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대지의 시간> 전시형식비평
‘생태’라는 개념 아래 모인 십여 개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던진다. 작가의 목소리는 미술의 감각언어로 발화되어 관람객과의 감각적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다. 전시장에 배치된 구형 반사체들은 작품과 관객을 한 데 묶어 대상화함으로, 관객 스스로가 생태의 한 부분이며 작가와 같은 발화의 주체임을 인지토록 한다. 관객과 미술품들이 한데 모여 목소리를 내는 이 전시는 생생한 생태적 담론의 장(場)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저마다 독립적인 공간에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열린 공간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배치되었다. 전시디자이너는 작품과 작품 사이를 갈라놓는 벽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공간을 점유하는 것은 다양한 크기의 구형 반사체이다. 이 구들은 마치 바둑판 위의 돌처럼 공간을 장악하며 물리적으로 분절되지 않은 다양한 크기의 공간과 흐름을 만들어낸다. 동시에 이 구형 반사체들은 주변의 작품과 관객을 한데 비추어 대상화함으로써 관람객의 메타적 관점을 유도한다. 공기로 가득 채워져 가벼운 물리적 질량을 갖는 이 구들이, 역설적이게도 가장 무거운 의미적 질량을 내포하며 전시장의 입체적 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전시장에 모인 각각의 작품은 생태에 대한 하나의 관점이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생태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은, 작가라는 직업이 발화를 가능하게 하는 특별한 지위이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나 생태에 대한 저마다의 관점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저마다의 의견을 이야기 할 수 있다. 미술작품과 전시는 우리가 이런 주제들을 조금 더 편하게 대할 수 있도록 감각적으로 자극하고, 즐거운 대화를 유도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대지의 시간’은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감각적 언어를 통해 짚어낸다. 작가 역시 생태의 일부이자, 생태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며, 전시를 관람하는 관객인 당신 역시 그러하다는 메시지를 말이다.
전시가 생태적인 메시지를 다룰 때 전시디자이너는 자연적인 요소를 전시장에 유입하거나,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하거나, 물리적 구축을 최소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메시지를 강화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종종 유용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객체로서의 ‘생태’와 이를 활용하는 ‘인간’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본질적 한계를 지닌다. ‘대지의 시간’은 이런 한계에서 한 발 나아가, 어떻게 전시디자인이 ‘생태 속 인간’이라는 관점을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뜻깊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