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름 몰려오고 바람 팡팡 부는 날 마라도에 가는 일이 뭐 그리 감동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왜 아닌지 되묻고 싶다. 나는 제주 자연의 벗과 함께 새를 보러 다닐 때면 ‘존재의 고독’을 덜 느낀다. 섬 곳곳에 아무렇게나 핀 풀과 꽃, 모르는 새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새 박사님, 탐조 모임 팀들과는 한 달에 한 번뿐인 만남이지만 섬에 와서 그런지 오늘은 예전보다 더 가깝게 여겨진다. 눈만 들면 어디나 있는 검은 현무암 절벽도 달리 본다. 오늘 우리는 내려앉을 땅을 발견하지 못한 새가 깡총 걸음을 하거나 하늘을 날아오를 때 새에게 관심을 가진다. 더러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버린 새에게 더 그런다. 그럴 때가 아니면 새들이 우리와 함께 사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까치가 송신 안테나에 집을 짓고 사는지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새들과 함께 살고 있음을 느낀다. 신록과 봄꽃, 여름 그늘과 가을 단풍 사이로 나는 새와 애벌레를 잡아먹는 새를 보며 나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인간이 아닌 생명들이 살고 죽는 일에 관심이 생기면서, 인간이 아닌 생명에 관심을 갖는 인간들을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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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의 DNA가 같은 언어로 씌어 있다는 게 뭐 그리 감동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왜 아닌지 되묻고 싶다. 나는 그 사실을 안 뒤로 ‘존재의 고독’을 덜 느낀다. 동네 공원에 아무렇게나 핀 풀과 꽃, 모르는 사람과 산책하는 개, 경계하며 피해가는 길고양이를 예전보다 가깝게 여긴다. 눈만 들면 어디나 있는 가로수도 달리 본다. 우리는 집을 짓고 불을 피울 때 나무에 관심을 가진다. 더러는 약으로 쓰기도 한다. 그럴 때는 나무를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신록과 봄꽃, 여름 그늘과 가을 단풍을 즐길 때나 나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 삼림욕장에서 크게 숨을 들이쉴 때는 고마움도 느낀다.
그렇지만 나는 나, 나무는 나무였다. 나무에 감정을 이입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유전자가 같은 언어로 씌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달라졌다. 나무가 살고 죽는 일에 관심이 생겼다. 나무가 어떻게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나는지 알고 감탄했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 유시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