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평대 사구를 다시 찾았습니다. 키가 부쩍 자란 모래지치는 모래처럼 반짝이는 하얀 꽃을 피웠네요. 행여나 혹시나 바람을 타고 날아온 왕나비가 모래지치에 앉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적은 군락의 모래지치들을 애써 보듬어 봅니다. 부디 별과 달과 해를 벗 삼아 날아와 주기를......
파도에 떠밀려 와 모래밭 위에서 숨 고르기 중이던 해조류들은 누군가의 날카로운 쇠갈퀴에 참패를 당했습니다. 대공포 마냥 하늘을 향해 서있는 쇠갈퀴 뒤로 전리품이 한 보따리 쌓여 있고, 그 옆에서 지친 모습으로 쉬고 있는 승자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한 달 동안 저이는 오늘 같은 전투를 몇 번이나 치렀을까요? 좀비 같은 해조류들을 치워주는 저이 덕에 평대 해빈에는 달랑게가 맘 편히 집을 지을지도 모르겠네요.
하도 해안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해양수산부 해양보호 생물인 달랑게 알림판, 순비기나무 뿌리를 기둥 삼아 터를 잡은 달랑게의 집, 열심히 보수공사(?) 중인 달랑게 집 위를 지나간 사람 발자국, 만조선을 따라 긴 띠를 이루다 못해 깊게 파인 모래 안쪽까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해조류 그리고 패들 보트 아래 깔려 있는 모래지치.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제주의 동해 바닷가에는 모래만 보고 살아가는 이들의 복잡한 세상사가 갯내음에 묻혀갑니다. 마치 원담처럼 둘러진 해조류 무리 안쪽에서 문어를 잡는 어르신만이 가엾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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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서
길동무 되어서.
- 신경림, 「낙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