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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백한 책생활 Mar 01. 2024

좋은 글은 지면 위에서 생동하며

비비언 고닉, 《상황과 이야기》

“어떤 글이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글을 읽는 시점에 필요한 우리 자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내면은 필요한 것을 필요할 때 얻어야 비로소 풍요로워진다.” -비비언 고닉, 상황과 이야기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 『사나운 애착』으로 알려진 미국 저널리스트이자 에세이스트 비비언 고닉의 자전적 글쓰기 수업. 이슬아 작가는 추천사에 “나는 이 책으로 나를 가르친다,”고 적었고 『진리의 발견』을 쓴 마리아 포포바는 “작가 뿐 아니라 삶이라는 상황과 이야기의 교차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려 갈망하는 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덧붙였다.


마리아 포포바 추천사가 담긴 비비언 고닉의 글쓰기 책이라니, 덕분에 생애 최초 ‘북펀드’라는 걸 해봤다. 아닌 게 아니라 책 말미 <북펀드에 참여해주신 분들> 명단 속 “담백한 책생활”을 보고 있자니 마치 모교 장학회에 기부한 동문이라도 된 듯 쑥스럽고 뿌듯했습니다..이게 뭐라고.


고닉은 밀도 높은 문장과 다양한 사례로 ‘자전적 글쓰기’가 갖춰야 할 요소를 분명하게 풀어낸다. 『다정한 서술자』에서 올가 토카르추크도 지적했듯, ‘자전적 글쓰기’의 위험요소는 ‘비대한 자아’에 있다. 서술자와 주제와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글을 찍어대다 보면 고해, 심리치료로서의 글쓰기, 혹은 노골적인 자기도취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는 것.


이를 피하기 위해 기억할 것은 이야기하는 자아를 당면한 아이디어보다 아래에 두는 것. 단순히 일화를 말하고 불필요한 형용사를 덧붙이고 추측에 탐닉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어디까지나 서술자의 역할은 논점을 명확히 하고, 분석을 전개하고,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모든 문학에는 ‘상황과 이야기’가 있다. 고닉이 사례로 든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여전히 자전적 글쓰기를 하는 작가들이 본보기로 삼는 작품이다. 여기서 상황은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한 사연. 그 사연 속에서 ‘미성숙한 자의식에서 논리 정연한 자의식으로’ ‘나태한 생활에서 목적의식 충만한 생활로’ 옮겨가는 과정이 이야기다. 이 둘의 아름다운 조화가 고백록을 필연적으로 ‘자기 발견과 자기 인식의 이야기’로 완성시켰다는 것.


좋은 글은 지면 위에서 생동하며 작가가 성장하는 여정에 있음을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고닉은 말한다. 진공 상태의 자기 인식이란 있을 수 없다고. 그러니 반드시 ‘세상과 교류할 것.’ 교류는 경험을 낳고 경험은 지혜를 낳기 때문이다. ‘삶으로 쓴 글’만이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다.


삶의 현장에서 깨지고, 깨우친 바를 독자에게 적확한 방식으로 납득시키기만 한다면 누구나 좋은 에세이스트가 될 수 있다고, 고닉은 말하는 것 같다.


[추천책] 비비언 고닉, 《상황과 이야기》

비비언 고닉을 좋아하신다면, 에세이 쓰기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마리아 포포바의 말대로 ‘인생의 교차점에서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기를 갈망하는‘ 분이라면 읽어보셔도 좋을 글쓰기 책. 덕분에 ‘북펀드’라는 걸 처음 해봤는데 더 애착이 가네요 :) 미국 문학 인용이 많아서 조금 어려웠지만 필립로스, 월트 휘트먼, 스콧 피츠제럴드, 레이먼드 카버 등 알 만한 사례도 다양하고 작가와 글쓰기 교육자를 위한 가이드 질문도 있어서 유용할 책입니다.



2023.9.2. 인스타그램에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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