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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레야맘 Jun 12. 2023

나이 마흔에 인형이라 불리다니.

다정한 호칭이 말투를 바꾼다

마트에서 장을 보다 한 아주머니와 살짝 부딪혔다.

"Discupa, mi amor." 미안해요, 내 사랑이라니.. 처음 보는 사이에 너무 다정하다.

이곳 사람들은 가끔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다정한 호칭을 사용한다. Mi amor (내 사랑), Amiga (친구)는 물론이고, 언젠가 주유소에서 주유해 주는 직원은 나를 "Muñeca (인형)"라고 불렀다. 그날은 너무 충격을 받아 소름이 돋았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그런 호칭으로는 불려본 적도 없고, 심지어 내가 딸아이를 그렇게 불러본 적도 없는데... 나이 마흔에 인형이라 불리다니.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나를 '똥순이'라고 불렀다. 촌스러운 이름으로 부르면 오래 산다는 미신 때문이었는지, 그냥 그 이 나름 귀엽다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나를 그렇게 불렀다. 조금 자란 후 나는 제발 그냥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난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게 가장 좋았다. 그래서일까 나도 딸아이를 부르는 호칭은 따로 없었고 보통 이름을 불러왔다. 그냥 공들여지은 이름으로 부르는 게 좋았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 이곳 사람들의 영향으로 나도 아이를 좀 더 다정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내 사랑, 내 공주라 불리는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이름만 부르는 게 어쩐지 너무 딱딱하고 건조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여러 호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우리 집 천사'라고 부르면 아이는 천사처럼 착하게 행동을 하고, '귀요미'나 '우리 아기'라고 부르면 아기처럼 어리광을 부린다. 요즘엔 '엄마의 사랑, 엄마의 자랑'이라는 뜻으로 '랑랑'이란 별명으로도 부르는데, 그냥 이름을 부를 때보다 아이가 기분 좋아한다.


뒤에 어떤 말이 오더라도 일단 다정한 호칭으로 시작하면 뒷 말도 모두 다정해진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말이다. 예쁜 말을 써야지 매일 결심하지만 쉽지 않은데 호칭을 바꾸니 말투가 바뀌는 것 같다.


아직 낯선 사람에게 Amigo, Amiga, Amor 란 호칭을 부를 자신은 없지만,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은 다정한 애칭으로 불러주어야겠다. 남편은 뭐라고 불러주면 좋을까? 몇 가지 말이 떠오른다. 다정하고, 달달한 애칭들. 아직 입밖에 내긴 간지럽지만 생각만으로 기분은 좋아진다.



망고처럼 달달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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