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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E Apr 15. 2024

상실의 시대, 희망의 시대

<Friends after 3.11>과 <아사코>를 중심으로

1. 서론


2011년 3월 11일 일본 도호쿠 지방(동북부 지방)에서 발생한 이른바, ‘동일본 대지진(이후 편의상 3.11로 부르겠다)’으로 불리는 사건은 전세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자연재해인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인위적 재난의 성격을 가진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동반되면서 이 사건은 미증유의 피해를 낳았기 때문이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및 실종자는 모두 2만 20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난 생활자는 아직도 5만 4000여명에 이르며, 가설 주택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재민도 여전히 5000명에 달한다. 또 피난 생활 중 대지진 영향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한 사람은 지난 1년 동안에만 50여명이 추가되어 총 3701명을 기록했다. 즉, 재난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것이다.


이 사건은 분명한 비극이었지만, 정체된 일본의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3.11은 전후 일본 사회를 지배해온 ‘고도 성장’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은 유효하지 않음을 증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진에 동반된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무조건적인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에 오히려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위협감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3.11은 시대의 변곡점이 되며, ‘포스트 후쿠시마’ 또는 ‘포스트 3.11’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게 되었고, 3.11 세대라는 말도 종종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 인식은 정치에 무관심하며, 사회현상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피력하는 것을 기피하던 일본인들을 변화하게 만들었다. 지난 2016년 한국에서 열린 <청년허브 컨퍼런스>, [정당정치의 새 지형:변화의 정치]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긴급행동’의 활동가 스와하라 타케시는 “동일본 대지진 원전사고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일본정부에 의문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며 일본인의 정치참여에 대한 시각의 전환점을 3.11로 놓고 이야기했다. 정부와 매스컴은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 ‘간바레 도호쿠(힘내라 도호쿠)’를 외쳤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시민들이 깨달은 것이다.


그리하야 일본인들은 각계각층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글에서 주목할 것은 영화계의 목소리이다. 왜 영화인가? 영화는 기억이자 기록이다. 기억이 강렬한 이미지라면 기록은 그런 이미지 이면의 것을 정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들이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다루는 것은 그것을 주어진 재해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기억으로 재구성하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재난의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타인의 비극으로만 남을 수 있는 일을 사회적인 ‘공통 기억’으로 재구성하는데 영화인들은 힘을 쏟는 것이다. 물론 재난의 ‘공통 기억’ 만들기는 다양한 형태로 수행될 수 있으나, 이미지로 이루어진 영화가 가지는 강력함은 무시할 수 없다.


3.11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영화 중, 이 글에서 분석할 대상은 이와이 슌지의 <Friends after 3.11>과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이다. 전자는 2011년을 배경으로 두고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임에 반해, 후자는 2018년에 만들어진 극영화이지만 3.11 이후 일본인의 삶과 그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공통적인 부분이다. 또한 시간과 장르의 다름은 두 영화를 분석하는 데 있어 흥미로운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영화를 각각 분석한 이후에는 두 영화가 유사하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끌어내어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2. 상실의 시대, 참여를 말하다, <Friends after 3.11>


<Friends after 3.11>은 한국에는 <러브레터>로 잘 알려진 이와이 슌지의 작품으로 그의 웹사이트와 일본의 위성방송 BS1으로 방송된 뒤, 2012년 3월 20일 극장판으로 개봉되었다. 이는 정부와 도쿄전력, 그리고 언론이 어떻게 협력하며 진실을 숨겨왔는지를 폭로하는 다큐멘터리로 3.11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되면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물론 이 다큐멘터리는 제목에 포함된 Friends라는 말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시피, 단순한 폭로를 넘어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연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핸드폰으로 찍은듯한 대지진의 현장을 배경으로 두고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한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그날 이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너무나 가혹한 일들이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친구가 많이 생겼다. 새로운 친구, 그리웠던 친구, 인터넷 세계에서 알게 된 아직 만난 적 없는 친구, 아직 말을 주고받은 적 조차 없는 친구.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런 친구 몇 명을 만나보기로 했다.


이후 감독인 이와이 슌지와 배우 마츠다 미유키가 등장하며 그들이 카메라 앞에 직접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어나갈 것을 예고한다. 실제로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채우는 것은 이 두 사람을 비롯한 재난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사람이 비는 씬은 이 영화에서 굉장히 드물다. 


게다가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모두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에서는 이들이 재난에 대응하는 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이야기하려 한다. 그것은 절망, 반성, 그리고 행동이다. 


먼저 절망이다. 당연히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절망의 형상은 동일본대지진을 실제로 경험한 이들의 것일 테다. 이 영화는 실제로 재난이 일어난 현장을 찾아가 이미지와 함께 당사자들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집이나 마을을 잃은 사람들, 가족을 잃을 뻔한 사람들은 자신의 절망의 기억을 나눈다. 물론 비가시적인 피해의 영역도 있다.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도 방사능 때문에 한창 이슈가 되었던 먹거리 문제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이들은 밖에서 식사를 할 때 원산지가 신경이 쓰임에도 식당에 물어보기가 쉽지 않으며, 방사능에 오염되었을지라도 맛은 똑같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해진다는 이야기를 하며 불안감을 표한다.


다음은 반성이다. 반성은 등장하는 이들이 많은만큼, 그들의 사회적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원자력과 관련된 일을 하던 전문가들은 이전에 해외의 체르노빌 사건이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성을 증명했고, 2007년 가시와자키 원전이 강진의 영향으로 사고를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을 막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인다. 저널리스트들은 지진 이후 국민의 건강이 달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거짓 보도를 일삼았던 정부와 매스미디어를 비판하며, 자신들은 그러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 다짐한다. 이와이의 선배이자 의사인 나카지마 히로토의 의견은 흥미롭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평소의 행실에 따른 결과 같은 게 전혀 아니죠. 올바른 사람이건 죄인이건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모두 평등하게 쓰나미는 덮쳤어요. 죽고 사는건 운에 달린 것이었을 뿐이죠.” 이는 극중에서는 한 사람의 말일 뿐이지만, 의사로서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이가 쓰나미를 통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은 지진이 일본인들의 일상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키는 사건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배우인 야마모토 타로우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말이다. 그는 3.11을 겪고나서 자신의 생의 의지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감각, 전국민적인 ‘임사체험’이 생에 대한 의지를 북돋아준 것이다.


마지막은 행동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가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라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절망했지만 절망에 멈추지 않고 사회와 자신의 삶을 돌아본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이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을 도와주는 수단이고, 영화감독인 이와이 슌지가 목소리를 내는 방법이자, 이와이와 친구들이 모여 만들어낸 변화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핸드폰으로 찍은 지진 장면이다. 비현실적으로 불어난 물에 자동차와 사람들이 떠내려가는 모습은 끔찍하다. 그리고 엔딩 시퀀스 또한 재해의 현장이다. 지진과 쓰나미가 지나간 공간은 폐허가 되었지만, 이와이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일어난 사람 중 하나인 후지와라 코코로가 있다. 66년생인 이와이와 당시 중학교 2학년 학생이자 아이돌로서 가두 시위에 줄곧 참가했던 두 사람이 함께 재해의 현장에 놓여있다. 후지와라는 눈물을 재해의 현장에서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그러나 그 눈물은 단순한 절망의 눈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눈물이 흐르는 재해지는 더 이상 단순히 절망의 공간이 아니다. 그 공간은 어른과 청소년이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다른 일본으로 나아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3. 상실의 시대, 현재를 말하다. <아사코>


다음으로 다룰 작품인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는 앞서 다룬 작품처럼 동일본대지진을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은 비슷한(사실은 같은) 얼굴을 가진 두 남자에게 사랑에 빠져 갈등하는 한 여자, 아사코의 이야기로 줄거리만 보면 통속적인 로맨스로 보인다. 통속적인 로맨스에 지진이 개입할 곳은 어디인가? 평범한 작품에서 재난은 ‘본래’ 사랑하던 이를 찾아가게 하는 요소로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다르다. 이 작품에서 재난은 주인공에게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요소로서 작용한다.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보자. 이 영화는 크게 두 번의 시간의 변동을 맞는다. 첫 시작은 2010년, 다음은 2012년, 그 다음은 2017년으로 이 작품에서 시간의 변화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시간의 변화를 중심으로 서사를 살펴보겠다.


먼저 영화의 시작인 2010년이다. 영화는 고쵸 시게오의 ‘Self&other’라는 사진전에서 시작된다. 쌍둥이 여자아이의 사진을 보는 아사코, 그녀의 뒤에서 휘파람을 부는 바쿠가 지나간다. 두 사람은 이 순간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연인이 되고, 이로써 두 사람의 로맨스는 시작된다. 이들의 연애는 여느 청춘물처럼 달콤하지만, 너무나도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바쿠는 어느 날 홀연히 아사코를 떠나고 만다. 


그리고 2년 후 도쿄, 처음 아사코의 시선에서 진행되던 영화는 바쿠와 똑같이 생긴 인물인 료헤이로 시선을 옮겨간다. 그곳에서 료헤이는 아사코와 마주하고, 아사코는 바쿠와 같은 얼굴을 한 자의 등장으로 혼란을 느낀다. 아사코는 바쿠의 얼굴을 한 료헤이에게 끌림을 느끼지만 그에게서 달아나려 하고, 료헤이는 그런 아사코를 이상하게 여기면서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일정 기간 감정의 줄다리기를 하지만, 지진을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지진과 관련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이후에 통합하여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5년 후, 두 사람은 동거 중인 5년 차 커플이 되어있다. 료헤이는 회사에서 승진과 함께 전근 제안을 받는다. 그는 아사코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청혼을 하고, 그녀는 그의 제안을 승낙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이야기가 통속극이 아닐 것이다. 바쿠는 또 다시 돌아와 두 사람의 사이를 갈라 놓는다. 오사카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한 날, 친구들과의 송별회에 바쿠는 나타나 아사코에게 손을 내밀며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사코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쿠의 손을 잡고 식당을 뛰쳐나간다. 차에서 바쿠를 때리며 원망의 말들을 쏟아내는 아사코, 그녀는 바쿠의 차에서 잠이 들지만 눈을 뜨자 펼쳐진 익숙한 공간, 즉 료헤이와 함께 봉사 차 오던 센다이,에 도착하자 정신을 차리고 바쿠에게 료헤이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녀는 데려다주겠다는 바쿠의 호의를 무시하고 센다이의 바다를 바라본 뒤, 료헤이에게 돌아간다.


여기까지 <아사코>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사코>가 평범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는 것은 쉬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아사코>는 화이트 데이에 달콤한 로맨스물로 개봉되며 영화의 본질이 희석 당했다. 사실 이 문제는 홍보의 문제만이 아니다. <아사코>라는 제목 또한 문제적이다. 일본에서 아사코는 원작인 시바사키 토모카의 소설 『자나 깨나』와 동명으로 개봉했으며, 해외에서 개봉할 때는 <아사코1&2>라는 이름으로 개봉했는데 한국에서는 <아사코>라는 이름으로 개봉한 것이다. 이는 <아사코>라는 영화에 있어 중요한 맥락을 삭제한다.


평론가 정성일은 <아사코1&2>의 제목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아사코1&2>는 영화가 시작한 지 18분 30초가 되어서야 스크린에 제목이 뜬다는 것을 지적한다. 그것도 굳이 같은 주인공을 1과 2로 나눈 것에는 의미가 있을 것이 아닌가. 또한 그는 아사코가 고쵸 시게오전에서 보는 사진이 쌍둥이 여자 아이의 사진임에 주목한다. 일본의 평론가인 하스미 시게히코는 아사코를 바쿠와 료헤이에 대한 집착과 영화에서 보여지는 반복적인 요소로 비추어보아 ‘유사’와 ‘반복’에 사로잡힌 캐릭터로 해석하고 이것이 일반론적인 해석으로 보이지만, 정성일의 해석은 다르다. 그는 쌍둥이가 ‘여자’라는 것에 주목한다. 닮은 사람이자 완전히 다른 인격체인 쌍둥이처럼 아사코1과 아사코2를 다른 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타이틀이 유난히 늦게 뜨는 이유 또한 이와 연관되어 있다. 여기서 변화하는 존재이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대상은 분명 아사코이다.


그렇다면 아사코1과 아사코2는 어디서 나뉘는가? 나는 바쿠와 연인관계인 아사코를 일단 아사코1이라 생각한다. 그녀는 거의 모든 질문에 ‘응’이라고 답하는 수동적인 캐릭터이다. 특히 친구들 앞에서 사소한 공통점을 가지고 “우리는 운명이지?”라고 묻는 바쿠의 말에 “응”이라고 대답하는 아사코의 모습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아사코1이 아사코2가 되는 순간은 언제인가? 그녀가 아사코2가 되는 순간은 2년이 흐른 뒤, 료헤이를 만나는 순간이 아니다. 그녀는 일정 기간 료헤이를 바쿠의 환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 첫 만남에 료헤이를 바쿠라 부르며 호구 조사를 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는 그의 얼굴을 만져보며 그가 정말 바쿠가 아닌지를 확인한다. 또한 그 날 아사코는 료헤이와 가게 된 카페에서 료헤이가 이야기를 할 때 료헤이가 아닌 창가에 비친 그의 모습만을 쳐다본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끌림을 느끼며 아사코는 료헤이와 감정의 줄다리기를 한다. 그 와중에 먼저 아사코에게 손을 내미는 료헤이와 못 이기는 척 그녀는 키스를 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듯 하지만, 그녀는 얼마 못 가 “이제 더 이상은 무리”라며 그에게서 도망친다. 이때 상황을 변화시켜주는 요소가 지진이다. 2012년의 <아사코>는 료헤이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료헤이는 아사코를 만나러 온 아사코 친구의 연극이 열리는 공연장에서 지진을 겪자,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걸어간다. (그는 회사로 돌아간다고 말하지만, 아사코를 찾아가는 듯 하다.) 해가 진 뒤에야 만난 두 사람, 이번에 먼저 상대를 향해 발을 내딛는 것은 아사코이며 두 사람은 포옹을 한다. 나는 이때 아사코2의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5년 후, 아사코는 바쿠의 유혹에 잠시 넘어가기는 하지만 다시 료헤이에게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지진은 아주 큰 역할을 한다. 놀랍게도 소설 『자나 깨나』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이전에 쓰여진 작품으로 지진이라는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아사코>는 『자나 깨나』의 배경을 현대의 일본으로 옮긴다면, 지진을 빼놓고 말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연출이라고 한다. <아사코> 이전 감독은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다큐멘터리인 ‘도호쿠 기록영화 3부작’을 찍은만큼 동일본 지진 이슈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로써 얻어내는 효과는 무엇인가? 앞서 <Friends after 3.11>에 등장한 현실의 이들이 그랬듯, <아사코>의 인물들 또한 절망 다음에 겪는 감정의 수순은 반성일 것이다. 재난과 같은 비일상의 사건은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고, 안정적인 현재가 지속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나는 그것이 아사코가 료헤이를 만난 뒤 먼저 발을 내딛게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바쿠와의 관계에서 운명에 순응하던 아사코는 이제 운명을 결정한다. 


비일상은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또한 그들은 비일상으로 얻은 일상의 행복을 자신들만 누리지 않는다. 재난 이후 두 사람은 도호쿠 재건 축제에서 봉사를 하기도 한다. 아사코는 대단하다는 친구들의 말에 “잘못되지 않은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2011년 이와이 슌지의 다큐멘터리가 현실 속 투쟁의 모습을 담아냈다면, 2018년 하마구치 류스케는 도호쿠라는 지명을 제시함으로써 동일본 대지진의 상징을 분명히 사용하면서 그 이후 투쟁에 조용히 동참하는 이들의 모습을 자연스레 녹여낸다. 뿐만 아니다. 바쿠의 재등장이 아사코를 흔들리게 했을 때도 그녀를 다잡아주는 것은 재난의 기억이다. 그녀는 쓰나미가 밀어닥쳤던 도호쿠 지방의 센다이에서 바다를 보고 료헤이에게 돌아간다. 그녀가 바쿠에게 진짜 이별을 고하며 이렇게 말한다. “바쿠는 료헤이가 아냐. 나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 미안해.” 아사코가 아사코1의 상태에서 머물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테다. 그녀는 비극적인 비일상의 경험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 아사코2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4. 상실의 시대, 가능성을 보다.


이와이 슌지는 <Friends after 3.11>에서 3.11 이전의 일본을 이렇게 표현한다. “3.11 이전에는 일본 자체의 흐름이 멈춰있었어요. 굳어져 버려서 움직이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죠. 좋지 않은 것도, 좋은 것도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포화상태에 있었다는 인상이었다고 할까요.” 실제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로 근대화 노선, 과학기술의 발달과 고도 성장에 초점을 맞춘 노선을 밀어왔다. 물론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극심한 불황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이웃나라인 한국의 6.25 전쟁 발발로 인해 군수물자 산업에 참여하며 ‘전쟁 특수’를 누린다. 전 일본총리인 요시다 시게루는 6.25 전쟁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 이후 일본은 1960년대부터 초고속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성장은 현재 일본이 선진국 대열에 들 수 있었던 발판이 되어주었다. 물론 고도 성장에도 정체기는 찾아왔다. 일본 경제는 1991년 소위 버블경기가 붕괴한 이래 1997년 GDP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급격히 추락했고, 그 시기는 처음에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렸지만, 그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20년’ 또는 ‘잃어버린 30년’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러한 정체된 사회의 분위기 속에 많은 젊은이들은 의욕을 잃어갔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아르바이트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을 넘어, 의무교육을 마친 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며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NEET족은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의 집에서 독립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이와이는 3.11을 이런 정체된 일본 사회를 타개해 줄 순간으로 보았다. 이와이만이 재난을 희망의 순간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다. 작가 레베카 솔닛은 재난이 가지는 혁명적 의미를 분석해낸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 속에서 다양한 사례를 다룬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은 약 3000명의 사상자를 낳았고, 수많은 건축물을 파괴하며 도시를 초토화시켰다. 이후 수많은 언론은 건국 이후 최악의 재해에 대해 보도했지만, 지역신문 뷸러틴의 폴린 야콥슨은 재난 속에서 피어난 기쁨에 대해 지진이 일어난지 11일만에 써낸다. 그는 재난이 인종과 성별, 계급의 경계를 무너뜨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그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는 아름답게 묘사한다.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대화를 나누고 포옹을 하고 산책을 하는 모습은 미국 사회에서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는 재난이 열어준 새로운 연대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다. 


모두들 당신의 친구가 되고, 당신은 또한 모두의 친구가 되었다. 고립된 개인적 자아는 죽고, 사회적 자아가 군림했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방의 벽이 다시 우리 방을 둘러치더라도, 우리를 이웃과 차단시켰던 예전의 외로움을 다시는 느끼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나 혼자만 역경과 불운을 당할 운명이라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지진과 화재가 주는 달콤함과 반가움이다. 용감함도 강인함도 새로운 도시도 아닌, 새로운 연대의식이 주는 기쁨이다. 다른 인간에게서 느끼는 기쁨.

레베카 솔닛, 『이 폐허를 응시하라』, p.57.


물론 실재하는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이토록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위험할지 모른다. 그러나 뷸러틴의 전날의 기사를 살펴보면 그가 왜 이러한 연대의 모습에 감동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선원들에게 납치된 소년의 이야기, 백인 폭도들이 가담한 린치 사건, 노동법을 어기고 통조림 공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비난받던 일본인 이민자까지. 전날까지 인종과 계급으로 인간을 경계 짓던 사회가 지진으로 인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일본의 상황으로 돌아오자. <아사코>의 감독인 하마구치 류스케는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는 우리가 정했다고 생각했던 ‘경계’가 얼마나 애매한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고 말한다.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인들이 믿었던 경계는 허망하게 허물어졌다. 건물이 자리잡고 있던 곳에는 건물의 잔해만이 남았고, 심지어 지반이 낮아진 공간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제 그 자리는 말 그대로 빈 공간이 되었다. 무엇이든 채울 수 있는 빈 공간, 그러나 처음부터 빈 공간은 아니었기에 공허함을 가져다줄 빈 공간. 나는 이 공간을 가능성의 공간으로 읽고 싶다. 그 공간은 무조건 좋은 방향으로 변하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 공간은 無로 남을 수도 있고, 더 나쁜 공간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 방향성은 누가 어떻게 그 공간을 채워나가느냐에 달려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최소한 그 공간은 과거와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5. 결론


이 글에서 다룬 모두가 공통되게 말하듯 3.11은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는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준 사건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다룬 이와이 슌지의 <Friends after 3.11>에서 시민 정치가 죽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에서 일본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무려 3.11 이후 8년이 지나 개봉한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에서는 재난이 만든 개인의 변화와 일상에 녹아든 투쟁이 그려졌다. 일본은 3.11로 인해 무너졌지만, 3.11로 인해 다시 살아날 힘을 얻기도 한 것이다.


레베카 솔닛은 정신의학에서 재난의 영향을 일관되게 ‘트라우마’, 곧 정신적 외상으로 일컫는 것을 비판한다. 이는 재난을 겪은 인간을 한 없이 연약한 인간으로, 행동하기보다는 행동의 영향을 받는 자아, 한마디로 피해자의 프레임에 갇힌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재난의 피해자가 정신적 외상만을 겪지는 않는다고 주장하며, ‘외상후 성장’이라는 개념을 그녀의 저서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이야기한다. “상실이 초래하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전보다 더 나은 쪽으로 재건하려 한다. 그들에게 상실의 피해는 더 나은 새로운 삶의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그런 외상의 가능성과 그것에 대처하는 더 나은 방법을 결합하는 새로운 심리적 구조를 만든다. 그들은 새롭게 발견한 자신들의 힘과 이웃과 공동체의 힘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그녀가 말하는 ‘외상후 성장’의 개념이다. 두 영화가 보여주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그렇다. 그들의 정신적 외상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을 무력한 피해자로만 보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막으며 불행을 더할 뿐만 아니라, 재난이 만든 가능성의 공간을 차단하는 일일테다.


실제로 일본의 일부 청년들은 그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기 시작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들은 이제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적지 않은 수의 청년들은 동일본 지역에 자원봉사 활동을 다녀온 뒤, 반핵반〮원전 운동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 번 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익숙해진 청년들은 이후 안보법 투쟁에 참여하기도 하며 정치 참여를 이어나가고 있다. 경기 정체에 절망하고 부모에 의존하여 집 안으로만 틀어박혀 있던 청년들이 3.11을 기점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끝으로 아사코의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료헤이는 자신을 배신한 아사코를 밀어내려 하지만, 그녀의 간절함에 결국 굳게 닫았던 문을 열어준다. 두 사람은 이사 온 집의 베란다에 서서 강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사코의 곁에서 줄곧 다정한 모습만을 보여줬던 료헤이는 “더러운 강이군”이라며 입을 연다. 그러자 아사코는 대답한다. “그래도 아름다워”. 나는 이 장면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 해결의 시작은 문제의 자각이다. 문제를 알지 못하면 고칠 수도 없는 일이다. 지진은 공통 기억으로서의 재난이지만, 료헤이에게는 아사코의 배신 또한 재난이었을 테다. 그 닥쳐오는 사건 속에서 솔직함을 찾은 료헤이와 아사코의 관계는 희망적이다. 이 끝이 두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이야기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이 비밀을 감춘 채 겉의 아름다움만을 유지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요한 것 아닐까. 이는 하마구치가 일본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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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일, KU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아사코 관객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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