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ppein May 23. 2020

국내편)  4-1. 슬기로운 신입생활

4장. 좋은 선택은 없다.

2009년 12월. 20대의 마지막 해에 나는 드디어 대기업 공채 신입사원이 되었고 2주 간 연수원에서 연수가 시작되었다. 부모님은 이런 내가 많이 자랑스러우셨는지 ‘우리 아들 대기업 입사해서 연수 들어간다.’ 고 여기저기 자랑을 하셨다. 그동안 내색은 애써 안 하셨지만 나만큼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증빙일 것이다.

연수원에 모인 그룹 공채 동기는 약 110명 정도로 기억하는데 그중에서 역시 내 나이는 많은 축에 꼽혔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그들의 스펙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SKY 대학 출신도 적지 않았고 외국 대학을 나온 사람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난 위축되기보다 오히려 더 당당해졌다. 명문대를 나온 그들과 같은 회사에서 같은 연봉을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되려 내게 자부심이 되었다. 내 스펙은 비록 비루 하나 그들의 스펙에 버금가는 주특기가 있었고 그 주특기를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것에 대한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마음속 표창장 같은 것이었다.


2주 간의 연수는 아주 재미있었다. 회사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배우고 경쟁하면서 동기들과 친해지는 이 시간은 마치 대학교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이렇게 2주 간의 연수를 마치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계열사 브랜드로 흩어져 실습에 들어갔다. 카페, 빵 브랜드답게 바리스타처럼 커피 제조도 배우고 샌드위치, 간단한 빵 제조 등을 직접 해보면서 평가를 받고 서울 본사로 가끔 출근해 선배들의 사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연수 기간은 연수원 숙소가 제공됐지만 실습은 그런 장소가 없어서 나처럼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실습 기간 동안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숙소를 마련해줬다. 우리 계열사는 나를 제외하고 5명의 부산 동기들이 더 있었다. 우리는 모두 서류 지원 시 부산 영업 팀으로 지원이 되어 있었고 모든 교육이 마치면 다 같이 부산으로 내려가 한 팀에서 일하게 될 동료들이었다. 우리 6명은 같은 지역이라 자연스레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교육 후 다 같이 부산에서 일하게 될 그림을 그리며 신입사원의 꿈을 키웠다.


본사 실무진 강의와 기본 제조 실습을 마치고 우리는 1차 현장 실습에 투입됐다. 서울에 있는 직영점으로 배치되어 점장이 할당하는 제품을 팔아보라는 것이었다. S그룹의 이 모든 연수, 교육, 실습은 앞으로 배치될 부서와 무관하게 모든 이에게 똑같이 진행되었다. 연구직이든 마케팅직이든 관리직이든 구분 없이 현장, 제품 그리고 영업은 리테일 회사를 다니는 직원이라면 모두가 알아야 하는 회사의 기본이라는 회사 방향에 맞춰 꾸준히 진행되어 오던 것이었다. 나는 동기 한 명과 같이 강북 지역의 한 매장으로 배치되었다. 우리의 미션은 그 당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치즈 케이크의 금일 목표 수량을 완판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한 겨울이었지만 매장 입구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판촉 활동을 했다. 거의 하루 종일을 밖에 있으니 날씨는 추웠고 불특정 다수에게 이런 판촉 활동을 하는 것이 생소해 입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앞의 케이크는 탑처럼 쌓여 있었고 영업을 지원한 나에겐 더더욱 해내야 하는 미션이었다.


난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비하면 이런 미션은 쉽게 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매장 창고에서 엠프와 마이크를 꺼내와 얼굴에 철판을 깔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주위를 집중시키기 위해 음악을 틀고 직접 MC가 되어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농담과 유행어를 구사하며 사람들이 케이크 가판대로 모이게 만들었다. 사실 난 고등학교 때 내 껌 중의 하나인 방송반 아나운서 경험을 살려 마이크를 잡았고 그것이 내게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방송반에 들어갔을 때만 해도 ‘쓸데없는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라는 선생님들의 핀잔을 자주 들었지만 그 껌은 지금 케이크를 팔아 매출을 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프로모션 가성비가 좋아서 사 주시는 고객을 비롯해 내 멘트가 재미있다며 사 주시는 고객, 추운데 고생한다며 사 주시는 고객 등 많은 고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구매를 해주시며 내 치즈 케이크 목표는 100%를 초과 달성했다.


서울 직영점 매장 실습까지 잘 마무리한 후 우리 동기들은 모두 자신의 지방으로 돌아가 각 지역 영업팀에서 실습을 하는 과정이 있었다. 우리 부산 6명 동기는 모두 부산으로 내려갔고 부산 영업팀으로 2주간 출근하게 되었다. 이번 실습은 그냥 매장 실습이 아니라 직영점과 가맹점을 돌아보면서 매장의 개선점 또는 아이디어를 떠올려 마지막 날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1주일은 직영점에서 부점장 역할로 매장을 관리하며 개선점을 찾아야 했고 나머지 1주일은 영업팀 선배와 함께 가맹점을 순회하면서 가맹점의 매출을 향상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도출해내야 했다. 이 회사는 영업팀으로 입사하면 제일 먼저 직영점의 점장을 시켰다. 공채 신입 사원을 매장의 점장부터 시키는 브랜드가 많지는 않다. 이 회사가 강조하는 기본은 매장과 현장이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영업 사원이 매장의 점장이 되어 매장 관리부터 시작해 현장 경험이 쌓이면 가맹점 관리 슈퍼바이저로 발령이 나 업무를 변경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매장 관리는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일이었고 난 매장을 볼 때마다 고객의 편의와 매출의 증대를 위해 뭘 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달고 살았다. 그 당시 내가 배정받은 직영점은 부산 남포점 매장이었는데 부산 번화가 중 한 곳인 남포동(부산 국제 영화제가 지금은 해운대로 중심을 옮겼지만 원래는 남포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면 부산 지리를 모르는 분들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거리 중심에 있어 임차료와 매출이 동시에 엄청난 매장이었다.


난 이 거대한 매장에서 매일같이 고민했다. 생전 고민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한 고찰은 글을 써내는 창작보다 어려웠고 뭔가 찾은 것 같아서 점장 선배에게 얘기하면 이미 다 알고 있지만 현실상의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들로 개선이 불가능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매장을 점검하고 고객들을 바라보며 프레젠테이션의 스트레스가 쌓여가고 있는데 어떤 고객이 매장 매니저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직원 분이시죠?”


“네, 고객님. 무슨 일이시죠?”


“제가 좀 전에 부산역에 도착해서 역 광장 건너편 매장에 갔어요. 기프티 콘이 있는데 날짜가 오늘까지라서 꼭 사용해야 했거든요. 그런데 그 매장은 기프티 콘으로 받을 수 있는 제품이 아예 안 들어온다고 남포동 매장으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부랴부랴 부산역에서 남포동까지 찾아왔는데 방금 직원 분이 매장에도 없다고 하네요. 아니, 부산역에 있는 직원은 자세히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저를 이렇게 헛고생시키는 거죠? 방금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이게 무슨 고생이에요?”


20대로 보이는 여성 고객은 화가 단단히 나있어 보였지만 꽤 침착하게 요모조모를 따지듯이 설명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부산역 광장 맞은편 가맹점에서 직영점은 종류가 많다고 생각해서 부산역에서 가장 가까운 직영점으로 안내를 해준 것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이 매장에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처음 겪는 고객의 컴플레인이자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였다. 내가 이 고객의 입장이라도 화가 날 것 같았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추운 날씨에 고생 많으셨겠어요. 그런데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이 제품이 저희 매장에도 없는데 다른 매장을 알아봐 드릴까요?”


“이봐요. 저도 바쁜 사람이에요. 제가 이 제품 하나 때문에 또 다른 매장을 가라고요?”


“네, 제 생각이 짧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됐어요! 안 먹고 말죠! 이럴 거면 왜 이런 기프티 콘을 파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 여성 고객은 그렇게 화가 난 채로 매장을 나가고 있었다. 난 순간 화가 난 채로 고객을 보내는 것은 하나의 고객을 잃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난 당장 뛰어가 그 고객을 멈춰 세우고 말을 건넸다.


“누구… 세요?”


그 여성 고객은 놀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아, 안녕하세요? 방금 저희 매장에서 나가시는 거 보고 따라왔습니다. 저는 남포점 부점장입니다. 아까 매장에서 저희 매니저랑 말씀 나누시는 걸 들었어요. 제가 고객님이라도 정말 짜증 날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꼭 해결해드리려고 합니다. 주소랑 연락처만 남겨주시면 제가 그 제품 찾아서 배송으로 보내 드릴게요.”


무슨 빵 하나에 이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고객이 원하는 제품에는 경중이 없다. 고가의 전자제품은 반드시 구해줘야 하고 저가의 디저트는 없으면 못 먹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되려 고객이 기업의 가치를 깎아내리게 만든다. 서울에서 온 이 여성 고객은 그제야 화가 좀 누그러졌는지 내게 명함을 건네주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난 다음 날 각 직영점에서 실습을 하고 있는 동기들에게 해당 제품의 유무를 알아봤다. 제품은 서울 직영점 중 한 곳에 있었고 그땐 실습생이라 고객 서비스를 위해 제공해야 하는 제품의 처리 프로세스를 알 수가 없어서 자비로 제품을 구입했고 배송료 역시 내가 부담을 했다. 제품을 받은 고객은 내게 문자로 진심이 담긴 감사를 표했고 난 내 노력이 고객 감동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나아가 그 고객은 회사 홈페이지에 날 칭찬하는 글까지 올려주셔서 신입 사원 교육 수료식 때 전 동기들에게 고객 서비스 사례로 소개되며 박수를 받았다.


그렇게 실습 기간을 보내면서 직영점과 가맹점을 아무리 돌아봤지만 회사의 철저한 관리와 점주들의 노력으로 워낙 매장이 잘 되어 있어서 개선의 아이디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프레젠테이션의 압박에 점점 짓눌려가고 있을 때 어느 한 가맹점을 가게 되었다. 이 가맹점은 마치 내가 치즈 케이크를 완판 시켰던 강북의 직영점과 매우 닮아 있었다. 강북 직영점과 거의 완벽한 오마주였던 이 매장은 내가 강북 직영점에서 실습하며 느꼈던 아쉬운 점도 똑같이 가지고 있었다. 바로 매장 외부의 도로 상황이었다. 강북 매장 입구에 가판대를 깔고 ‘케이크 사세요!’를 하루 종일 외치던 나는 매장 앞 네거리를 마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네거리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대각선 횡단보도 좀 만들어주지…’

                                                 

이 매장은 네거리 모퉁이에 자리 잡고 있었고 길 건너편에 경쟁점도 마주 보고 있었다. 경쟁점 쪽에 있는 사람들이 이 매장으로 오려면 대각선 횡단보도가 없어 신호등을 두 번이나 건너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 상황을 지금 또 마주하게 되면서 급기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각선 횡단보도만 그어주면 훨씬 편해지는 거잖아? 그게 그렇게 어렵나?’


매장 내부에서는 찾을 수 없던 개선점을 매장 외부에서 찾은 것이다. 나는 곧바로 관할 경찰서에 문의 민원을 넣었다. 왜 이 네거리는 대각선 횡단보도가 없는지 그리고 대각선 횡단보도를 깔아줬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민원 신청으로 올렸다. 그리고 난 이 내용으로 프레젠테이션에 나섰다.


프레젠테이션의 결과는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5명의 다른 동기들이 모두 매장 내부의 문제, 예를 들면 매대의 위치 변경이나 좌석 변경과 같은 주제로 개선 아이디어를 내놓은 반면 나 혼자만 매장 외부 환경 개선을 주제로 삼은 것이 영업 팀장을 비롯한 선배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온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것을 개선하기 위해 관할 경찰서에 민원을 넣었다는 말에 영업팀장은 달달한 디저트를 한 입 먹고 난 사람처럼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런 도로 개선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안 해봤는데 민원까지 넣고 대단하네요. 그 민원 결과 나오면 저한테 반드시 알려주세요.”


민원에 대한 회답은 그 도로의 교통량과 유동량이 대각선 횡단보도까지 깔 수 있는 기준에 부적합하여 안 된다는 내용이었지만 이들은 나의 색다른 생각과 시각에 이미 만족하고 있었다. 부산 실습이 끝나고 회식 자리에서 영업 팀장이 날 따로 불렀다.


“니는 반드시 부산으로 와야 한다. 내가 듣기로 니 서울에 남으려고 한다던데 진짜가?”


“서울 생활은 한번 해보고 싶긴 한데 제가 남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인마, 니 서울에 살면 집도 구해야 하는데 그 보증금에 집세는 어짤라고? 그라고 서울에 있어봐야 별거 없어. 그냥 원래대로 고향에 딱 내려와가 집에서 출퇴근하고 돈도 빨리 모으고 그래야지.”


“저도 서울 집세는 무섭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서울에 남고 싶다고 남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무슨 소리고? 니 의지가 제일 중요한기다. 니 혹시나 교육 다 마치고 본사에서 인사팀 면담할 때 혹시라도 인사팀에서 서울 남을 생각 있냐고 하면 무조건 부산 간다 해라! 알았제?”


영업팀장은 날 따로 불러서 몇 번이나 부산으로 와야 한다고 얘기했다. 난 고객 칭찬 글부터 이번 프레젠테이션 내용까지 더해지며 신입들 중 조금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미 실습 기간 동안 서울을 겪으면서 서울에 남을 수 있으면 남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막상 와서 생활해 본 서울은 아주 역동적이었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서울 본사는 선택권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지방은 오직 영업 팀에서 영업만 할 수 있지만 서울은 마케팅 팀, 홍보 팀, 전략 팀 등 다양한 비전이 있었고 무엇보다 내 심연의 목표인 주재원으로 갈 수 있는 초입 부서 해외 사업 본부가 있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여러분의 사랑을 많이 받아 이 글이 <무스펙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책으로 엮이게 되어 부득하게 나머지 편들을 브런치에서 내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제 어엿한 책으로 태어나게 되었으니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850077




작가의 이전글 국내편) 3-3. 개똥이 약에 쓰려면 없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