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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소남 Nov 14. 2019

광기와 저음의 박은태, 아줌마 다 된 옥주현

뮤지컬 스위니토드 


‘스위니토드’는 거장 손드하임의 뮤지컬 중에서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성마저 ‘대중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스위니토드 한 편만 제대로 봐도 손드하임의 천부적 재능과 실력, 장기를 듣고 만져보기에 충분하다.


 어쨌든 이 ‘스위니토드’를 한 줄로 써보자면 ‘공포 혹은 도시괴담의 외투를 걸친 사회풍자극’ 정도가 되지 않을까.


 등장인물들이 속사포 대사를 쏟아내듯 노래하는 이중창 혹은 삼중창은 손드하임의 능기 중 하나다. 제각기 ‘나 몰라라’하고 제 갈 길을 달려가는데 모아놓고 보면 제각각의 멜로디가 황홀할 정도로 잘 어우러진다. 따로국밥의 극단적 조화를 뮤지컬로 떠먹는 기분. 클래식 팬이라면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 느낌으로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무려 3층짜리 복층무대도 눈길을 끈다. 까마득한 3층은 전시용이겠거니 싶었으나 틀림없이 활용되었다. 1층에서는 안소니, 2층은 토드, 3층은 정신병원에 갇힌 조안나가 각각 예의 제 갈길 노래를 부르며 3개의 지옥을 보여준다.



 스위니토드 역의 박은태를 보며 ‘고음의 박은태’는 잊을 때가 왔나보다 싶었다. 객석까지 둥둥 밀려오는 저음에 놀란 관객들이 제법 많았을 듯. 이는 박은태의 피땀 어린 노력의 결실이다. ‘박은태’하면 저음을 빼고 중음에다 고음만 최고치로 올려놓은 이퀄라이저같은 음색의 소유자였으니까(미성이란 얘기입니다). 


박은태는 정상에 오른 이후 점점 더 노래를 잘 하고 있다. 이쯤 되니 존경심마저 든다. 그가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궁금하지 않다. 그저 옆에서 그의 진화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뻐근하니까.



 “옥주현 만세!”. 옥주현의 러빗부인을 보고 든 생각은 “아줌마 다 됐네”였다. 지난 시즌에도 옥주현의 러빗을 봤지만 확실히 달라졌다. 지난 시즌의 러빗이 “어지간하면 토드가 좀 받아주지” 싶은 러빗이었다면, 이번 러빗은 (여자로서는) 덜 매력적이고, (러빗으로서는)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됐다.


 옥주현은 자연스럽고, 천연덕스럽고, 심지어 빙구미까지 갖춘 러빗을 보여줬다. 박은태뿐만 아니라 옥주현도 정상에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옥주현이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좀 궁금하다.


 최근 본 작품들 중 최고의 앙상블이 아니었을까. 앙상블 배우들의 노래도 군무도 모두 좋았다. 기괴한 의상과 분장도 시즌에 잘 어울렸다. 한두 배우의 분장은 너무도 리얼해 소름이 올라왔다.


 앙상블이 부르는 “양의 탈을, 아니 이발사의 탈을 쓴 악. 마!” 합창이 은근 중독성이 있다. 네에, “아!”하고 한 템포 쉬었다가 “마!”하고 경멸하듯 뱉어내는 바로 그 장면입니다.


 조승우·홍광호·박은태(스위니토드), 옥주현·김지현·린아(러빗부인), 김도형·서영주(터핀판사), 임준혁(안소니), 최서연·이지수(조안나), 조휘(비들) 등 출연으로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공연 중. 옥주현은 24일이 마지막 공연이다.



PS. 커튼콜에서 옥주현은 박은태를 번쩍 들고 퇴장했다. 극중 러빗부인은 건장한 남자의 시체를 질질 끌고 나가기도 한다. 별 힘이 들어보이지 않는다.

결론 :  옥주현은 힘이 세다


<사진제공 ㅣ 오디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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