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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Jun 05. 2020

해외편)1-1. 오묘한 나라 싱가포르

1장. 다시는 주재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난 그렇게 전 회사를 뒤집어 놓는 이슈 메이커가 되면서 싱가포르 팀에 합류했다. 팀장 외 관리직은 나와 대리 한 명이고 생산직은 빵 한 명, 케이크 한 명 이렇게 총 5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빵이랑 케이크랑 한 명이 다 만들 수 있지 않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같은 육상이라도 단거리 선수와 장거리 선수의 훈련과 능력이 다른 것처럼 이 둘은 같으면서도 다른 영역이다. 팀장은 브랜드 총괄, 대리는 재무팀장, 나는 영업 및 점포개발 팀장으로 업무 범위가 정해졌는데 대리 역시 영업 출신이라 재무 경험이 없어 본사 재무팀에서 교육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점포개발 경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교육이 없었다.


“이제 말 통하는 사람 들어와서 마음 놓고 출장 갈 수 있겠다. 파견 전에 자네는 나랑 2주 정도 출장 좀 다녀오자. 가서 준비할 게 많아.”


팀장은 나를 쳐다보고 씩 웃으면서 말했다. 그리고 내 생애 첫 싱가포르 출장이 시작되었다. 한국은 아직 겨울이었지만 여름옷을 챙겨서 공항으로 향했다. 2주라는 장기 출장은 짐을 어느 정도로 챙겨야 하는지 감도 제대로 오지 않아 주섬주섬 최대한 많이 챙긴 기억이 난다. 난 대학 졸업 여행으로 태국을 다녀온 걸 빼면 가본 곳이 중국밖에 없어서 상당히 설레고 있었다. 인터넷, 지인들의 얘기로 간접 경험만 하던 그곳을 직접 가보게 되니 가슴이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말 싱가포르 사람들과 중국어로 소통이 가능할까? 중국어 안 쓰고 산지 꽤 오래됐는데 갑자기 못 알아들으면 어떡하지?’라는 긴장에서 오는 떨림도 함께 뒤섞여 다가오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 가고 있는 이 나라에서 7년이란 시간을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고 이 비행기를 무진장 자주 타게 될 거라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약 6시간 남짓을 날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환경과 시설에 대한 내 눈높이는 인천공항의 수준에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도 창이공항이 좋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주변 동남아 국가들 공항을 비롯해 다른 많은 나라들의 공항을 겪으면서 창이공항이 얼마나 깨끗하고 편하고 친절하고 빠른지 깨닫게 되었다. 공항에 내릴 땐 에어컨 때문에 전혀 더운 줄 모르다가 택시 승강장으로 나오는 순간 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는 것처럼 더운 공기가 계속 코와 입 주변에서 계속 맴돌았다. 택시를 타고 오는 동안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중국어가 호텔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거봐. 중국어 엄청 많지? 자네 저런 글자들 다 읽어져?”


“그러게요. 팀장님, 진짜 중국이랑 비슷하네요. 글자도 중국이랑 똑같은 간체자를 써서 다 읽어져요.”


호텔에 도착해서도 체크인부터 호텔 직원과 대화도 다 중국어로 할 수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 물론 화교가 아닌 인도계나 말레이계 사람들은 중국어로 소통할 수 없지만 이 소수의 사람들과는 생활적으로나 일적으로나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고 마주친다 해도 간단한 영어로 얘기하는 상황들이 대부분이라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나로서는 정말 소통에 불편함이 조금도 없었다.


“이제 내가 자네를 왜 그렇게 기를 쓰고 데리고 오려고 한 지 알겠지?”


“저도 싱가포르에서 중국어를 이렇게 많이 쓰는지 몰랐습니다. 놀랍네요.”


“좀 과장해서 말하면 여기 그냥 땅 덩어리 작은 중국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야. 영어 어쭙잖게 하는 두 명보다 중국어 유창한 한 명 있는 게 훨씬 낫다니까.”


언어에 불편함이 없다는 걸 몸소 확인하고 나니 자신감이 생겼다. 팀장이 중국어가 필요하다고 할 때만 해도 난 팀장의 생각이 ‘영어 어쭙잖은 두 명이 대충 알아듣고 어색하게 미팅하는 것보다 우리 팀에 중국어 잘하는 애가 하나 있고 미팅에 나오는 싱가포르 사람들 중 한 명 정도는 중국어가 가능하니까 그 둘 만이라도 제대로 미팅하는 게 낫다.’ 정도의 계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만약 어떤 미팅 자리에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안 나오면 어쩌지? 없으면 내가 매번 중국어 가능한 사람 적어도 한 명은 미팅에 참석시켜 달라고 요청해야 하나?’라며 걱정했는데 오히려 싱가포르에서 중국어를 못하는 싱가포르 인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출장의 목적은 싱가포르의 빵 시장과 매장을 입점시킬 만한 쇼핑몰을 둘러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싱가포르는 날씨가 더워 한국의 명동이나 홍대처럼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쇼핑할 수 있는 ‘로드샵’ 문화가 아니었다. 건물을 벗어나 밖을 걸으면 5분도 채 되지 않아 땀이 삐질삐질 흐르기 시작하기 때문에 에어컨이 빵빵한 몰 안에서 쇼핑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몰에 매장을 입점시켜야 하는지가 가장 최우선의 과제였고 그 몰의 어떤 자리에 계약하는지가 2차적 부제였다. 하지만 국내에서 점포 개발 관련 교육도 경험도 없던 나에게 국내도 아닌 외국, 그것도 생전 처음 와 본 나라의 상권을 파악하는 점포 개발 업무를 맡기는 것 자체가 상당히 위험 수위가 높은 모험처럼 느껴졌다.


난 개발 업무에 이처럼 무식했기 때문에 무대포처럼 점포 개발을 업무를 스스로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사의 그 누구도 싱가포르의 상권에 대해 전문가 수준만큼 경험이 있거나 직접 살아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가르쳐 줄 사람도 딱히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생은 새옹지마. 오히려 이런 환경에서 시작된 독학이 나만의 자산이 됐다.

평소에도 쇼핑몰을 다니거나 시내를 돌아다닐 때 난 ‘이 매장 자리가 좋다.’ 거나 ‘여긴 임차료가 비싸겠네.’라는 시각으로 풍경을 바라본 적이 없었다. 백화점을 그렇게 가봤으면서도 왜 1층에는 항상 화장품과 향수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는 무지한 나의 싱가포르 상권에 대한 전문성의 목표치는 싱가포르 사람들조차 ‘여기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찰스 앤 키스(싱가포르 구두 브랜드)가 어디야?’라고 당연히 내게 묻게 되는 것이고 그럴 때마다 난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이 근처는 A몰이랑 C몰에 그 브랜드가 다 들어가 있는데 지하철로 가면 C몰이 10분 정도 가까워. 그런데 A몰이 매장 10평 정도 더 크고 종류가 많은 편이야. C몰은 역에서 내린 후 몰 1층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면 XX매장이 보이는데 그 매장 맞은편에 있어서 바로 보이고 A몰은 지하철 개찰구를 나와서 지하통로 오른쪽으로 쭉 가면 은행이 나오는데 그 은행 옆, 옆 매장이야.’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인간 쇼핑몰 맵이자 내비게이션이 되는 것이었다.


쇼핑몰을 돌 때마다 항상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은 단연 싱가포르 대표 빵 브랜드 ‘브래드 토크(Bread talk)’였고 빵집이나 디저트 매장이 보이면 필수로 들렀다. 거의 매일 다른 빵집의 다른 빵들을 먹었다. 출장 내내 빵과 디저트를 입에 달고 살았고 현지의 제품 가격, 진열 형태, 위생 관리 시스템 등과 같은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다녔다. 우리의 타깃이자 최대 경쟁사로 삼은 브래드 토크는 싱가포르의 대표적 대형 식품 그룹이었다. 브래드 토크라는 빵집 브랜드뿐만 아니라 싱가포르에 가면 자주 보이는 먹거리 매장은 대부분이 이들 그룹에서 운영하는 것이었다. 아침 식사를 주 메뉴로 하는 ‘토스트 박스(Toast box)’, 깔끔하고 잘 정돈된 느낌의 푸드코트 ‘푸드 리퍼블릭(Food Republic)’, 한국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딘타이펑(Din Tai Fung)’, 관광객의 필수 맛집으로 바쿡테(우리나라의 곰탕과 비슷함)로 유명한 ‘송파(Songfa)’를 비롯해 다른 빵 브랜드와 케이크 전문점 브랜드도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굴러온 아직은 작은 돌이 이 박혀있는 거대한 돌에 버금가는 바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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