못했다. 몇 년의 시절이 지나 주변에서도 인사치레라도 우리 부부에게 아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좋은 병원, 조금 더 소문난 의사를 찾아다녔다. 결과는 매번 똑같았지만...

  결혼 후 6년이 지나 여전히 좋다는 병원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그즈음 다니던 병원에서 착상의 유지와 지속 가능성의 결과를 확인하기로 한 날이었다. 우리 부부는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보다는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과는 전화로 알려달라고 했다.

  비슷한 경험을 그동안 많이 했고 병원에서 기다리는 그 시간이 그렇게 유쾌하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잘 알았고, 검사 결과가 나쁘면 굳이 병원에서 그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모님! 수치가 괜찮습니다. 이제부터 몸 관리 잘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조수석의 아내는 눈물을 조금 훔쳤지만,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던 아내의 눈물은 당연하겠지만... 그동안 아빠 준비를 제대로 못했던 나는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앞섰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또다시 유산을 하지 않기 위해 많은 부분을 뱃속 아이에게 집중을 했다. 그동안 쌓인 노하우와 지식으로 이전보다는 훨씬 전문가스럽게 뱃속의 아이를 잘 지킬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시간들이 모여져서 지금 부모교육전문가, 부모 멘토의 소리를 듣는 새로운 '나'를 만들게 되었다.    


  눈발이 아주 살짝 내리던 12월의 어느 날. 우리 부부는 집 근처 산부인과로 걸어서 출산을 하러 갔다. 아내는 예전 자궁의 근종 제거 수술 이력이 있어서 제왕절개로 출산만 가능한 상황이라, 원하는 날에 출산을 할 수 있는 조금의 혜택(?)을 받았다. 초산의 아내는 불안함과 초초함에 얼굴이 상기되었지만, 같이 긴장해야 할 남편은 겉으로는 이해하는 척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나를 닮은 아이를 만나는 순간은 기다려도 너무 오래 기다려왔다. 오늘이 그렇게 기다린 바로 그 날이니 겉으로는 초초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기뻤을까?

  정해진 시간이 되어 분만실로 가는 아내의 상기된 얼굴 표정과 대비되는 분만실 사람들의 담담한 표정에서 오히려 믿음을 받았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다행히 큰 문제없이 아내와 아이는 큰 일을 해냈다. 아빠 품에 처음 안겨서 첫 번째 목욕을 시키는 순간, 처음 나온 세상이 낯설고 무서웠는지 아빠품에다 오줌을 발사한 녀석! 그래도 그냥 고마운 녀석.

  

 [이 녀석이 평생 해야 할 효도는 오늘 다 했다. ]

 [고맙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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