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첫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작은 싹이 자랐다. 지금도 선생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민경숙 선생님. 단발머리에 큰 안경을 쓴, 차분한 미소를 가진 분이셨다. 선생님에 대한 세세한 기억은 없지만 그분의 얼굴과 인자한 웃음이 지금도 기억난다. 과수원을 했던 부모님은 가을에 제일 크고 좋은 사과를 골라 나에게 들려 보내셨다. 시골길을 30분 정도 걸어야 학교에 도착했는데, 커다란 사과 가방이 무겁고 힘들었던 기억이 없다. 선생님에게 사과를 드릴 생각만으로 기분 좋게 쉬면서, 놀면서 학교를 갔겠지. 백 년도 넘은 커다란 나무를 지나, 우리 집 과수원도 지나고, 언덕길을 올라 소나무 오솔길을 헤치고 나가면 옆 마을 포도밭이 있었다. 구불구불한 내리막길을 내려와 도로 옆 작은 둔치를 조심조심 걷다 보면 학교가 나왔다. 4년 동안 다닌 이 길은 지금도 아득히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나는 선생님이 됐어도 좋았을 것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나의 삶에 큰 기쁨이 됐을 테니까. 만약 선생님이 됐다면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때나, 뿌듯하고 기쁜 일이 있을 때나, 나의 첫 선생님 얼굴을 떠올렸겠지. 매년 스승의 날엔 나의 제자들에게 연락을 받았을 거야, 상상만으로도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다.
어린 시절 꿈을 버리고 새 꿈을 갖게 된 시기는 사춘기를 지나면 서다. 누구나 그렇듯 폭풍처럼 시끄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생계를 위해 늘 바쁘셨고 나는 혼자인 시간이 많았다. 내 친구는 나를 처음 봤을 때 저 애와 가까이 지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눈이 펑펑 오는 겨울, 아파트 앞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서 혼자 하늘을 바라보며 두 팔을 양 옆으로 벌리고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눈이 펑펑 오는 날 고개를 젖혀 하늘을 바라본 적이 없다면, 꼭 한번 경험해 보길 바란다. 이 세상을 사는 힘은 낭만에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다들 죽어라 공부하는 고등학교 시절, 첫 모의고사 때 생전 처음 받아본 등수를 받고 나는 공부에서부터 도망쳤다. 이때 나는 꽤 힘든 시기를 보냈다. 방황했다. 공부대신 그림 많이 그렸다. 만화책을 많이 봤고 만화를 많이 그렸다. 윙크, 챔프, 점프 등 만화 잡지가 유행했고 일본 만화가 책방에 많이 들어왔던 시절이었다. 신간이 나오면 수시로 책방에 들러 책이 들어왔는지 확인하고 드디어 책을 손에 넣고 교실에서 친구와 같이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설픈 그림을 계속 그리며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만화가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는 내가 꼭 만화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선생님도 되지 못했고 만화가도 되지 못했다. 아무도 되지 못하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고 다시 그림을 그렸다. 인생에서 제일 바쁘고 몸이 힘들 때,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어린 자식을 어린이 집에 늦게까지 맡겼고 잠도 줄였다. 참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늘 응원하는 남편과, 하루 종일 어린이집에 맡기는 엄마를, 여전히 사랑해 주는 아이들 덕에 나는 그림을 그렸다. 일러스트 외주 일을 시작해 근근이 돈을 벌었다. 그림책 일러스트 일을 하다가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어느 길이든 계속 가다 보면 다른 문이 생긴다. 지금껏 한 번도 문을 열어보지 못한 나는, 이번엔 꼭 문을 열고 싶었다. 한국 출판 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우수 출판 도서에 선정되었고 그렇게 내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두 번째 책은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매년 열리는 그림책 페어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로 선정됐고, 작년에 뉴질랜드에 와서 작업하던 세 번째 책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나는 다시 방황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다들 유쾌하고 호탕하고 겁이 없는 사람으로 나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겁 많은 사자다. 용기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는 사자. 그리고 사자는 혼자가 되고 다시 길을 잃었다. 다들 나에게 기대를 했다. 뉴질랜드로 가면 영감이 넘쳐날 것이니, 좋은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면 왠지 나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뉴질랜드는 말 그대로 멋진 풍경과 생명이 넘실대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해야 할 건 많은 거 같은데 한 개도 진행이 안 됐다. 마음이 급해졌고 화가 났고 우울했고 슬펐다. ‘바보 같은 나’를 되뇌며, 그렇게 작년 한 해를 꼬박 보냈다.
그리고 올해가 시작됐다. 나는 크로키를 하러 매주 아트 갤러리에 간다. 목적을 세우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니 목적을 세울 수 없다. 그냥 그림을 그리러 간다. 아무 목적 없이, 정해진 방향 없이 그냥 그림을 그리러 간다. 인체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끼는 내가 좋다. 그래서 나는 매주 크로키를 하러 간다.
오늘은 남자 모델이다. 그는 프로였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림을 그리다가 문득 그가 부러웠다. 나는 왜 길을 잃었을까. 어쩌면 길을 잃었다는 말속에 나는 숨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게으름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가지로 나를 포장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계속 가다 보면 문이 나올 것이다. 방향은 내가 정하지 않았지만, 그 길 앞에 문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으니 계속 걸으면 된다.
날이 좋다. 오늘도 걸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