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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Feb 23. 2023

희망의 빛, 2월, 그리고 봄

여명(黎明)의 뜻을 아시나요

아침 준비를 하다 마주친 하늘이 예뻤다. 여명(黎明)이라던가. 뜻을 찾아봤다.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오는 빛 또는 그 무렵. 희망의 빛.


희망의 빛이라니. 의미도 예쁘다. 후회와 희망, 기억과 미래, 결핍과 안도감 사이를 매일 진동하듯 산다. 매 순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 기다림의 실체가 늘 궁금했다. 사랑인 적도 있었다. 어쩌면 그 진동이 반복을 멈추는 순간은 아닐까. 여명, 노을, 달빛. 어떤 빛은 나를 둘러싼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괜찮으니 잠시 내려놓으라고.




남매는 올 해 6세 7세가 됐다. 둘째 두 돌 무렵 육아휴직을 마쳤으니 올 해가 세 번째 봄인 셈이다. 복직하던 해 어렵다는 국공립 유치원 입소 허가가 났을 때는 진심으로 기뻤다. 따뜻하고 단단한 유년기가 되기를. 내 선택의 무게와 능력의 한계에 아득해질 때마다, 그 다짐을 주문처럼 외웠다. 나는 이렇게나 작지만 엄마라는 이름은 무한히 크다고 믿으면서.


근무 중에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곧 있을 졸업식에 재원생 대표로 송사를 한다는 것. 아니 한글도 더듬더듬 읽는 아이인데요. 아이가 꼭 하고 싶다고 손을 들었다는 선생님의 말에 웃음이 났다. 송사가 무언지는 알고 들었겠지. 글자에 그렇게도 관심이 없더니. 일주일간 매일 저녁 송사를 읽었다. 선생님이 잘할 때까지 읽으라고 하셨어, 아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노란 나비들이 춤을 추는 따뜻한 봄날 우리는 처음 만났습니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큰 사람이 되라는데 왜 내가 눈물이 나는지. 육아는 담백하기 어려운 장르다. 그날 유치원 졸업식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린 사람은 7세 반 선생님이었다. 정리를 잘하는 은아, 친구를 잘 챙기는 시우, 졸업반 아이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보고 싶을 거라는데, 나는 주책스럽게 그 마음이 헤아려져 꼬박 같이 울었다. 선생님 다음으로 많이 운 사람은 나였을지도. 세상에, 돌아보니 우습다.




모든 끝과 시작은 아름답다. 만남, 헤어짐, 사람다움과 원초적 순수함 앞에서 내 불안은 다행히도 부끄러웠다. 삶. 사람. 사랑. 내가 삶이라고 믿는 것들은 자주 시험에 든다. 그래도 사랑을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지. 후회와 조바심 사이에서 꺼내 먹을 기억의 양식이 하나 더 늘었다.


2월의 어느 날에는 친구에게 이 계절이 나와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다. 뜬금없이?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냥 너랑 어울려. 툭 던진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 아직은 춥지만 곧 따뜻해지리란 믿음 때문일까.


희망의 계절은 돌고 도는 것.

새봄을 기다리며 다시 일상의 진동을 견디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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