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뛰어드는 와중에 그 사람은 선언했다. 몸의 거리가 가깝지 않으면 자기는 사랑하기가 어렵다. 으레 며칠을 곁에 있지 않게된다면 점점 고도가 낮아지는 등고선처럼 사랑이 연해지고 말것이다.
사랑하며 전략적이기란 불가능하다. 날 무단 점령 할 수 있는 단일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내 사랑은 볼모 잡혔다. 우리 사이의 불분명한 것들에 안절부절하며 버둥대기 시작했다.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었고, 그동안 뜻대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결점들을 깨우치듯 단번에 고쳐냈다. 날 향한 그 사람의 생동하는 반응을 얻으려 내 일을 제쳐두고라도 그 사람의 관심사와 일을 탐닉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생활을 바꾸라고 강요한 적 없다고 말했다. 자기 결점을 가다듬는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당부했으며 바뀐 모습을 상상하자니 결국 원하는 모습이 아니랬다. 내가 진지한 것들에 대해선 무엇도 궁금해하지 않았으며 때론 무례하게 재단하는 말만을 얹기도 했다.
물론 사랑의 형태는 개개인의 성향들을 위시하여 다양하게 존재한다. 모든 것이 다르게 존재 가능한채로 나타나고 스러지며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다.
그렇담 우리는 무엇이 다르지 않고 틀렸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에밀리 디킨슨이 “영혼은 그 자신의 사회를 선택한다. 그러고는 문을 닫아버린다.”고 쓴 것처럼 본디 인간의 영혼과 관념, 성향이나 감정에 얽힌 문제일수록 감히 틀렸다고 이야기할 여부는 희미해진다. 우리가 다를 수 있다는 말로 대강 뭉개어 흐트러뜨리고 있는 꽤나 많은 것들에 '이기심'은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꼭 감정과 동기의 순서가 뒤바뀐다. 한쪽이 열렬한 감정을 통해 사랑을 위한 희생의 동기를 짓고 있을 때, 다른 한쪽은 사랑하기 위한 조건을 내민다. 상호의존적인 약점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성립된다. 상대를 사랑하는 사람과 상대가 필요한 사람은 대등하게 약하지 않다. 전자는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지만, 후자는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할 것이다.
각자 다른 서로를 선의로 추측하며, 자신들을 확장해가는것이 연애의 목적이라면 이기심은 그 목적을 향한 나아감을 억제한다는 면에서 확실하게 틀렸다. 결코 한 개인을 중심으로하여 돌지 않는 이 우주를 마치 당신이 중심인 듯 착각하도록 하니, 가히 섭리를 거스르는 광포한 위험과 저항을 가진 유해한 태도이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네가 이렇게 해줬음 해. 이 문장이 사랑을 기초한다면, 그 다음 네가 이렇게 생겨먹은 날 위해 이렇게 해주었으니, 나도 그렇게 생겨먹은 너를 위해 그렇게 해줄게. 라는 문장이 꼭 뒤따라야한다. 서로의 손을 이타적으로 꼭 잡으며, 상대의 환희속에서 풍요하게 성장하고 영글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