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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수영장은 샤워실이 남녀공용이라고요?

Piscine Thérèse et Jeanne Brulé, Paris

by 탐험가k

지금은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2021년, 코로나가 세상에 창궐하던 시기. 세상이 조금씩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던 겨울, 나는 파리행 티켓을 끊었다. 이유는 단 하나, 파리에서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친구가 유학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국경이 닫히면서, 우리는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12월, 오랜만에 파리로 향했다.


이미 한 번 가본 도시였기에, 관광지보다는 현지인들이 가는 곳에 더 끌렸다. 현지의 삶을 경험해보고 싶었던 나는, 몇 년 전 여행에서는 들르지 못했던 수영장을 가보기로 했다.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안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수영장에 갈래?
아니면, 엄청 맛있는 케밥집 옆에 있는 수영장?”



전자는 이미 구글맵에 저장해 둔 곳이었지만, 왠지 후자가 더 ‘현지인스러워’ 보여서 그곳을 택했다. (그리고 에펠탑이 있는 수영장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테라스에 나가야 했는데 추운 파리의 겨울, 나에게는 그 정도의 열정은 없었다) 해외에서 수영장을 가보는 건 처음이었고,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수영을 하게 되는 터라 살짝 긴장감을 안고 트램에 올랐다.


IMG_5961.JPG Piscine Thérèse et Jeanne Brulé,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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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수영장도 수모는 필수 / 자판기에서 수모나 귀마개 같은 용품을 간편하게 구매할 수 있다.



파리 수영장의 첫인상은 세련된 분위기였다. 새로 지어진 건물이라 그런지 현대적이고 깔끔했고, 한국처럼 로비 층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수영장이 한눈에 보였다. 다행히 불어를 할 수 있는 친구 덕분에 입장은 무리 없이 진행됐다. 입장권을 스캔한 뒤, 우리는 탈의실로 향했다.


여기서 첫 번째 문화 충격이 찾아왔다.

파리의 탈의실은 남녀 공용이었다.


지금껏 내가 알아왔던 수영장의 탈의실은 들어가자마자 타인의 나체를 마주하게 되는 곳이었기에 약간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이곳은 개별 칸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시스템이었다. 수영장의 높은 진입 장벽 중 하나가 개방된 탈의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이 방식이 오히려 더 편했다.


그렇다면… 샤워는 어떻게 하나? 씻지 않으면 입장 불가였던 한국 수영장에 익숙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탈의실을 나왔다. 히터도 없는 겨울 탈의실은 꽤나 추웠다.


두 번째 충격은 훨씬 강렬했다.

샤워실도 공용이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미리 말해주긴 했지만, 유교걸에게는 좀처럼 익숙해지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탈의는 하지 않은 채 수영복을 입고 씻는다는 점. 믿기 어렵겠지만, 프랑스 수영장은 진짜로 수영복을 입은 채로 샤워한다. 타인에게 몸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재주껏 머리도 감고 몸도 씻는다. 친구가 알려준 팁은 단 하나


“절대로 앞만 보고 씻어.”


샤워실에서 누굴 빤히 볼 일은 없겠지만, 친구의 친구는 씻다가 실수로(!) 누군가의 중요 부위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 일이 없도록 너무 열심히 씻지 말고, 적당히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된다. 뭐랄까, 정말 프랑스 스럽다. 두 차례의 문화 충격에 다소 너덜 해진 채, 드디어 수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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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은 성인 풀과 유아 풀로 나뉘어 있었고, 유리로 된 천장 덕분에 자연광이 쏟아져 실내임에도 무척 밝고 아름다웠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하고 입수했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레인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힘은 들었지만, 마스크 없이 물속을 유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방감을 느꼈다. 이때가 코로나가 잠잠해졌다가 다시 오미크론으로 확산되던 시기였기에, 수영장을 간다는 것 자체가 다소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긴 격리의 시간을 보냈기에, 그날만큼은 자유를 누리고 싶었다.


열심히 자유형과 배영을 하던 중, 한 프랑스 할머니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불어에 당황해 영어로 물었고, 할머니는 수면을 팍팍 치며 뭔가를 설명했다. 친구가 달려와 통역해 준 내용은,


“네 킥이 너무 세단다.”

“데졸레…”


사과는 했지만 민망함이 가시지 않아, 내향인은 조용히 유아 풀로 자리를 옮겼다. 수온도 훨씬 높고 풀도 작아, 오히려 물 위에 둥둥 떠 있기 딱 좋았다. 따뜻한 햇살이 얼굴에 스며들면서, 나는 다시 한번 해방감을 느꼈다.


다시 한번 민망한 샤워 타임을 마치고 탈의실로 돌아왔는데, 아뿔싸. 드라이기가 없었다. 한국 수영장을 기준으로 동전도 바리바리 챙겨갔건만 무용지물이었다. 핸드드라이어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마저 고장 나 있었다. 결국 수건으로 머리 물기를 꾹꾹 짜낸 뒤, 비니를 눌러쓰고 나왔다. 냄새며 탈모 걱정이야 있었지만 감기에 걸리는 것보단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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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언 머리를 안고 우리는 근처 케밥집으로 향했다. 물놀이 후라 뭘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따끈하고 기름진 케밥은 정말 최고였다. 특히 친구가 꼭 같이 먹어야 한다고 추천한 알제린 소스는 지금껏 먹어본 감자튀김 소스 중 단연 최고였다. 마요네즈 베이스에 살짝 매콤함이 더해져 고소하면서도 중독적인 풍미였다.



파리에 한 달간 머무는 동안 결국 에펠탑이 보이는 수영장은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수영장에서 느낀 신선한 충격과 자유로움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기에 후회는 없다. 언젠가 녹음이 가득한 여름의 파리에서 햇살 아래 수영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 수영은 여기까지.






Piscine Thérèse et Jeanne Brulé, Paris

1 Pl. Édith Thomas, 75014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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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25m 8개 레인, 수심 1.4-2m

아이와 이용 가능한 레저풀 보유, 수심 1.3m

메트로 Porte d'Orléans, ligne 4 / 트램 Porte d'Orléans, ligne T3a 모두 가까움


파리 중심지와 멀지만 쾌적하고 시설 좋은 수영장을 찾는다면,

몽파르나스, 카타콤, 방브 벼룩시장과 함께 방문하는 것을 추천

현지인 가득한 파리의 공원이 궁금하다면 근처 몽수리공원도 좋음




- 이미지 출처: https://www.paris.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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