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Aug 2025
2023년 1월 26일. 뉴질랜드에 처음 도착 한 날이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마음, 파란 하늘에 떠있던 구름들이 생각난다. 서울에서 높은 건물들만 보다가 뉴질랜드의 한적함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땐 아직 여행자 마음이었다. 모든 게 새롭고 신기했다. 한국과 다른 뉴질랜드가 좋았다. 늘 바빴던 일정이 한가해졌고 바쁘게 울리던 전화는 조용했다.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그게 좋았다.
조용히 혼자 지낸 평화로운 시간은 얼마 안 가 외로움으로 바뀌었다. 1년은 어리바리, 한적함을 즐기며 보냈고 2년째부터는 점점 외로워졌다. 3년째인 올해, 더 이상은 혼자인 게 싫어졌다. 이곳저곳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몇 명의 친구를 사귀었다. 나만 외로운 줄 알았는데, 외로운 사람들은 많았다.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았지만 친구가 생긴 건 더 좋았다. 우리는 모두 외로움을 품고 살고 있었다. 자신의 외로움을 발견한 사람들은 상대의 외로움도 보듬을 줄 안다. 몇몇은 서로의 외로움을 발견한 사람들이고, 몇몇은 성향이 맞아 가까워진 사람들이다. 오늘은 내 친구들을 소개해보겠다.
크리스는 ‘ART and TEA’ 모임에서 만났다. 그녀는 키위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할머니다. 나의 부모님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녀는 가끔 ART and TEA 모임에서 운다. 나는 그녀의 슬픔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오늘도 그녀는 울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고 내려가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무엇 때문에 슬프냐고.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짧은 순간이라 나는 그녀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냥 우리는 꼭 안았다. 알지 못하지만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내 외로움이 사라지도록 애써준 사람 중 한 명이다. 나도 그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
윌리언은 브라질 사람이다. 나는 그가 참 좋다.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인 그는, 무척 성실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그를 만난 지 이제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다른 젊은이들과 조금 다르다.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고, 영어를 적극적으로 배우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는 축구 코치다. 주말에만 일을 하기 때문에 취업 고민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가 꼭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 전, 그는 인스타그램 메시지를 나에게 보냈다. 어떤 브라질 유튜버가 한국 여행 중 음식을 먹고 찍은 동영상이다. 유튜버의 썸네일 화면이 엄지 손가락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 장면이라 나의 흥미를 끌었다. 나는 윌리언에게 이 유튜버가 한국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냐고 물었다. 이 글을 쓰고 난 뒤 그 동영상을 보려고 한다. 마음이 급하다. 윌리언에게 한국의 좋은 점을 잘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잘하고 싶다.
치치는 베트남 사람이다. 우리는 역시 ‘ART and TEA’ 모임에서 만났다. 그녀는 지난주 처음 참여했는데, 그녀도 울었다. 세상에 슬픈 사람이 많다. 내 생각에 그녀도 외로운 것 같다. 타국에서 살면서 제일 큰 문제는 외로움이다. 나도 외로워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러 다닌다. 누군가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오늘 먹은 음식, 아이들 학교 일정, 전에 가봤던 식당 이야기는 사실 무척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나눌 사람이 없으면, 외로움이 마음 한켜에 자리 잡기 시작한다. 세상 쓸모없는 대화 주제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주제로 대화 나눌 사람이 없어서 슬펐다. 치치는 이혼을 했고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그녀의 전 남편 집에서 사는데 그 집엔 방이 7개다. … 내 생각에 그녀는 외로움 말고 다른 걱정은 없을 것 같다. 다음 주엔 모임 끝나고 미션 베이 산책을 같이 하기로 했다. 날씨가 좋길 바란다.
미미는 미얀마 사람이다. 사실 지금 미미에게서 연락이 없다. 나는 미미가 좋았다. 우리는 이전 영어 수업에서 만났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녀는 귀여웠다. 우리는 수업 때 만나 언제나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쉽지 않다. 마음은 더 넓어졌는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수업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그녀와 만날 일이 사라졌다. 언제 커피를 마시자고 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이 토라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른 수업으로 옮긴 일을 모르고 있었다. 이민자의 나라인 뉴질랜드는 왔다가 떠나는 사람이 많다. 아마 그런 사람들에게 지쳤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치앙은 내 앞집 이웃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왔는데, 요리를 무척 잘한다. 이미 그녀에게 몇 번 음식을 선물 받았다. 그녀는 요리가 좋다고 했다. 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치앙 같은 사람을 만나면 존경의 눈빛이 저절로 생긴다. 그녀의 남편은 호텔에서 일하는 셰프라고 한다. 이럴 수가. 한 집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살다니. 그들의 아이들은 대체 전생에 무슨 일을 했길래, 요리를 잘하는 아빠와 엄마를 가지게 됐을까. 그녀는 재치 있고 개를 좋아한다. 나는 가끔 그녀의 개를 산책시킨다. 그녀가 영어 수업에 가는 동안 산책을 시켜주기로 했다. 그녀는 개를 정말 사랑한다. 에디는 그녀의 개다. 에디는 예의 바른 개다. 뛰지 않고, 사람을 좋아한다. 산책시키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다. 에디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가끔 볼일을 두세 번 보기도 하지만, 그런 것쯤은 일도 아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생겼다. 그들은 모두 다른 이유로 뉴질랜드에 와서 살고 있다. 그리고 어떤 공통점이 서로를 연 걸 시켜 주었다. 나는 이들이 좋다.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각자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으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다. 나도 언젠가 뉴질랜드를 떠날 사람이라 얼마나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동안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관계로 지내고 싶다. 내가 이렇게 나이, 국적 상관없이 여러 친구를 사귀게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아마 내가 사는 동안 다시 생기지 않을 일이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한국이 더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벌써 그립다. 언젠가 우리는 헤어지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온 마음으로 그들을 만날 것이다. 친구 한 명 없던 2년 전에 비하면, 나는 지금 행복하다. 더 이상 외롭지 않다. 짧은 영어로 내 일상을 나눈다.
별것 아닌 일이 행복을 만든다. 사실 행복은 별것 아닌 일로 느끼는 것 같다.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