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과 마음 상처의 공통점은?

(1-3)_마음 정리 후에 상처가 아무는 시간

by Spring


여드름은 ‘피부 트러블’의 일종이고,
마음의 상처는 ‘마음 트러블’의 일종이다.



얼핏 보기에는 여드름과 마음 상처는 전혀 다른 종류의 범주 같아 보이지만,

이러한 나름의 공통점(?) 때문인지 의외로 닮은 부분이 꽤 많기도 하다.



여드름을 건드리면, 그 안에 고여 있던 고름이 터져 나온다.

마음 상처를 건드리면, 그 안에 고여 있던 마음속 응어리가 터져 나온다.



여드름의 노란 고름을 터뜨리면, 피가 나온다.

그래도 곪아있던 고름이 터져서 개운하다.

비록 아파서 피가 날지라도.


마음속 상처 안에 애써 숨겨둔 응어리를 터뜨리면,

아픈 기억으로 인해 마음속에서 피가 나온다.

그래도 쌓여있던 응어리가 터져서 개운하다.

비록 아파서 피가 날지라도.



하지만 여드름이든 상처든, 이렇게 터뜨려서 짜낼지라도 한 번에 해결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드름을 한번 짜낸 후에는 원래의 살이 바로 복구되지는 않고,

그 여드름 흉터를 덮는 '여드름 딱지'가 생기듯이 말이다.


마음 상처도 그리 한번 터뜨린 후에는 바로 회복되지는 않고,

그 마음 흉터를 덮는 '마음의 딱지'가 생기듯이 말이다.



시간이 좀 더 흘러서 여드름 딱지를 떼어내면,

피가 또 나거나 새로운 고름이 그 사이에 또 차올라서 생긴 게 있다.


마음 상처도 똑같다.

그 모든 응어리를 한 번에 다 쓸어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처음의 고름만큼 크지는 않을지라도 새롭게 작은 고름이 생겨있듯이 또 다른 작은 응어리가 맺혀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의 커다란 응어리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작게 남아 있는 부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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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딱딱한 딱지로 가장하여 단단한 척했지만, 그 딱지 아래에 또 다른 고름과 또 다른 피가 새롭게 생겨서 고인 것이다. 이렇게 다시 새롭게 생기는 피고름도 중간중간에 펌프질 하듯이 다시 빼내야 한다. 점점 더 적어지는 피고름의 양을 다 짜내면 결국에는 차차 처음의 맨살로 돌아가게 된다.

마음 상처와 응어리도 새로운 게 또 차오를 때마다 그렇게 펌프질 하듯이 조금씩 계속 더 빼내다 보면 점점 그 양도 줄어들어서 거의 원래의 마음 상태로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마음속 응어리와 상처에는, 슬픔, 분노, 아픔, 좌절 등의 여러 감정들이 복합되어 있는 만큼, 실제로 피고름을 빼내는 것보다 더 힘들 수 있어서 평소에 마음을 더 섬세하게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새롭게 차오르는 피고름은, 바로 그때 다시 짜면서 빼내 줘야 한다. 그런데 그런 시간들을 기다리지 못하고 무조건 처음에 터뜨릴 때 무리해서 한 번에 다 빼내려고 하면, 맨살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흉터만 더 심하게 생기는 역효과만 남게 된다. 즉 나중에 2차, 3차로 더 생기는 피와 고름은 또 그만큼의 시간 간격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처음보다 더 적은 양의 피고름이 생기는 것일지라도 그때까지 새롭게 숙성되는(?) 중간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시간들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모두 다 짜내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외관상으로도 더 흉한 상처만 남고 실제로 더 아프기만 할 뿐이다.




이는, 여드름 상처뿐이겠는가? 마음의 상처 또한 매우 비슷한 과정을 겪는 게 일반적이다. 아무리 마음속 쓰레기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소독하여 응어리와 상처를 정리해서 털어내 버렸다고 해도, 마음 정리 후에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 상처와 응어리를 한 번에 뒤끝 없이 정리했다고 해도 그 순간에는 마음이 그만큼 많이 개운해지고 회복될 수 있지만, 나중에 또다시 짓무르거나 덧날 수도 있는 위험은 언제나 내포되어 있다.


마음 정리를 한 번에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게 가능해서 한 번에 정리되었다고 할지라도 원래의 비옥했던 마음밭과 마음결 상태로 회복하는 시간은 또 다른 별개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밭 위에 뒹굴던 쓰레기는 제거했을지언정 그 쓰레기로 인해 생긴 스크래치 자국과 오염된 밭은 다시 회복하기 위한 시간과 비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마음밭의 상처를 터뜨리기만 하고 방치하면 회복하는데 오래 걸릴 수 있지만, 중간에 덧나지 않도록 다시 새롭게 올라오는 작은 응어리와 상처들을 빼내고 마음 연고도 다시 발라주는 중간 노력들이 더 수반된다면 그만큼 회복이 더 자연스럽고 빠를 수 있다.


따라서 주변 사람들 또한, ‘왜 그렇게 쿨하지 못하게, 한 번에 털어내지 못하냐?’는 식의 조언이나 비난도 가능한 지양하는 게 좋다. 그저 시간을 두고 조금은 기다리면서 지켜봐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동일한 사건이 발생할지라도 개인별로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다르고 과거의 경험과 트라우마도 각양각색일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상처의 강도나 흡수되는 충격도 각자 매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그런 반응은 마치, 어제 교통사고 당한 사람한테 ‘왜 아직도 병원에서 붕대를 감고 있느냐?’라던가, 선천적인 질병이 있거나 타고난 허약 체질인 사람한테 ‘당신은 왜 오늘도 아파서 운동을 하지 못하는 거냐?’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 있다. 부상이나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어서 당장은 누워서 휴식이 필요한 사람한테, 어서 빨리 붕대를 풀어헤치고 과도한 운동부터 하자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스로 또한, ‘나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마음과 정신이 나약한 걸까?’라고 자책하면서 자괴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우리는 각자 타고난 성향도 서로 천차만별로 다르지만 살아온 삶과 경험 또한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절대적인 비교 수치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제의 나 자신’보다 오늘 좀 더 치유되고 있고 단단해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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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드름과 마음 상처를 한 번에 무리해서 짜내는 게 좋지 않다고 해서, 그 반대로 중간에 차오를 때마다 빼내는 수고를 하지 않고 상처 딱지를 아예 무신경하게 방치하거나 오랫동안 미루는 것 또한 매우 좋지 않다. 처음의 커다란 딱지 크기는 줄어들지도 않은 상태인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딱지 안쪽에서는 점점 더 많은 고름이 새로 곪게 되고 더 많은 피가 차오르기 때문이다.


바쁜 일상 때문인지 아픈 상처를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상처 펌프질 작업을 계속 유보하거나 스톱하면 맨살로 돌아가는 회복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원래부터 그렇게 단단한 딱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즉 연약한 맨살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원래부터 크고 딱딱한 딱지를 가지고 있는 강인한 사람으로만 보일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외부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더욱 쉽게 건드릴 수 있고 그만큼 더 많은 공격과 자극에 노출될 위험도 크다. 쉽게 다치는 연약한 맨살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실제로도 매우 강한 사람이라면 전혀 문제가 될 것도 없다. 하지만 정반대로 그 커다란 딱지를 방패 삼아 그 안에 얼마나 많은 고름과 핏물을 잔뜩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오늘도 그런 ‘딱지 유형의 인간’들은 더욱더 공격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안타까운 거다.


즉 이런 사람들은 전형적인 ‘외강내유’로서, 안에 곪은 게 많은 사람일수록 그것을 감싸고 있는 겉의 껍질을 더욱 딱딱하게 할 수밖에 없는 유형에 해당된다. 우리 주변에도 저런 ‘외강내유’의 사람들이 꽤 존재하는데 잘 인식하지 못하기도 한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볼 때면, ‘외강내유’라고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저 원래부터 강인한 사람으로서 ‘외강 내강’ 일 거라고 종종 단정 짓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런 내면의 속사정을 말없이 헤아려줄 수 있는 그런 입체적인? 시선으로 한 번쯤은 따스하게 바라봐준다면 조금은 더 포용력 있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어떤 대상을 단면적으로만 바라보면서 섣불리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의 여러 다른 가능성들과 개인적 사정들을 고려해보는 그런 시각들을 함께 가져보려고 노력한다면, 타인이나 세상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해서 나 자신에 대한 이해의 폭도 같이 넓어지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물론 힘든 유형의 모든 사람들까지 이해해보려는 시선을 항상 가지고자 하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런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욱 이상적인 사회로 변화될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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