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비가 우리 집에 오고 난 후 나의 일과는 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찍으면서 시작한다. 이비는 아침에 특히 애교가 많고 말도 많다. 아침 먹기 전에는 나에게 와서 여기저기를 비벼대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말을 건넨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이비는 자러 가서 절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에 나는 이비의 애교와 미모가 폭발하는 아침 시간에 사진과 영상을 찍기에 바쁘다.
그러다 문득 내 핸드폰 사진첩을 열어 봤는데 고양이 사진과 영상으로 가득했다. 내 핸드폰 여유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인스타와 유튜브에 열심히 이비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느꼈던 감정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이건 나만의 핸드폰 사진 정리와 용량 줄이기 방법이다. 나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일상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음식 사진이나 놀러 다녀온 영상은 뭔가 핸드폰 용량만 차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내린 조치는 최대한 SNS에 열심히 올리고 핸드폰에서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다. 가능한 인물 사진이나 간직하고 싶은 영상만 핸드폰에 남기려고 한다.
앞으로 살아갈 날은 많고 카메라로 계속 열심히 찍을 텐데 이대로 핸드폰에 영원히 방치하기도 싫고 사진첩 용량이 점점 늘어나는 걸 두고 볼 순 없었다. 그래서 SNS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렇게 기록하면 나중에 보고 싶은 사진이나 영상을 찾는 것도 더 쉽다.
이비가 우리 집에 온 지 삼 일째 되는 날이지만 벌써 내 핸드폰 사진첩에는 이비 사진과 영상으로 도배가 되었다. 그렇지만 지우고 싶은 건 하나도 없었다.
이비에게 손 달라고 하면 손을 주는 영상, 아침에 기분이 좋아서 인형에 뒷발차기를 하며 에너지가 폭발하는 영상, 리본 놀이에 정신이 팔려 미친 듯이 노는 영상, 시도 때도 없이 아무 데나 철퍼덕 드러누워 있는 사진, 이비의 미모와 애교가 돋보이는 사진 등 버릴 것이 하나 없다.
그렇지만 이걸 핸드폰에 간직하고 있어도 자주 보진 않는다. 내 핸드폰에는 계속 무수히 많은 사진으로 축적될 것이고 다른 추억과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린 특단의 조치로 요즘 인스타와 유튜브에 열심히 이비 사진과 영상을 업로드 중이다. 누가 보면 집사인 줄 알겠지만 6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비를 돌보고 있는 것뿐이다.
가끔 주변에서는 나에게 이렇게 고양이를 좋아하면서 왜 정작 키우지 않냐고 묻기도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행복의 무게가 큰 만큼 책임감도 함께 따라온다. 현재 호주에 살고 있는 나는 가끔 오랜 기간 한국을 다녀오기도 하고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두 달에 한 번은 남편과 여행을 간다. 올해 4월에는 호주의 중심인 아웃백으로 열흘간 로드트립을 다녀올 예정이다.
언젠가 나중에 시간이 흘러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현재는 호주 곳곳과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지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리고 반려동물 없는 우리 집에 친구들이 편하게 고양이도 맡길 수도 있으니 이것 또한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비 사진과 영상은 다음 주까지 계속 업로드될 예정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 느꼈던 감정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이비가 우리 집에서 지내면서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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