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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마냥 Mar 31. 2024

아내와 함께 수채화 전시회를 한다

(수채화 전시회를 하며)

미술에 소질도 능력도 없는 사람, 오로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10여 년을 지켜냈다. 반백년을 훌쩍 넘은 시기에 보란 듯이 뛰어들었던 미술의 세계였다. 아들과 딸 같은 회원들 속에 섞여 연필로 줄을 긋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평생 쓰는 것을 업으로 했기에 수월했지만 어린아이들은 그럴듯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나도 저렇게 그릴 수 있을까를 늘 의심했다. 몇 달이 지나도 의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점점 고민하게 되었다. 과연 저런 실력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더러는 집어치우자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웃들이 미술에 관심이 있고 음악을 찾으려 할 때, 오로지 국영수만을 고집하며 살아온 고집쟁이였다. 한참이 지나고 바라보던 삶 속엔 국영수보단 예체능이 훨씬 여유로웠다. 가난 속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처절하게 복수하고 싶었다. 어린아이들 속에 숨어 선긋기를 했던 이유였다. 그 세월이 10년이 흘렀으니 고집도 대단했는데, 여기엔 아내의 역할도 컸다. 미술에 소질이 있던 아내와 함께 했으니 가능했을 것이고,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다. 점점 세월이 지나며 수채화의 모습이 변해갔다.

아내와 함께하는 전시회

아, 이런 것이구나!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었던 선생님의 말이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 이제야 귀에 들어왔다.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다. 여러 사람이 늘 전시회를 해보라 권했다. 전시회, 많은 전시회에 참여해 봤기에 조금은 알고 있었다. 작품부터 준비하고 전시장을 마련해야 하며, 작품마다 모양을 내서 이동해 전시해야 한다. 전시기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찾아오는 손님을 맞이해야 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동호회원들과 전시회는 간소하고 편리했다.


느긋하게 준비한 작품 두어 개 출품하고, 정해진 날짜만 자리를 지키면  되었다. 물론 여기엔 숨어서 고생하는 사람 있음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을 홀로 감내하기에 너무 어려운 이유는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이다. 기어이 해야만 하는 기회가 왔다. 동호회 전시회를 하면서 개인별 부스 전을 하기로 한 것이다. 한 개의 부스를 혼자 전시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여기에 아내 것도 돌봐야 하는 전시회, 할 일도 많고 고민거리도 많다. 1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준비하고, 옮겨야 하며 전시해야 한다. 모든 것을 손수해야 하는 일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서서히 전시회가 다가오고 있다. 

4월 초에 2주간 하는 전시회, 한 치의 오차도 있으면 안 된다. 사람들이 찾아와 실망하면 되기 때문이다. 작품 준비는 끝났지만 옮기고 전시하며 전시장을 안내해야 한다. 팜프릿이 만들어졌으니 초청대상을 정하고 안내해야 한다. 어렵게 마련한 수채화 전시회,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볼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다. 소질도 없는 사람이 열정 하나로 뛰어든 수채화가 조금은 삶에 재미를 주고 있다. 번듯하게 나온 리플릿을 보며 어려워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파도를 주제로 한 전시회, 다음엔 계곡을 주제로 설정해 볼까?


아름다운 봄이 찾아온 계절이다. 골짜기의 작은 밭엔 푸성귀를 심을 준비를 해야 한다. 퇴비를 주고 밭을 갈아야 하며 비닐을 씌우며 봄을 준비했다. 싱싱한 상추와 쑥갓을 심어야 하고, 손녀가 좋아하는 토마토를 심어야 한다. 친구들이 즐겨 찾는 청양고추도 심어야 하며, 꽃이 아름다운 도라지와 품격 있는 냄새를 주는 더덕을 심어야 한다. 여기에 수십 가지의 꽃들을 살펴봐야 한다. 올봄엔 200여 포기의 맥문동을 집 주위에 심었다. 보랏빛 꽃을 보기 위함이다. 봄을 맞이하기도 바쁜데, 수채화 전시회를 해야 하고 다시 색소폰 버스킹도 기다리고 있다. 아내와 함께 팔을 걷고 뜰로 나섰다. 


여기저기에 있는 작은 밭이지만 설렘을 준다. 간단히 지난겨울자국을 지워내고, 나에게 적당하고도 잘 어울리는 예닐곱 평의 텃밭을 깨끗이 정리했다. 손녀의 화단엔 수선화가 꽃을 피웠고, 튤립이 수북하게 올라왔다. 좁다란 바위틈에 자리한 금낭화도 치열하게 얼굴을 내밀었다. 봄이 왔으니 할 일이 많이 생겨 몸과 마음이 바쁜 하루다. 오늘은 전시회 안내장을 보내야 하고, 자그마한 텃밭정리를 해야 한다. 따스한 봄이 오는 날에 맑은 햇살을 보며 온전한 봄날을 즐기기 위해서다. 역시, 봄은 살아있는 모든 생물을 흔들어 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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