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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pein Jun 11. 2020

해외편) 1-4. 새 식구를 찾습니다.

1장. 다시는 주재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무실 빌딩 바로 앞은 주유소를 낀 왕복 4차선 도로이고 뒤쪽은 공터였다. 그래서 주변에 점심 식사를 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그땐 싱가포르에 배달 서비스가 거의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로 가서 먹고 오거나 우연히 발견한 회사 뒤 공터를 가로질러 가면 나오는 싱가포르 2위 통신사 스타허브(Starhub. 국내로 치면 SKT, KT 같은 회사다.) 본사 구내식당에서 사 먹었다. 점심을 사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스타허브 본사에 구경 갈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참 많이 들었다. 싱가포르 대표 통신사답게 건물은 반짝거렸고 휴게실에는(휴게실까지만 외부인이 출입이 가능했다.) 직원들을 위한 게임기, 무료 자판기, 안마기 등과 같은 세심한 편의시설까지 갖춰져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일터도 우리와 같은 다소 외진 곳에 있다 보니 구내식당을 운영함과 동시에 구내식당 메뉴에 질려 나가서 먹고 싶은 직원들을 위해 가까운 시내로 나가는 점심시간 무료 셔틀버스까지 제공되고 있었다.

이런 광경을 자주 보면서도 볼 때마다 부럽다는 말이 나왔다. 난 지금 제대로 된 내 집이 있는 것도 아니라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토록 어렵게 찾은 사무실 역시 엘리베이터가 언제 고장 나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건물 안에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업계 1위인 대기업이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우리는 이제 막 법인을 설립한 신생 소기업이라는 현실 자각을 뼈저리게 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좁디좁은 고시원 같았던 임시 사무실을 벗어나 우리만의 사무실이 생긴 게 어디냐고 긍정의 틈새를 만들어 만족해보려 노력했다.

 

비록 비루 하지만 법인 사무실이 생겼기 때문에 난 1호점이자 플래그십 매장을 찾는데 더 속도를 내야 했다. 동시에 매장 오픈을 대비해 인력 채용과 교육도 해나가야 했다. 이제 사무실의 임차료가 나가기 시작할 것이고 직원들의 인건비도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빨리 매장을 열어 수입을 발생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커진 것이다. 마치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과 같은 마음으로 책임감을 가지고 이 조직을 이끌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곧바로 영업, 재무, 제조 이 세 분야 모두 인력을 충원해야 했다. 제조는 빵이나 케이크 분야에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고 재무 역시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이어서 현지 재무 경력자를 뽑아야 했다. 난 고민 끝에 내 파트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을 뽑기로 했다. 그래서 내 파트의 채용이 가장 어려웠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싱가포리안(Singaporean: 싱가포르 인)이 많지도 않았고 한국어를 하면서 내가 바라는 경력까지 갖춘 사람은 당연히 극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요건을 모두 갖춘 능력자가 온다 하더라도 오히려 그가 원하는 급여 요구치를 맞춰줄 수 없는 나의 채용 예산이었기 때문에 욕심을 버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까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을 채용하고자 한 이유는 첫 번째가 본사와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한 업무였기 때문이었다. 난 외근이 많기 때문에 누군가 사무실에서 본사와 소통을 해주면서 날 지원해주는 것이 적은 인력의 소규모 조직에서는 효율이 높다고 생각했고 본사에서 출장을 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대처도 더 원활할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는 사무실에 있는 주재원들을 위해서였다. 영업은 제조와 재무 등 모든 파트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파트의 주재원들이 영업팀과의 소통에서 착오를 겪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세 번째는 좀 더 먼 미래를 생각해서였다. 나중에 조직이 커지고 내가 귀국이나 다른 이유로 이 조직에서 빠지게 되더라도 이 조직을 잘 아는 현지 직원이 날 대체하러 온 주재원에게 영업 상황을 잘 설명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까다로운 내 채용은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채용을 진행하면서 알게 된 놀라운 것 중 하나가 싱가포르의 ‘고용 할당제’였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 경제, 사회, 교육, 의료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으뜸인 나라이다 보니 주변 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으러 온다. 그리고 동남아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는 지리적 요건과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서 외국계 회사와 외국인 근로자가 상당히 많다. 그럼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람을 고용하게 될까? 당연히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변 국가에서 넘어온 외국인일 것이다. 그들은 싱가포리안보다 적은 월급을 받아도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면 큰돈이 되기 때문에 싱가포리안보다 희망 급여 수준이 낮은 경우가 다수이다. 그리고 외국계 기업은 나처럼 본사에 주재원을 파견 보낸 후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하도록 하는데 고용주가 된 주재원 역시 기본적인 채용 여건만 갖춘다면 급여의 요구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말레이시안이나 인도네시안을 선호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고 학력이면서 고 연봉을 원하는 싱가포리안들은 노동 시장에서 설 곳이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똑똑한 싱가포르 정부는 자국민 일자리 보호를 위해 고용 할당제를 오래전부터 적용하고 있었다.


이 할당제는 산업 분야별로 할당 비율이 다른데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기업이든 싱가포리안이나 영주권자를 2명 고용해야 외국인을 1명 고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싱가포리안이나 영주권자를 많이 채용하면 할수록 외국인 채용 T.O도 늘어나는 것이었다. 만약 싱가포리안이나 영주권자가 퇴사를 하면 T.O를 즉각 반영되어 줄어들고 싱가포리안이 계속 그만두고 외국인만 남아있다면 마이너스 T.O를 부여해 이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전환할 때까지는 계속 싱가포리안이나 영주권자를 뽑아야 한다. 이 T.O는 노동청에서 매월 회사 별로 공지를 하기 때문에 채용 전에 꼭 확인을 하고 채용을 진행해야 한다. 사실 이 할당제 때문에 대부분의 기업이 인력 부족의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때문에 편법을 쓰는 회사들도 적지 않다. (고용 할당제 참고: https://www.mom.gov.sg/passes-and-permits/work-permit-for-foreign-worker/foreign-worker-levy/calculate-foreign-worker-quota)


예를 들면 집에서 노는 싱가포리안이나 영주권자를 여럿 섭외해 근무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위장 취업 형태로 회사 인원으로 등록을 시킨 후 비록 집에서 놀지만 아주 적은 급여를 줘서 TO를 유지하고 실제로 출근하는 사람은 외국인을 뽑는 경우가 많은데 이걸 수 없이 봐온 싱가포르 정부는 반드시 잡아내고야 만다. 대부분 다 적발되어 혹독한 대가를 치르기 때문에 편법이나 불법은 생각하지도 못한다. 그럼 주재원들은 어떻게 일할 수 있느냐? 주재원처럼 급여가 높게 신고된 인력들은 거주 비자 등급이 다른 외국인들과 다른데 이 비자(E-Pass: 흔히 ‘EP’라고 불리며 연봉이 어느 선 이상으로 신고되어야 발급된다.) 소지자는 할당제의 외국인에 포함되지 않고 별도의 T.O를 받는다. 회사에서 이 비자를 발급해주려면 연봉을 많이 줘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많이 뽑을 수가 없다. 싱가포르 정부는 참 똑똑하다. 세금을 많이 내는 고 연봉자들은 이 고용 할당제에서 어느 정도의 탄력성을 부여해 세수도 늘리고 외국 고급 인력이 많이 들어와 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이 할당제는 향후 내가 다른 브랜드를 관리할 때에는 더 심각한 골칫덩어리가 되는데 그건 뒤에서 얘기하도록 하겠다.


각 팀 별로 지원자들 이력서를 보면서 우리의 현실을 더욱 깊게 깨닫게 되었다. 이 싱가포르에서 소위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브랜드에 좋은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는데 이 사실을 잠시 망각했던 우리는 지원자들의 경력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우리는 일단 싱가포리안이나 영주권자 위주로 뽑아서 잘 가르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제조팀은 내가 통역을 도와 실습생들을 뽑았고 구대리는 재무 지원을 해 줄 영주권자 말레이시안을 채용했다. 난 끝까지 한국어 가능자를 기다렸고 운 좋게 서울에서 한국어학당까지 다녀온 유창한 한국어 능력을 지닌 싱가포리안 여성 ‘셀린’을 뽑을 수 있었다. 비록 셀린은 영업 경력도 전혀 없고 근무 경력이 전체적으로 짧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조직이 가장 필요한 부분인 한국어 능력을 지녔고 희망 급여도 내 예산에 들어왔기 때문에 난 즉시 채용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새 집에 새 사람들이 서서히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뭔가 회사다워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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