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본인이 대학원 전공을 대학교와 다른 걸로 한다고 선언한다면?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을까?"라는 우려 섞인 반응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도 그런 게 나이가 들면서 원래 목표로 설정한 길을 바꾸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느껴서 그러지 않을까? 어릴 때는 꿈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바뀌는 대로 쉽게 적응하는 탄성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과 마음 둘 다 고무 같던 탄성력이 조금씩 줄어듦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가 다르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우선 건강에 변화가 생겼음을 체감한다. 학부 시절에는 한창 시험 기간 때 잠을 조금만 자도 밥만 잘 먹으면 시험을 다 치르고도 체력이 남았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마음으로는 진짜 어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면서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사회가 주는 압박감이든 나 자신에서 오는 압박감이든 말이다. 모든 행동에 책임과 결과가 따름을 실감하기 때문에 단순히 좋아 보여서 바꾸겠다는 예전과는 다르게 충분한 이유 없이는 잘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작은 변화에도 보다 신중하게 생각하는데 진로를 순식간에 틀 수 있는 전공 선택에는 수많은 고민을 거쳐가는 게 당연하다.
내 학부 전공은 국제관계학이다. 고등학생 때 세계사에 빠져 각국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정치·경제적 상황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전공으로 국제관계학을 선택한 건 당연한 수순. 대학교에서 수많은 시험과 에세이를 치렀지만 여전히 정치와 경제, 역사에 대한 흥미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4학년에 심리학과 접점을 맞춘 계기가 있었다. 어느 수업에서 국제관계학은 3가지의 분석 (levels of analysis)을 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개인적 분석 (individual level of analysis)이다. 개인적 분석은 말 그대로 개개인의 관계를 통해 국제 관계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개인적 분석으로 통해 기존의 외교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확신이 생겨서였을까? 졸업논문으로 한미관계를 국가 대 국가가 아닌 대통령끼리의 관계를 통해 한미관계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갔는지 조사하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대통령의 관계에 따라 한미관계가 역동적으로 움직였다는 주장을 증명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아는 것과는 다르게 한미관계가 일정하게 쭉 나아간 게 아니라 많은 변곡점을 거쳐왔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심리학으로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외교관계에 심리적인 면을 더한 학사논문이 심리학으로 방향을 튼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들어가면서 또 한 번 심리학을 고려해 본 계기가 있었다. 많은 점에서 군대는 이전의 생활과 달랐다. 일상생활에서 느꼈던 자유와 선택권 박탈, 기상부터 취침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생활, 전혀 연관 없는 사람들과 같은 부대에서의 교류, 계급화로 인한 특이한 규칙 및 환경 등 생소한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 때문에, 또는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실망하기도 했고, 가끔 우울감에 헤어 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괴로웠던 것은 무료함이었다. 이 날이 그날 같고, 그날이 저 날 같은 똑같은 일상. 하루하루가 덧없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무료함에서 벗어나고자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자전거 타기나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도 불러봤다. 그렇지만 제일 많이 할애한 활동은 독서였다. 그 전에도 책을 읽기는 했지만 전공서적을 제외한 책에는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하지만 무료함에서 그토록 벗어나고 싶어서 표지만 보고 조금이라도 재밌겠다 생각이 드는 책이라면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 에세이, 시집, 역사, 과학, 예술 등 어떠한 것도 상관없었다. 나중에는 미리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을 집에서 챙겨 군대로 가져와 읽기도 했다. 다 읽고 나서는 책의 저자와 제목을 하나씩 기록해 나갔다. 성취감이 들면서 너무나도 단조로울 수 있는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전역하기 전 그간 읽었던 책 리스트가 생각이 나서 열어보니 생각보다 심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런가 싶어 해당 책의 제목과 저자를 보니 초반에는 마음의 안정과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여럿 읽은 게 눈에 띄었다. 그러다 뒤로 갈수록 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심리적으로 풀어낸 책을 꽤 읽었다. 아마도 초기에는 군대 생활이 힘들어 안식을 얻고 의미부여를 하려다 보니 그러한 책을 읽은 듯하다. 중반부터는 군대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해 이것저것 읽지 않았나 싶다. 예상보다 심리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걸 깨닫고 이때부터 심리학으로 갈아탈지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만고의 시간 끝에 전역을 하고 인턴십을 구하면서 곧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학부를 국제관계학으로 한 이상 심리학 관련 인턴십을 지원할 수 없었다. 최소한 몇몇 심리학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학부 때 기초심리학과 인지심리학 수업을 제외하곤 수강 내력이 전혀 없었다. 사실 웬만한 인턴십은 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에 한했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일을 하는 경우는 엄두도 못 냈다. 그리고 예전부터 해외의 싱크탱크 연구소나 NGO에서 일을 하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그들이 정확히 하는 일이 무엇이며 사회에 어떤 식으로 기여하는지 궁금했고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해보기도 싶었다. 싱가포르부터 파나마까지 다양한 국가에 소속된 싱크탱크와 NGO에 지원을 했고 다행히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인도 지사에서 시험과 인터뷰를 통과해 일을 하게 되었다.
인도와 이런 식으로 처음 마주할 거라고 예상치 못한 놀라움은 인도의 민낯을 보고 또 다른 놀라움으로 번져갔다. 왕복 8차선 도로에 시도 때도 없이 경적을 울리는 차와 툭툭, 오토바이를 비롯해 용감하게 도로를 가로지르는 사람들, 자욱한 미세먼지 사이로 빠르게 달리는 택시 기사, 빨간 신호등으로 멈추면 가끔씩 택시 창문을 두드리면서 구걸하는 사람들, 동네로 도착하면 길가 양쪽에 쭉 늘어져있는 노점상. 아직도 델리 공항을 빠져나왔을 때의 충격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이런 다이내믹한 곳에서 3개월간 지내면 많은 경험을 할 수밖에 없다. 미니 금고 안에 둔 현금이 도난당하고, 몇 주간 배앓이에 시달렸고, 유명 관광지에 인도인과 외국인의 요금이 다르다는 걸 알고 화가 났고, 에이버엔비 주인과 수차례 협상도 해보고, 모르는 거리를 혼자 활보하면서 짜릿함도 느껴보고, 직장 동료들과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도 나눠봤다. 인턴십을 통해 배운 것도 있었지만, 일상에 부딪히면서 수많은 것을 배웠고 지금까지도 피와 살이 되는 경험이라고 자부한다.
코로나로 일찍 한국에 귀국하면서 환경의 차이가 얼마나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영향을 끼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하루 번 돈으로 먹고살며 생존과의 싸움이 일상인 인도 사람의 삶과 기본적인 욕구와 인프라가 충족된 한국인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이에 따라 행동과 사고방식에도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아가 사회 제도와 규범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고, 반대로 개인마다 내재된 행동양식이 사회에 어떻게 영항을 주는지 더 파헤치고 싶었다. 심리학으로 방향을 전환할 확실한 동기부여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공에 대한 내적 갈등이 없어졌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변화 자체에 위험을 감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심리학과 국제관계학은 엄연히 다른 분야이기 때문에 큰 리스크를 떠안고 가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관계학에 대한 미련은 분명히 있었고 지금도 조금 남아있다. 나라 간의 복잡한 관계를 분석하는 데서 오는 두통과 국제 관련 신문 기사를 읽으면서 기사가 제시하는 내용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추론하는 재미는 여느 학과에는 없는 독특한 즐거움을 (때로는 괴로움을) 선사한다. 하지만 새로움을 열망하고 배움을 갈망하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런 신념을 가진 나 자신을 한 번 더 믿어보고 도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