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람마냥 Mar 21. 2024

노년의 삶, 쉽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은퇴 후의 나의 삶은)

어리바리한 삶을 이어오면서 어느새 사회 뒷전으로 물러난 지 오래다. 다행인 것은 은퇴 후에도 이것저것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바쁘게 살아오면서 은퇴 후에 일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딪치다 보면 또 무엇인가 할 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이어서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에 묻혀 평생 살아오면서 생각은 언제나 시간이 아깝다는 것이었다. 이 순간에도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시간을 아끼려 틈나는 주말이면 여행을 했고, 무엇인가 일을 만들어야 마음이 편했다. 


사회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취미생활의 첫발은 수석을 탐석 하는 것이었다. 수년간 짬을 내서 수석을 찾아 나섰고, 그럴듯한 수석은 받침대를 깎으며 모양을 만들었다. 밤을 새우며 조각을 하는 재미는 나름대로의 맛과 멋이 있었다. 미친 듯이 흘러간 세월 따라 낚시에 홀려 물가에서 밤을 지새웠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면서도 짜릿한 손맛을 잊을 수 없어서다. 때로는 산을 찾아서 곳곳을 헤매다 다시 테니스에 재미를 붙였고, 마라톤에 그리고 자전거 등, 온갖 생산성이라곤 없는 것에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은퇴 후의 삶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시절, 단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내와 함께 한 전시회

비 오는 날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미쳐 피아노를 시작했고, 미친 듯이 열광하게 된 드럼에 빠져 몇 년을 헤맸다. 피아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재즈 피아노에 도전을 했지만 세월을 원망하며 다시 수채화와 색소폰연주를 시작했다. 언제나 탐이 나는 몸매를 보며 몸을 만든다며 헬스장을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다시 되지도 않는 글을 쓴다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평생동안 해 온 많은 것 중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흔적이 있다. 남아 있는 흔적들을 따라 살아온 삶이 은퇴 후의 삶에 엄청난 재산이 될 줄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수석이 그러하고, 지금도 그리고 있는 수채화 몇 점이 집안에 걸려있다. 다시, 서재 옆에는 소프라노 색소폰이 놓여 있고, 색소폰 연습실에 알토 색소폰이 놓여있다. 언제나 생각나는 곡을 연주하는 어설픈 음악가이기도 하다. 시간이 나는 대로 글을 써서 올리지만 누구도 괜찮다는 반응은 없음에 망설이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아직도 헬스장을 드나들고 자전거를 타며 하루를 이어가고 있는 은퇴 후의 삶이다. 일 년이 행사 중엔 중요한 일이 두 가지가 있다. 봄이면 수채화 전시회가 있고 가을이면 색소폰 연주회가 열린다.

수석 한 점과 수채화

은퇴 후의 삶이 쉽게 만들어질 수 있다던가? 며칠 전, 낯선 번호가 전화기에 보인다. 색소폰연주를 지금 시작하면 가능하느냐는 전화였다. 은퇴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세월은 고희를 훌쩍 넘긴 부부였다. 어떻게 전화를 받아야 할까? 수채화 화실에서 만난 할머니, 간신히 몸을 겨누며 기초부터 선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로 대신하며, 지금 아니면 영원히 할 수 없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은퇴를 하고 몇 년이 지나 한 후배를 만났다. 은퇴 후의 삶을 궁금해하며 지금부터 제2인생을 살고 싶단다. 대단한 포부를 갖고 하고 싶은 많은 일들을 설명한다.


우선은 하지 못했던 세계여행을 계획하고 있고, 여행하면서 필요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단다. 덩달아 제2외국어를 시작했으며 갖가지 운동으로 체력을 단련하고 있다며 설명한다.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고 말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 시대로 접어들어 모든 모임이 정지되었다. 해외여행은 물론이요 모든 모임이 금지된 시대가 되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코로나 시대가 아니라도 체력이 떨어지고, 운동신경이 둔화되기 시작하면 모든 일이 쉽지 않다. 아무리 계획이 거창하고 세밀하더라도 체력이 버텨주지 않으면 모든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 지금의 생각이다. 생각 없이 서둘러 이것저것 시작한 것이 지금의 삶에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여행

서둘러 배낭여행을 한 덕에 아파트는 몇 평 줄었지만, 거의 60여 개 국가를 배낭 여행했으니 이만하면 족하다는 생각이다. 은퇴 후에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긴 시간의 비행을 버틸 수가 없다. 아프리카 사막을 헤매는 20여 일의 여행이 지금 가능할까? 고비사막을 10여 일 헤매는 여행은 어떠하고, 고산증에 시달리던 티베트 여행을 할 수 있을까? 20여 일 운전하는 북유럽 배낭여행은 어림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한 수채화, 친구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했다. 마라톤 시작을 보고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드럼을 치고, 색소폰 시작하는 모습에 시큰둥했지만 기어이 해내고 즐기며 살고 있다. 


세상을 살아감이 쉬울 리도 없고 만만치도 않았다. 많이 주지도 않는 월급을 받으며 쪼들리게 살아냈다. 쪼들리는 살림을 또 쪼개서 여행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왔다. 젊어서 이것저것을 하지 않으면 은퇴 후의 삶을 보장할 수 없다. 조금은 어려워도 하고, 힘겨워도 참으며 해온 일들이 은퇴 후의 커다란 재산이 되고 있다. 어느새 자식들이 해외여행을 하고 있고, 마라톤을 하며 복근을 만들었다. 아내는 수채화를 하며 하모니카를 연주한다. 손녀는 그림을 그리며 할아버지를 화가라 한다. 친구들은  화백이라 하고, 예술가라 한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사막여행

조금이라도 머뭇거릴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일찍 시작해야 했고, 잠시도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살아가기 바쁜 시절엔 세월이 기다려 주려니 했다. 내 어머니는 영원할 줄 알았고, 젊음도 남아 있을 줄 알았다. 어느새 들어내는 바벨 무게가 줄어들었고, 뛰어 낼 마라톤 거리가 줄어들었다. 판단력이 흐려지며 동작이 느려지는 몸뚱이, 믿을 수도 없고 믿지 않을 수도 없다. 조금은 어려워도 서둘러 나의 삶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자식들이 전시회에 꽃다발을 전해주고, 열렬한 박수를 연주회에 보내준다. 서서히 자식들이 뒤 따라 하고 있어 더없이 즐겁지만, 언제나 같은 생활을 하면서는 신선하고도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는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3월을 맞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