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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Yeouul Jun 09. 2023

술자리에서 던진 한마디로 떠난 3,200km 로드트립

여행 떠나기 1년 전

21살에 내 인생 처음으로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친구와 단둘이 떠난 인도 배낭여행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고 겁도 많았다. 여행 초짜였지만 인도 배낭여행을 한 번 다녀오고 나니 그 후로는 어떤 여행이든 다 떠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매년 해외여행을 다녔다. 친구와 가족 혹은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4년 동안 10개국을 다녀왔다.



국내 여행도 많이 다녔다. 한때는 만 25세까지만 누릴 수 있었던 기차로 떠나는 ‘내일로’ 여행도 여름과 겨울 각각 다른 지역으로 다녀왔다. 계획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나기도 했으며 그저 막연히 기차역에 가서 떠나고 싶은 여행지를 고르기도 했다.





20대 중반에는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서 호주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갔지만, 결혼하면서 다시 호주로 돌아와 정착하여 살고 있다. 코로나 봉쇄 기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해외와 국내로 여행을 다녔고 지금은 호주에서의 삶도 익숙해지다 보니 여행이 주는 새로움이 이제는 예전만큼 크게 와닿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여행을 좋아하고 즐기긴 하지만 함께 떠난 누군가와 휴식을 보낸다던가 액티비티를 즐긴다던가 일상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마음이 풍요로워질 뿐이었다. 그러다 2023년 4월에 남편과 쿠버페디로 로드트립을 다녀오면서 나의 이런 무기력했던 여행 감성이 다시 깨어났다. 사라진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해외여행을 갔던 인도에서 느낀 두려움과 놀라움, 경이로움, 자기반성 등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다가오는 여행이었다.





*쿠버페디는 남호주에 위치한 도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오팔 생산지이다. 여름철 기온이 40°C를 넘을 정도로 심한 무더위가 지속되며 이곳 주민들은 무더위를 피하고자 주로 동굴이나 지하에서 생활한다. 주택과 교회, 호텔 등 쿠버페디에 있는 거의 모든 건물은 단단한 암벽을 파서 지어졌다.



쿠버페디를 처음 알게 된 건 워홀 올 때 호주를 공부하기 위해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는데 지하동굴 마을이 있다며 사람들이 무더위를 피해 땅을 파서 호텔과 교회, 주택 등을 지어 살고 있다며 소개했다. 마치 거짓말 같으면서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눈으로 보지 않는 이상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보려고 찾아봤었는데 쿠버페디는 넓은 호주 땅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삭막한 건조 지역인 아웃백에 있기 때문에 가는 교통이 만만치가 않았다. 물론 가려면 당연히 갈 수는 있다. 그런데 내가 호주 워홀을 결심했을 때만큼 큰 무리와 용기가 필요했다. 이제 막 워홀을 시작한 나에게는 무리였다.



나는 대학 등록금을 모아야 했고 여러 사정으로 쿠버페디는 나에게 그저 꿈같은 상상 속 미지의 공간으로 홀연히 잊혀 버렸다. 그래, 지하동굴 마을 있겠지. 다큐멘터리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 그렇지만 내 눈으로 볼 때까진 솔직히 다 믿진 못하겠어. 그런데 막상 가려니 좀 복잡하고 힘드네. 일단 영어 공부도 해야 하고 돈 벌어서 대학교도 가야지. 그렇게 쿠버페디 여행은 하고 싶은 순위에서 가장 밑으로 내려갔다.



누군가는 의지박약이나 게을러서
못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냥 하고 싶은 거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사는 게 뭐 어떤가.





워홀을 끝내고 나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힘든 유학 생활을 하였다. 일하고 공부하며 여유 없는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인생은 많이 바뀌었다. 결혼을 했고 호주에서 남편과 정착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으며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차도 있어서 우리는 호주 근교 여행도 많이 다니고 2022년 5월에는 멜버른에서 시드니로 로드트립도 다녀왔다. 왕복으로 거의 20시간이 되는 거리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호주 로드트립에 자신감이 생겼었다.





시드니 로드트립을 다녀와서 우리는 무사 복귀를 자축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다음 로드트립으로 나는 쿠버페디를 언급했다. 맨 처음에 남편은 쿠버페디가 어디냐고 물어봤다. 나는 신이 나서 호주에 지하동굴 마을이 있다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쿠버페디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러자 남편이 구글 지도에서 쿠버페디를 검색했는데 왕복 34시간을 보더니 남편은 잠시 말을 잃었다. 정적이 몇 초 흐른 후 남편은 가자며 대뜸 말을 던졌다. 시드니 로드트립을 막 마치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인지 술김인지 남편의 긍정적인 반응이 좋긴 했지만 이때 당시만 해도 우리가 쿠버페디를 갈 거라고 믿지 않았다.


참고로 나는 장롱면허여서 시드니 로드트립 때 남편이 독박으로 운전해서 다녀왔다. 그렇기 때문에 34시간이 넘는 쿠버페디 로드트립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에이 쿠버페디를 어떻게 가.





그런데 그로부터 약 1년 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쿠버페디를 34시간이 넘게 운전하여 다녀왔다. 사실 쿠버페디는 호주에서 그리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호주 전국을 돌며 여행하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지역에 불과하다. 쿠버페디 여행 중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호주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의 도착지가 쿠버페디라 하니 매우 놀라며 어떻게 여기가 경유지가 아닌 도착지일 수 있는지 라는 반응이었다. 보통 호주 사람들은 캠핑카를 타고 큰 호주 대륙을 한 달 넘게 여행하기 때문에 그 반응이 크게 낯설지는 않았다.



희미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자신감,
감동 등 여러 감정이 머리와 가슴에
물밀듯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이것은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동의 타격감을 안겨 준다.





이렇듯 쿠버페디는 볼 게 많거나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쿠버페디는 나의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자리 잡고 있었던 그저 꿈같은 여행이었다. 하려면 어떻게든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끄집어낼 만큼 큰 동기가 없었고 시간과 자금 또한 여유롭지 않았다.



누구나 이런 꿈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림을 그려서 언젠가 전시하는 게 꿈이야. 돈 많이 벌어서 세계 여행 한번 떠나보고 싶어. 프랑스 파리에서 한 달 살기 해보고 싶어. 내 이름으로 책 한 번 내보는 게 꿈이야. 인생에서 한 번쯤은 아마존 같은 대자연으로 배낭여행 가보고 싶어.





혼자 해낼 수 없는 장황하고 막연한 꿈이 아닌 실현 가능하지만, 돈이 많이 들거나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그런 꿈이 있다. 사실 하려면 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나의 현재 삶에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 누군가는 그게 의지박약이나 게을러서 못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지만 그냥 하고 싶은 거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사는 게 뭐 어떤가.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해낼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꿈을 놓지 않고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 희미했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과 자신감, 감동 등 여러 감정이 머리와 가슴에 물밀듯이 치밀어 오를 것이다. 이것은 인생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과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감동의 타격감을 안겨 준다.





모든 여행이 시들시들했던 건 내가 이전과 비슷한 여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쿠버페디로 가는 길에 창밖으로 바라본 공허한 아웃백의 전경은 끝이 없는 텅 빈 대지였지만, 그저 경이롭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사실 크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내가 10년 전에 쿠버페디 여행을 꿈꿨던 것처럼 모두에게 작거나 큰 꿈이나 상상의 나래가 있을 것이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잠시 마음속 어딘가에 묻어둔 그런 꿈같은 상상을 현실로 실현해 보자. 이것은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 엄청난 힘이 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스스로를 응원해 줄 수 있는 자신감 또한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쿠버페디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yeouul_illustrator

Youtube: 여놀자(yeonolja)ㅣ 여울여울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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