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5개국에서 자란 만 7세 아이 레야. 레야는 만 2세가 지난 후 첫 기관 생활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다닌 기관(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이 이미 벌써 7곳이다. 내가 평생 다닌 교육 기관 수 보다 더 많다. 며칠 전엔 레야가 이곳에서 지금 다니는 학교는 언제까지 다니는지 물었다. 이제 한 학년을 마무리하니 몇 학년 때까지 다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다.
"몇 학년까지 다니고 싶어?" 되물었더니 "내일 E랑 화해하면 Year4까지 다니고, 화해 안 하면 Year3까지 다닐래."
(영국계 학교라 만 6,7세는 Year2, 2학년이다.)
어떤 대답이 나올지 몰라 살짝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다운 대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럼 내일 화해할 거니까 2년은 더 다니겠네. 우리 그렇게 하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 이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레야는 7세 인생에 벌써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레야처럼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며 자라는 아이들을 TCK(Third culture kids), 제3 문화 아이라 부른다. 많은 TCK들은 곧 친구들과 헤어질 것을 알기에 새로운 곳에 가면 친구를 사귀더라도 감정적으로 깊이 사귀지 않곤 한다고 한다. 헤어질 때 슬픔을 감당하고 싶지 않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일엔 항상 좋은 것도 항상 나쁜 것도 없다.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며 남다른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분명 있지만, TCK의 안 좋은 점도 있다. 그중 가장 나에게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은 상실에 대한 것이다. David Pollock, Ruth Van Reken, and Michael Polloc의 <Third Culture kids>에서는 'TCK가 잃어버리는 것'으로 다음의 리스트를 제시한다.
1. Loss of their world. TCK는 그들이 알고 있던 모든 세상을 비행기를 타는 것과 동시에 잃어버린다.
2. Loss of status. 그들이 알고 있던 세상을 잃을 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 속에서 어떤 지위가 될지 모른다.
3. Loss of lifestyle. 데일리 루틴, 주거 환경이 이사와 동시에 모두 바뀌게 된다.
4. Loss of possessions.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장난감과의 이별 등. 그것은 그들의 과거와의 연결점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5. Loss of relationships. 관계를 잃는다. 친구와 헤어지고 친척, 조부모와도 이별하게 된다.
6. Loss of the past that wasn't. 함께 하고 싶었던 친구들과의 생일 파티, 시작한 학교에서 졸업하지 못하게 되는 것등 원했던 무엇인가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잃는다.
7. Loss of the past that was. 그들이 기억하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 더 이상 기억하고 있던 장소가 사라질 수도 있고, 사람들이 이사를 갈 수도 있다.
이 리스트를 보며 정말하나하나 공감했다. 아이가 그것을 인식했든, 인식하지 못했든 아이는 저것들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지금 어쩌면 많은 TCK가 그런 것처럼 반복되는 상실과 이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스킬을 익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이가 매번 이별마다 마음 아파하는 것도 힘들겠지만, 아이가 감정이 메마른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면 그건 더 슬플 것 같다.
노마드 육아를 하며 TCK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이런 상황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 그래서 수시로 아이와 최대한 우리가 두고 떠나야 했던 것들, 사람들, 공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가 충분히 그리워하고, 상실에 대한 슬픔을 드러낼 수 있게 해 주려 노력한다. 그리고 리스트에 있는 항목들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 노력하는데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계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