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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 Mar 04. 2021

이건 술푼 자기소개서

‘Before we begin this semester, please introduce yourself – your interest, your age, what you like to do after graduate, and etc. 


  졸업학기를 맞이한 나에게 주어진 첫 과제다. 


  적지 않은 자기소개서를 쓰고 제출해왔지만, 순수하고 목적 없는 자기소개서는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있을까?’ 끊임없이 자문하는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흥미와 나이, 졸업 후에 하고 싶은 일, 그리고 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 석자와 나이 뿐인 듯 하다. 나름 흥미가 많은 사람 처럼 보이지만, 흥미의 영역을 전문 분야 정도의 지식으로 끌어올린 사람들을 보면, 나에게 흥미라 부를 수 있는 영역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나름 내 분야 안에서 다양한 일들을 접하고, 고민해왔지만, 여전히 졸업 후의 거취에 대해 이리저리 장단점을 따지며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함께’ 감상하고, 글 쓰고, 대화하는 행위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방법들이 앞서 말한 고민에 일말의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위의 모든 행동들은 ‘함께’라는 부사를 수반해야 행위로써 그 의미가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으로 노동, 작업, 행위를 내세웠다. 여기서 행위는 각자의 정신세계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인간이 작업을 통해 만들어내는 세계의 목적을 논의하는 기초적인 활동이라고 정의된다. 그가 말한 행위는 행위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행위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환경은, 서로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뜻한다. 나를 이를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띄는 환경이라고 해석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매체는 크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온라인 매체는 대화를 잠시 중지시키거나, 참여하지 않는 것이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에서 오프라인 공간과 차이점을 갖는다. 따라서 나는 카페와 바를 현대 사회 속에서 행위하기 가장 적합한 공간이라고 보았다.  


  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자 몇일 전, 아는 동생과 인사동의 한 술집을 찾았다. 어느덧 알게 된 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로가 자신을 솔직하다고 말했지만, 그날 서로 털어 놓았던 상대방의 모습들은 내가 알고 있던 우리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가끔 스치는 말들로 항상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하는 동생의 말에 그날도 나는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렇듯 나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자기를 모르고 타인을 모른다. 가끔 함께 행해지는 알콜 섭취로 인해 행위 실천의 진실된 의미가 흐릿해 지고 무의미 해 질 때도 있지만, 글을 통해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고,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몰랐던 나를 찾는 일이 요즘은 꽤나 흥미로운 듯 하다. 여전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름 석자와 나이 뿐이지만, 술을 탐미하는 일 만큼 나를 알아가는 일에도 심혈을 기울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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