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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현 Jan 27. 2023

때론 입력값에 따라 행동하는 우리

영화 <비바리움(Vivarium, 2019)>




<비바리움(Vivarium,2019)>


✔ 영화 정보 

비바리움 l Vivarium

개봉: 2020.7.16

감독: 로칸 피네건

장르: SF, 드라마

국가: 미국, 덴마크, 아일랜드, 벨기에




연애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화두가 있다. 연상이 좋은지 연하가 좋은지 묻는 것이다. 특히 데면 데면 서로의 취향을 잘 모르는 사이에선 그야말로 단골이다. 


근데 정작 그 예사로움의 정도 만큼이나 그 질문의 동기가 실속이 있는지에 대해선 아리송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록, 나이의 많고 적음이 그 사람의 특징과는 별 상관관계가 없단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우리 말과 행동의 많은 부분이 입력값으로 작동된다는 증거이다. 그냥 ‘으레 그렇다고들 해서’ 머릿속에 사실의 모양으로 자리한 명제들이 의외로 많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 듬직하고 선선히 의지가 되리라는, 혹은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어리광 있고 제법 귀여운 성격의 소유자일 것이라는 통념이 그 중 하나인 것이다. 물론, 일리가 없는 말이 아니어서 사람들에게 통념이 될 수 있었을테다. 허나 통념은 우리 사유를 잡아먹는다. 누군가는 저 사람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도 전에 ‘연상’ 아니면 ‘연하’라서 싫다는 말을 한다. 그 과정과 동기를 만들지 않은채, 그저 입력값인듯이.


어미새의 행동에는 자연적으로 "둥지에서 붉은 입천장을 가지고 고음을 내는 새에게 먹이를 가져다 주어라” 라고 하는 입력값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뻐꾸기는 이를 생존 방식으로 교묘히 이용한다. 우선 어미 뻐꾸기는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다. 뻐꾸기 알은 그 둥지에 있던 알들과 섞인채 다른 어미에게 품어진다. 이내 뻐꾸기는 부화하여, 원래 있던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붉은 입천장을 내보이며 태연히 먹이를 달라 소리지른다. 그 둥지의 어미새는 입력값에 따라 헌신적으로 곤충을 잡아다 준다. 뻐꾸기가 어미새의 5배 만큼 켜져도 알고리즘은 변수를 새로하기 전까진 달리 작동되지 않는다.



<비바리움(Vivarium,2019)>은 이 망연하기 짝이 없는 입력값에 의한 맹목에 인간을 가두는 영화이다. 인간은 삶의 의미를 되물을 줄도, 자아를 위한 관념적인 사유를 할줄도 아는데 항변의 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기괴한 모양의 답습을 본능적으로 일삼는 유기체로만 형상화된다. 그런데 이질감은 커녕, 기시감이 자꾸 든다. 


우리의 현재는 1분 1초마다 과거로 탈바꿈한다. 매 순간 우리는 현재를 잃어버리며, 미래가 현재로 대출한다. 알 수 없이 이 땅에 와서, 어찌 매 순간 의미를 현현시켜 현재를 곧추세울 수가 있을까. 삶의 광포한 허망함 속에 맹목은, 생존에 도움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의도 하였든, 혹은 그냥 입력값이든. 


어떤 맹목은, 인간다움의 일부이다.



95세 재즈 가수 토니 베넷(Tony Bennett)의 무대 영상을 우연히 본 적 있다. 무대가 총명하고도 유연하여 잠시 감상에 젖던 기억이 선한데, 알고보니 그는 수 년간 알츠하이머를 앓는 중이라고 했다. 지난 세월 기억을 모두 잊고 가족말고는 사람을 알아 볼 수도 없는 가수는 무대에 오르자 입력값처럼 노래 부르며 무대를 지휘한 것이다. 그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 생애 동안의 그 맹목이란, 오직 무대 였을것이다.


어느 입력값은 유달리 더욱 인간적이어서, 우릴 답답하게도, 밉게도, 측은하게도 만들 것이다. 그러나 왜 내가 연상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니는지 좀 더 깊게 생각해봐야할 필요처럼, 그 입력값의 기원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 끝에는 분명 아름다움이나 숭고함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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