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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열시 Jan 19. 2022

베지밀 한 병, 그녀의 발걸음에는 꽃이 피었다.

새벽이 주는 선물


해가 뜨기 전, 어스름한 새벽.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이 순간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야간에 일을 하게 된다면 새벽의 여러 가지 모습을 보게 된다. 22시-02시는 술과 함께한 사람들, 02시-05시 새벽에 일을 하시는 분들, 05-08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각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02시-05시의 고요한 새벽의 소리 또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3가지 카테고리 중 05시-08시, '바쁘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 중 유독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다.



이른 새벽, 대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벽을 보기 위해서는 밤을 세워야 한다. 그 이유는 아침잠이 많기 때문인데, 이때 활용하는 것은 야간 편의점 대타다. 자주 다니던 편의점 사장님과 새벽에 종종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지게 되었는데, 그 기회로 이렇게 종종 편의점을 봐주기도 했다.



22시-02시 시끄러운 세상이 조금씩 고요해지면 가만히 새벽의 고요함을 바라본다.



그리고 새벽 5시, 고요했던 세상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나,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학교를 가는 사람들 등등 자신의 삶을 짊어지고 약속이나 한 듯 지하철역에서 모인다. 커다랗게 보이던 입구가 어느새 좁게 느껴지면서, 그들은 지하 속으로 들어간다.



한쪽에서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리고 청소부들이 보인다. 그 사람들은 세상을 가장 먼저 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리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바쁘게 걸어간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사회로 뛰어드는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 것인지 발걸음은 쉬지 않고 놀린다.



도로에는 신호에 맞춰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지만, 조금만 있으면 금방 경적소리로 가득 찰 것이다.



아침 7시, 이제는 주변의 고요함 보다 삶의 소리가 더 많아지는 시간이다. 직장에 늦은 것인지 뛰어가는 사람들도 보이고, 도로에는 경적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세상이 온통 시끌벅적하다. 이제서야 좁게 열여있던 하루의 문이 활짝 열렸다.



"띠링"



편의점의 문이 열린다. 바쁘게 뛰어다니던 사람들과는 다른 느낌의 손님이 걸어들어온다. 사실 나는 저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걷는 모습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베지밀 한 병을 꺼내 포스기에 올려 둔다.



그녀는 당차고, 자신감의 넘치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당당하게 고개가 들려 있었으며, 눈을 마추치고, 원하는 것을 그리고 해야 할 말은 하는 그런 사람으로 느껴졌다.



"1200원입니다"



베지밀 한 병. 많은 상품들 중에 그녀가 고른 것은 단 하나였다.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서 가벼운 미소가 그려진다. 그리곤 감사함을 표하고,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고 유리창으로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걸었다. 이상하게 매료가 되는 듯한 느낌에 나도 모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문득 그녀는 걸음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는 듯 자연스럽게 자신이 구입했던 베지밀 한 병을 새로운 주인에게 건넸다. 그 순간만큼은 따뜻하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베지밀의 새로운 주인은 추위를 견디며 폐지를 줍던 할머니였다. 그 모습에 나는 순간 가슴이 멍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행동은 너무 아름다웠고, 당당하게 걷고 자신감 있는 분위기가 왜 그녀에게서 풍겨왔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가 떠나간 길을 보며 잔잔하게 다짐을 했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이제는 10년이 지나버린 아름다운 추억의 한편이다. 그녀의 얼굴은 확연하게 기억에 남지 않지만, 여전히 느낌은 내 속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지나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 발걸음 등이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외향은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발자취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길을 걸을 때 빛이 나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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