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백한 책생활 Jul 04. 2022

단 하나만 고른다면 사랑

아이는 엄마의 무의식을 먹고 자란다

언젠가 이런 무시무시한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와의 관계가 자라서의 대인관계, 나아가 배우자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기억 속 나의 엄마는 늘 바빴고 예뻤는데 나는 그런 엄마가 늘 고팠다. 일하는 엄마를 좋아했고 할일은 스스로 했지만 엄마가 필요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종종 농담처럼 엄마 덕에 애정결핍이 생겼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돌아보면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엄마의 퇴근이 늦으면 이모, 삼촌,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까지 전화를 걸어 엄마를 찾았던 기억. 휴대폰도 없었던 시절이었다. 엄마의 감촉은 늘 차갑고 향긋했다. (..배우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로부터 대략 서른 해가 지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집에 오면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엄마를 찾는 남매의 무한한 사랑 덕에 결핍된 애정이 조금 채워졌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한편 너무 사랑해서 괴롭기도 하다. 아무리 마음의 거리를 두려고 해도 자꾸 저 아이가 나 같다. 첫 아이가 여섯 살이 되고서는 감정적으로 부딪히는 경우가 잦은데 특히 고치고 싶었던 단점을 아이에게서 발견할 때 그렇다. 스스로도 싫은 유전자를 아이가 고스란히 갖고 있는 걸 보는 기분이란, 돌고 돌아 제자리, 처음부터 다시, 결국 또 마음에도 없는 모난 소리를 하고 잠든 아이를 보며 자책하고 반성한다.



“별것 아닌 일에도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계속 신경을 거스르는 게 있다면 그 원인은 상황 자체보다 다른 데 있을 수 있다”(p.60) 정신분석가이자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 <따뜻한 무의식> 속 말이다. 오늘도 자책했다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나와는 다르게) 쉽게 상처받지 않는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부제 ‘정신과 전문의 父子가 알려주는 내 아이 자존감 키우는 법‘을 읽고도 별 감흥이 없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생각보다 명확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랑’이다. 아이의 감정에 엄마가 공감해주고 요구에 잘 반응해주는 것이 건강한 자존감의 핵심. 내 안에 엄마를 기쁘게 하는 무언가가 있구나. 나를 보며 엄마는 행복해하는구나. 자신에 대해 이런 뿌듯함을 가진 아이는 커서 왠만한 어려움 쯤은 이겨낼 수 있다고. 어린 아이에게는 ‘엄마’가 태어나서 처음 만나는 타인이자 곧 ‘세상’이기 때문이다.


책 전체를 흐르는 주제는 ‘부모의 무의식’이 자녀의 자존감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보통 5-6세 이후지만 무의식에는 그 이전의 경험도 포함되며 이 시기 받은 상처는 더 자라지 못한 채 마음 속 아이로 남게 된다고. 자신도 모르게 작동하는 것이 ‘무의식’이며 그것을 이해하면 치유된다는 것. 결론은 아이를 자존감 높게 키우고 싶다면 반대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돌보는 게 먼저라는 이야기다. 엄마의 유년기 내적경험이 아이와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믿을만한 통계는 아니지만 주변인 중 사랑에 목말라하지 않는 이들은 거의 집안의 막내라는 공통점이 있더라. 지나친 일반화지만 막내쯤 되면 기대보단 귀여움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일거라 짐작한다. 결국 육아도 사랑이다. 한 권의 책이 인생을 바꿀 리는 없지만 마음을 다독이는 문장 덕에 내일의 육아는 조금 나아질 것 같은 기분. 지나면 다시 오지 않을 시간, 내 무의식이 어쨌든 나에게 와준 아이에게 오늘, 한껏 사랑을 줄 일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계가 깨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