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돈을 갖고 튀어라>를 보고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인상 깊었던 영화 중 하나. 이 작품은 가난한 커플의 해외 도피라는 상상을 한국 땅에서 다양한 소품들을 통해 구현시킨다. 남미에 가겠다며 물놀이를 꿈꾸며 마트의 수산 코너에서 수영을 모사하고, 전자제품 코너의 티비에 나오는 비행기의 이미지에 커플을 겹쳐 마치 그들이 남미를 향해 이륙하는 모습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야외에서의 모습. 매번 장난으로 상황극을 꾸며온 남자는 이번에는 진지하다. 그는 자신을 쫓아오는 이들이 있다고 말하며 계속해서 어디론가 도망친다. 이때 세계화로 인해 한국의 색깔을 잃은 서울의 거리는 흥미롭게 기능한다. 그들은 아직 한국이다. 하지만 그들이 꿈꿨던 야자수, 타코와 피나콜라다는 이미 그곳에 있다.
그렇다면 대부업체에서 착취 당하며 일하던 이들의 도주는 가능한가. 그가 애초에 해외 도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돈을 훔쳤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커플이 상황극을 즐긴다는 전제 하에 장난으로 소비된다. 그러나 그의 진지한 표정은 이번엔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그 가방 안에 진짜로 돈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그러나 사이 사이 등장하는 CCTV 화면 뿐만 아니라, 동료 시민들의 감시, 번화가를 우연히 뛰어가다 남들의 인증샷에 찍혀버리는 모습은 그들에게 도주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도주는, 혁명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현실로 수렴하는 이 서사가 허무주의로 빠지진 않는다. 그들은 사랑한다. 공원에서 ”안 느껴져, 바다 냄새?“라는 무의미한 말을 던지는 남자의 빈 가방을 확인하고도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한강을 향해 뛴다. 그리고 펼쳐지는 아름다운 한강의 윤슬들. 서울에 살며 수없이 한강의 윤슬을 보았다. 그때마다 아름답다 느꼈지만, 이 영화에서 본 순간만큼 아름답다 느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쓰디쓴 현실의 아픔, 거기에 낭만 한 스푼. 여기서 멈췄다면 그저 그런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로 수렴하면서도 다시 현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작품이다. 이 미묘한 경계에 있는 이 작품이 좋다. 앞서 묘사한 연출적인 부분에 더해지는 음악 또한 너무 좋았다. 여건이 되지 않아 온라인 상영으로 봤는데, 극장에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졸업 작품이던데 꼭 영화 계속 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