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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ma hong Apr 08. 2020

첫 번째- 55개국을 여행한 남자

지금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못 놓을 건 없어. 백팩만 있으면 돼.



  “다음 주에 여기에서 SM 파티하는데 너네도 올래?”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게 방금 만난 사람한테 들을 얘기인가?


                          

 니코를 처음 만난 건, 우연히 들어간 펍에서였다. 당시 친구와 어떤 바텐더가 멋있는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깻죽지 사이로 손이 쑥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안녕? 너네 한국 사람이구나.     

나 북한 갔다 와봤어!!!!!!!!!!!!"     

"?????????????"     

"?????????????"         


                

 이 펍이 원래 이렇게 시끄러웠던가. 아니면 내 앞에 있는 이 정체불명의 사람이 특이하게 말이 많은 건가. 그 당시 이름도 몰랐던 오늘의 인터뷰이 니코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막 쏟아내더니, 내 인스타 아이디를 물어보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마치 새로운 형체의 무언가가 지나간 것 같았다. 주변은 다시 고요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작별 인사를 한답시고 저 사람이 자기 맘대로 내 볼에 뽀뽀한 기억이 번뜩 스쳐갔다.


 “아니 뭐야? 처음 본 사람한테 'SM‘ 파티에 오라고 하지를 않나, 볼에 뽀뽀를 하지를 않나, 도대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말할 때 왜 자꾸 나를 만져?”

 “예의는 밥 말아먹었나?”

 “아니, 유럽 원래 이런 곳이야?”       

        

 사실 니코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게 일방적으로 연락하는 예의 없는 남자로 기억됐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없이 보수적인 나에게 에스엠 파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니코라는 사람의 천진난만함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그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꽤 가까운 친구가 된 니코의 알록달록한 인생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아일랜드 더블린, 니코가 일하는 펍에서


Q: 지금 여기서 무슨 일해? 더블린에 왜 왔어?     

 지금은 더블린에 있는 펍에서 풀타임 셰프로 일하고 있고 파트타임으로는 라틴사람들이 온라인으로 영어수업을 듣는 에이전시에서 일하고 있어. 처음에 아일랜드에 오게 된 이유는 아일랜드 문화가 좋아서야. 아일랜드 역사, 문화, 사람들이 좋았고, 또 오기 전에 알아본 바로는 일 구하기도 쉽고 급여조건도 좋다 그래서 아일랜드를 내 첫 유럽 정착지로 결정하게 됐지! 그리고 앞으로도 여기 말고 다른 유럽 국가에서 4-5년 정도 살 계획이야.               


Q: 그럼 더블린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서 살았어?     

 2014년 전까지는 쭉 아르헨티나에서 살았어. 2014년에 내 인생에 굵직굵직하게 나쁜 일들이 많이 생겨서 다 내려놓고 뉴질랜드 여행을 떠났지. 그게 나의 첫 워킹홀리데이 비자였고, 거기서 직업을 되게 많이 바꿨어. 풋볼 클럽에서 1년 6개월 정도 선수로 뛰었고, 또 동시에 여자축구 선수단의 코치로도 활동했어. 그전에는 건설 현장에서도 일했고.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그렇게 이곳저곳에서 일했던 거 같아. 그러고 나서는 2016년에 남아시아 여행을 갔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등등. 여행 후에는 다시 본국으로 돌아와서 여름 내내 있었던 것 같아. 여름이 끝나고는 또다시 여행을 시작했어. 터키, 한국, 일본(특별히 한국 되게 좋아해) 여행이 끝난 후에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호주로 갔고 거기서 2017년에 7-8개월 정도 일을 했어. 그 후에는 아직 못 마친 아시아 여행을 끝내고 싶어서 대만, 홍콩, 중국, 북한, 몽골, 러시아를 다녀왔지. 아시아 여행이 끝난 후에는 4-5년 동안 유럽여행을 다니고 싶어서, 너도 알다시피 2017년 말쯤 여기 아일랜드에 정착했어. 이제 이곳 비자도 끝났으니까 프랑스나 헝가리 포르투갈 중에서 정착할 나라를 결정할 거야. 우선 이것저것 조건 좀 따져보고.              


페이지가 꽉 찬 니코의 여권


Q: 와, 언뜻 듣기만 해도 진짜 많다. 정확히 몇 개국을 여행한 거야?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55개국. 55개국을 여행했어.   

            


Q: 그 많은 국가들 중에 여행하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나라나 사람 있어?     

 북한. 왜냐면 내게 가장 충격적인 여행이었거든. 내가 여행한 55개국의 모든 국가를 다 합쳐도 그래. 서양 사람들은 이미 한국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 한국은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갈 수 있고 이미 여행 국가 상위 리스트에 있지. 그렇지만 북한은 모두에게 비밀스러운 국가잖아? 서양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도 북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내가 정치와 역사에 관심 가진 후로부터 줄곧 북한의 정치, 역사, 경제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실제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2017년에 드디어 북한 여행을 떠나게 됐고, 느낀 점은 말 그대로 북한 여행은 이전 여행들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는 거야. 북한 사람들, 생각보다 되게 친절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더라고. 그렇다고 북한을 찬양하거나 옹호하는 건 아니야. 단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보들이 때로는 잘못되거나 가짜 뉴스일 경우도 있다는 거지. 나 같은 경우는 내가 직접 가서 경험하면서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 아, 또 하나의 이유는 북한을 갔다 온 이후로 많은 라디오 쇼에 나가고 많은 인터뷰를 했었거든? 내가 아르헨티나 사람 중에 몇 안 되게 북한 여행을 한걸 공공연하게 알린 사람이라, 그것 때문에 아주 짧은 유명세를 치렀기 때문에 그래서 북한이라는 나라가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되는 거 같아.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펍에서


Q: 그럼 네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는 어디야? 그리고 그 나라의 매력 포인트는?     

 러시아! 러시아의 문화와 정치 모든 게 매력적이야. 사실 나는 러시아 빅팬이거든. 내 인생 첫 번째 타투도 러시아에 관한 타투고 러시아의 역사, 문화, 건물, 분위기, 정치, 사람들이 다 내 스타일이야. 사실 처음 모스크바 여행 갔을 때 엄청 울었었어. 모든 게 너무 아름답고 황홀했거든. 러시아의 유명한 건물들을 책으로만 봤었는데 그게 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까 감격해서 많이 울었던 거 같아.  



Q: 여행하면서 외로울 때는 없어?     

 예전에 여행할 때는 몇 달 동안 혼자서 여행하는 게 내 목적이었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마치 치료받는 거 마냥 그렇게 지냈지.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잊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 하지만 한번 혼자서 있는 것에 적응하게 되면, 그 이후부터는 혼자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거 같아. 그런 경지에 오르면 이제 네가 선택할 수 있는 거지. 혼자서 다닐 것이냐, 누군가와 동행할 것이냐. 하지만 혼자 여행 다닌다고 해서 계속 혼자여야만 한다는 건 아니야. 필요하다면 여행 중에 네 방식대로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Q: 그럼 여행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오, 맞아. 이게 왜 내가 계속 여행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핵심이야. 나는 삼십몇 년간 내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행이 주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적이 없어. 여행이 우리의 시각을 더 넓혀주는 이유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모든 걸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야. 어딘가를 가기 위해서는 미리 정보를 알아봐야 하고, 펍을 가도 술을 시키려면 이것저것 물어봐야 하고 어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스스로 여행 일정을 세우면서 실제로 부딪치게 되면 뭐든 배우게 되는 것 같아.                


Q: 그럼 여행하기 전에는 무슨 일을 했고 또 어떤 사건이 너를 이 삶으로 이끈 거야?

 되게 중요한 질문이네. 나는 여기 오기 전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었어. 아르헨티나에서는 결혼도 했었고, 전문적인 직업도 있었고 음악 스튜디오도 운영했었어. 왜냐면 그때는 음악에 엄청 몰두해 있었거든. 그리고 24살 때는 의회를 운영하기도 했었어. 후보자이기도 했었고, 그래서 거의 10년 동안 정치계에 있었던 거 같아. 그런데 2012년도 인가 2013년도부터 갑자기 내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어. 인생에서 엄청 큰 위기가 왔었지. 그래서 너도 알다시피 그때 뉴질랜드로 몇 달만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결심한 거야. 머리 좀 식히고,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돈도 벌고 여행도 하면서 몇 달만 그렇게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말이야. 그게 처음에 내 계획이었어. 근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배우는 게 날 행복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내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준다는 걸 깨달았어. 그런 식으로 2-3년을 보내니까 이런 삶을 유지하면서 10년 안에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게 내가 진짜 원하는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    


        

Q: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어? 그때 꿈은?     

 오, 나 아직 어린데? 하하하 내 영혼 자체가 그래, 알지? (응 하하)

장난이고 난 어렸을 때도 개성이 뚜렷했어. 부끄러움도 없고 엄청 외향적이었지. 항상 말이 많았고 천진난만했고, 늘 문제를 일으켰어. 진짜 애처럼 말이야. 그리고 청소년기 때부터는 줄곧 예술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연극배우도 했었고 그 극단에서 전 부인도 만났던 거야. 어쨌든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5년 동안 연극 공부를 했었어.                



Q: 오, 멋있다. 엄청 열심히 했을 것 같은데, 왜 그만뒀어?     

 어렸을 때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내 꿈이 바뀌었지, 사실 나는 사람이 살면서 한 가지 직업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건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지. 14살, 15살 때부터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고 배우고 평생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리고 이루고 산다? 난 세상에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고 봐.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우리 자신 스스로 항상 꿈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거야. 그게 직업이든 뭐든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거라면, 한 곳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지. 또 만약 그 길을 위해 오랜 시간 투자하고, 충분히 탐험해볼 의지만 있다면, 직업을 바꾸든, 배우자를 바꾸든, 종교를 바꾸든, 그냥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나 같은 경우는 2-3번 꿈이 바뀌었어. 지금 내 꿈은 전 세계를 여행하는 거야.          

      


Q: 전 세계를 여행한다, 그럼 예전의 너와 지금의 너를 비교한다면 그땐 뭐가 중요했고 지금은 뭐가 중요해?    

 5년 전에는 나의 록 밴드가 가장 중요했지. 지금은 내가 가진 것들 중에서 못 놓을 건 없어. 백팩만 있으면 돼.                        


    

Q: 개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서 그동안 여행하면서 만난 여자들은 다 기억나? 몇 명일까.     

 데이트 한 사람들 말하는 거야? 아니면..? 섹스 한 사람들 말하는 거면 못 세어. 사실 기억도 다 안 나고. 55개국을 여행했으니 꽤 많이 만났겠지?               



Q: 와, 내가 그 여자들이 었다면, 좀 섭섭하겠는걸. 그럼 여행 중에 사랑에 빠진 적도 있어?

 당연하지. 내 전전 여자 친구는 영국인이었어서 내가 호주에 있을 때 영국으로 자주 갔었어. 엄청 사랑했었지. 그리고 전 여자 친구는 여기 사는 미국인이었었는데, 서로 원하는 삶의 방향과 가치관이 너무 달라서, 결국 헤어졌어. 그녀는 미국으로 갔고 나는 여전히 여기 남아 있지만, 기회가 있다면 다시 만나고 싶어. 아직도 많이 좋아하거든.



Q: 그럼 이제 곧 더블린을 떠나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돼?

 2가지 목표가 있는데, 4월에 이탈리아에 가서 몇 달안에 쿠킹클래스를 수료하는 거, 그 이후에는 북부 유럽을 여행하는 거야. 노르웨이, 핀란드 등 16개국을 돌면서 5개월 동안 여행할 거야. 아, 나 여행할 때 너도 합류해야 돼. 우리 유럽 어딘가에서 만나자!



Q: 하하 역시 니코답다. 마지막 질문이야!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 사람이 될래?     

 당연히 아르헨티나! 난 우리나라 감성, 우리나라 문화가 너무 좋아. 뭔가 뼛속부터 아르헨티나 사람의 바이브를 타고났다고나 할까?       


                       

Q: 뼛속부터 아르헨티나인이라니, 멋있다. 아, 근데 그때 나한테 SM 파티 오라고 한 거 기억나? 진심이었니?     

 야, 그거야 당연히 장난이지!!!


               




 2019년 12월에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니코는 이탈리아 여행을 시작했을 테지만,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국 아르헨티나에서 가족들과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자가 격리도 자신의 방법대로 즐겁게 보내고 있을 니코의 일상이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Nicoo_chappa를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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