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이미지의 계승과 역사편찬
디터 람스가 전축을 디자인하던 시대에, 바우하우스적 미니멀리즘 이미지는 공업 생산품의 경제성과 기능성, 일상 속의 미적 감흥을 종합해내기 위한 합리적인 도구로 채택되었다. 반면에 조나단 아이브가 애플의 제품 디자인을 위해 미니멀리즘을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조나단 아이브가 애플의 디자인에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미니멀리즘을 투영할 때, 그는 이미지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전 시대의 유산을 계승할 것을 표방하여 애플의 제품에 역사적 정통성을 부여했다. 그것은 마치 이미지의 사초(史草)를 선별하여 애플 디자인의 정사(正史)를 써 내려가는 이미지의 역사 편찬과 같았다. 이어서 그는 역사로부터 소환된 이미지에 화려한 장식을 덧칠하여 대중을 매혹할 준비를 했다. 애플의 디자인은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듯 하지만, 결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크롬 도금된 테두리, 빛을 맺히게 만드는 다이아몬드 커팅, 알루미늄과 유리로 마감되어 부드럽게 매끈한 바디. 애플의 제품에서는 오감을 자극하는 상당한 수준의 장식이 돋보인다. 미니멀리즘의 역사적 이미지가 그들의 아버지와 같은 교리가 되었다면, 이러한 장식은 중세 기독교 성화의 금빛 후광과 같았다.
일련의 역사에서 참조해 낸 이미지는 제품의 표층에서 애플의 페르소나로서 애플의 디자인에 신화적 스토리를 부여한다. 동시에 그 가면 속에서는 제프 쿤스의 반짝이는 풍선 강아지와 같은 동시대의 화려함이 엉켜 들어, 애플의 제품들은 이 시대 디자인의 교리이자 보석처럼 반짝이는 현대의 사치품으로 받들어진다. 이전 시대의 유산이라는 아버지가 그를 낳았고, 현대의 풍요로운 어머니가 그를 길러냈다. 조나단 아이브가 역사로부터 참조해낸 이미지는 시대의 맥락에 맞게 편집되어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새로 태어났다. 그렇게 탄생한 자식들은 아버지의 유산에는 관심이 많으나, 아버지 세대의 이상에는 큰 관심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